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시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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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시네갈 (James D. Sinegal / 1936年 1月 1日 ~ )은 美國 의 世界的인 流通企業인 코스트코 (Costco Wholesale Corporation)의 設立者이며 '流通業界의 스티브 잡스 '로도 불린다.

幼年時節 과 學歷 [ 編輯 ]

짐 시네갈은 1936年 1月 1日 美國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짐 시네갈은 태어나자마자 父母와 헤어졌다. 아이를 養育할 形便이 안 되었던 짐 시네葛衣 어머니는 짐 시네갈을 孤兒院에 맡겼다. 짐 시네갈이 11살이 되던 해에 이탈리아 男子와 再婚한 그의 어머니가 다시 데리러 왔다. 元來 그의 姓은 '라이트(Wright)'였지만 새 아버지의 姓을 따라 '시네갈(Sinegal)'로 바꿨다. 그는 세인트 로렌스 初等學校, 센트럴 가톨릭 高等學校, 힐렉스 高等學校를 나왔다. 1955年에는 샌디에이고 커뮤니티 大學校 에서 준 學事 學位를 받았으며 1959年에 샌디에이고 州立 大學校 를 卒業했다. 2009年 그의 年俸은 35萬 달러(藥 3億9500萬원) 程度였다. [1]

코스트코 創業 [ 編輯 ]

1954年, 샌디에이고 커뮤니티 大學에 다니던 18살의 짐 시네갈은 마을에 새로 생긴 割引店인 페드마트 (Fed - Mart)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親舊를 도와 매트리스를 나르는 일을 하게 되면서 流通業에 興味를 느끼게 되었다. 1976年에 페드마트의 設立者인 솔 프라이스 (Sol Price)는 페드마트가 獨逸 의 한 事業家에게 賣却되자 샌디에이고에 會員制로 運營하는 割引店인 프라이스 클럽 (Price Club)을 열었다. 이에 시네갈 또한 프라이스 클럽으로 職場을 옮겼으며 1978年부터 1979年까지 副社長을 歷任했다. 그리고 1983年 5月 26日 47살에 投資家인 제프리 브로트먼 과 함께 750萬 달러의 資本金으로 커클랜드 코스트코 를 創業했다. 코스트코는 以後 6年 만에 賣出이 30億 달러에 이를 만큼 빠른 成長을 보였으며 1993年에는 프라이스 클럽을 引受했다. 시네갈은 1983年부터 2011年 12月 31日 隱退할 때까지 코스트코의 CEO를 맡았다. 隱退 當時 그의 年俸은 32萬 5,000달러(韓貨 約 3億 6,000萬원)로 다른 CEO들의 4分의 1水準이었다.

經歷 [ 編輯 ]

  • 1954年 ~ 1979年: 페드마트, 最終職責은 首席副社長
  • 1979年 ~ 1983年: 프라이스클럽 首席副社長
  • 1983年 ~ 2012年 1月: 코스트코 CEO
  • 2012年 1月 ~ 現在: 코스트코 理事會 멤버

기타 [ 編輯 ]

私生活 [ 編輯 ]

짐 시네갈은 그의 아내인 자넷 시네갈(Janet Sinegal)과 3名의 子女가 있으며 그의 아들 다비드 시네갈(David Sinegal)은 캘리포니아 州의 세인트헬레나 에 있는 와인 釀造場을 運營하고 있다.

語錄 [ 編輯 ]

커클랜드 시그니처의 마진率은 15%를 維持해야 한다. 15%는 우리도 돈을 벌고 顧客도 滿足할 수 있는 適當한 基準이며, 마진率을 16%나 18%로 올리는 瞬間 價格과 費用을 最少化하려 했던 코스트코의 모든 努力이 물거품 될 것이다.
株主보다 職員이 優先이며 職員에게 더 많이 投資하는 것이 企業에 더 利得이 된다.
職員이 繼續 새로운 職場으로 떠난다면 管理者들은 새 사람을 뽑는 데 時間을 虛費하느라 정작 비즈니스에 神經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CEO가 現場 職員보다 數百 倍 많은 年俸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世上을 떠나기 直前까지 일을 했던 스티브 잡스처럼 나 亦是 죽기 前까지 熱情的으로 일하고 싶다.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