하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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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
河日成
作家 情報
出生 1949年 2月 18日 ( 1949-02-18 )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鍾路區
死亡 2016年 9月 8日 ( 2016-09-08 ) (67歲)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松坡區
國籍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職業 野球解說家, 隨筆家
學歷 慶熙大學校 大學院 體育學 碩士
宗敎 佛敎
活動期間 1964年 ~ 2016年
장르 野球評論, 野球解說, 隨筆
父母 하중원(簿) 이정심
配偶者 강인숙
子女 長女 하승희, 次女 河泰慶

하일성 (河日成, 1949年 2月 18日 ~ 2016年 9月 8日 )은 野球解說委員과 KBO 事務總長을 지낸 大韓民國 의 體育人이다. 本貫은 晋州 이다. 大學 卒業 後 糧穀高等學校 幻日高等學校 에서 體育敎師로 活動했다. 1979年 KBS 排球 解說 委員 오관영 의 勸誘로 東洋放送 (TBC) 野球解說委員이 되었으나 1980年 言論統廢合으로 TBC가 KBS에 吸收당하자 自動으로 KBS 野球解說委員이 된 뒤 2006年 5月까지 活動했고, 2009年 10月 다시 野球解說委員으로 復歸했다. 宗敎는 佛敎

生涯 [ 編輯 ]

1949年 2月 18日 서울 에서 陸士 09期 步兵學校 出身이자 大韓民國 陸軍 中將 豫編自認 하중원와 이정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동高等學校 在學 時節이던 1964年 에 野球選手 生活을 始作했다. 1967年 慶熙大學校 體育學科에 野球特技生으로 入學하였지만 고된 訓鍊이 싫어 野球를 그만두게 되고, 1968年 2月에 陸軍에 入隊 [1] , 陸軍 白馬部隊 에 服務하며 베트남 戰爭 에 參戰했다. 慶熙大學校 體育學 科를 卒業한 後에는 敎員 資格證을 取得, 1974年 부터 京畿道 金浦 糧穀高等學校 를 거쳐 서울 幻日高等學校 의 體育敎師로 敎職에 몸담았다.

1979年 KBS 排球 解說 委員이던 오관영 의 勸誘로 東洋放送 (TBC) 野球解說委員으로 放送界에 入門했으나 1980年 言論統廢合으로 TBC가 KBS에 吸收당하자 自動으로 KBS 野球解說委員이 되었다. 하일성은 구수한 입담으로 代表的인 野球 解說者로 자리잡았고, 가족오락관 , 아침마당 等에 出演하며 活潑한 放送活動도 竝行했다. 2002年 1月 心筋梗塞 으로 鬪病 後 3番이나 手術을 하여 周邊을 놀라게도 했지만 禁煙에 成功하고 健康한 몸으로 돌아와 다시 마이크를 잡게 된다.

2006年 01月부터 2008年 12月까지는 27年間 몸 담던 解說職을 떠나 第11代 韓國野球委員會 (KBO) 事務總長을 歷任하며, 2008 베이징 夏季 올림픽 金메달 受賞과 2009年 第2回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에서 準優勝을 하는데, 國家代表 野球團 丹粧으로서 一助했다. 하일성은 總長 任期를 마친 後 이때를 人生 最高의 瞬間으로 回想하며, 自身이 나중에 世上을 떠나면 墓碑에 '2008年 베이징올림픽 金메달 野球代表팀 團長' 이라고 새겨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2]

2009年 10月 韓國시리즈의 單 두 競技 中繼를 위해 KBS 野球解說委員으로 臨時職이지만 다시 放送에 復歸했다. [3] 2010年 부터 스포츠 케이블放送인 KBS N 스포츠 의 野球解說委員을 맡았으나, 2014 KBO 시즌 以後에 再契約 不可通報를 받은 後 下車하였다. 2015年 K-STAR 의 日本프로野球 이대호 出戰 競技( 야후 돔 홈 競技) 野球解說委員으로 活動하였다.

死亡 [ 編輯 ]

2016年 9月 8日 午前 7時 56分頃 서울特別市 松坡區 삼전동 의 自身이 運營하는 스카이엔터테인먼트 事務室에서 電氣줄과 밧줄로 목을 매어 스스로 自殺하였다. 過消費와 쇼핑中毒, 詐欺嫌疑에 휘말려 抑鬱하게 自殺로 生을 마감했다. [4] 2015年 11月 知人에게 3,000萬원을 갚지 않은 嫌疑로 被訴되었고 2016年 7月 6日 飮酒運轉 幇助嫌疑로 立件되기도 했다. 또 프로球團 入團 請託을 빌미로 5,000萬원을 받아 詐欺와 勤勞基準法 違反 嫌疑로 不拘束되기도 하였다. 그는 自殺 前 家族들에게는 "未安하다, 사랑한다" 라고, 知人 한 사람에게는 "敎會 다녀 온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8日 아침 自身의 事務室에서 싸늘한 屍身으로 發見되었다.

死亡한 그의 殯所는 서울 中央報勳病院 葬禮式場에 마련되었으며, 葬禮期間 동안 大韓民國 의 거의 모든 野球人들과 弔問客들이 많이 오갔다. 特히 하일성이 生前 가장 親하게 지냈던 김인식 KBO 規則委員長은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였고, 같은 放送社에서 늘 하일성의 가르침을 받아왔던 이용철 KBS N 스포츠 野球解說委員은 嗚咽을 하며 發靷式날에 그의 運柩 行列에 同參하여 하일성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끓는 마음으로 배웅했다. 베트남 參戰 勇士였던 그의 遺骸는 9月 10日 국립서울현충원 忠魂黨에 安葬되었다.

學歷 [ 編輯 ]

作品 [ 編輯 ]

TV [ 編輯 ]

映畫 [ 編輯 ]

드라마 [ 編輯 ]

CF [ 編輯 ]

著書 [ 編輯 ]

  • 《野球敎室》(1994年) ISBN   9788974252281
  • 《하일성의 나는 밥보다 野球가 좋다》 (1994年) ISBN   9788985100120
  • 《本部席의 수사반장》(1994年) ISBN   9788974252281
  • 《하일성 없이도 프로野球를 10倍 재미있게 즐기는 冊》 (1995年)
  • 《하일성 이야기》(1998年) ISBN   9788974252281
  • 《最新 野球敎室》(1999年) ISBN   9788974252281
  • 《人生은 1%의 싸움이다》 (2007年) ISBN   9788904110803
  • 《哲學者 하일성의 野球 몰라요 人生 몰라요》(2013년) ISBN   9788974252281

家族 關係 [ 編輯 ]

  • 아버지 : 하중원 (河重元, 1926年 ~ ?)
  • 어머니 : 이름 未詳, 하일성이 11歲 때 離婚 [1]
  • 否認 : 강인숙
  • 子女 : 長女 하승희, 次女 河泰慶

流行語 [ 編輯 ]

  • 野球 몰라요. (第一 有名한 말로 아직까지도 膾炙됨)
  • 驛으로 가나요?
  • 아! 亦是 이승엽 選手예요.( 올림픽 , WBC 等 國際大會에서 李承燁 이 適時打를 쳤을 때)
  • 거 봐요! 제말이 맞죠?
  • 000選手라면 여기서 外野로 보내는 큼지막한 홈런性 打球나, 最小限 후라이 하나程度는 쳐줘야죠!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