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鎬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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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鎬汪 (李鎬汪, 1928年 10月 26日 ~ 2022年 7月 5日 )은 大韓民國 의 醫學者이자 바이러스 科學者이다. 豫備役 大韓民國 陸軍 中尉 였으며 高麗大學校 名譽敎授이다.

學歷 [ 編輯 ]

主要經歷 [ 編輯 ]

生涯 및 業績 [ 編輯 ]

病原體 發見에서 診斷法, 백신開發까지 完了한 世界 最初의 科學者.

咸興醫科大學을 다니다가 越南하여 戰時聯合大學 體制의 서울大學校 에 入學, 1954年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에서 醫學史 學位를 取得하였다. 1954年 3月부터 1956年 9月까지 大韓民國 陸軍 中尉 로 服務하였으며 豫編 後 美國 으로 留學, 1959年 美國 미네소타 州立大學校 大學院 微生物學科에서 理學 博士 學位를 取得하였다.

1969年 美 陸軍省의 支援을 받아 流行性 出血熱 硏究를 始作했으나 6年이 지나도록 별다른 進展이 없었다. 그러던 中 偶然히 윌리엄 잴리슨이란 科學者의 冊을 보다 들쥐의 閉場에서 發見된 곰팡이가 病原體라는 主張을 듣고 閉場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1975年 12月 20日 中古 螢光顯微鏡으로 抗原을 確認하던 中, 바로 쥐의 閉場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이러스를 發見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4年間, 그때까지 알려진 500餘 種의 바이러스와의 比較 檢査를 통해 이 바이러스가 全혀 새로운 鐘이라는 事實을 證明했다. 그는 이 病原體를 發見한 漢灘江의 이름을 따 恨歎바이러스 (Hantan Virus)라고 명명했다. 恨歎바이러스는 韓國人이 發見한 最初의 病原微生物이며, 이 業績은 世界的으로 認定되어 現在 모든 醫學 및 生物學 敎科書에 收錄돼 있다. 1976年 韓國型出血熱( 出血性新症候群 )의 病原體인 恨歎바이러스 를 世界 最初로 發見하였고 [1] 1980年 서울바이러스 를 發見하였다. [2]

뒤이어 1980年 이호왕 敎授는 서울 西大門의 한 아파트에서 採集한 집쥐에서 새로운 流行性 出血熱의 病原體를 發見하고 이를 서울바이러스(Seoul Virus)라 명명했다. 이는 韓國에서 發見된 두 番째 微生物이었다. 이 바이러스의 發見으로 流行性 出血熱이 都市에서도 感染될 수 있다는 事實이 밝혀졌다. 이렇게 2種의 病原體 바이러스를 發見한 이호왕 敎授는 새로운 바이러스 속(屬)으로 한타바이러스(Hanta Virus)를 國際學界에 提案하고 公認받았다.

1981年부터 백신開發을 始作했으며, 1985年 무렵 이 바이러스를 動物 組織에 連續的으로 培養시킨 結果 病原性을 減少할 수 있다는 事實을 알게 되었다. 그 後 GC綠十字 와 共同硏究를 進行해 1990年 마침내 流行性 出血熱의 豫防백신 製造許可를 얻었다. 이 豫防백신은 臨床實驗을 거친 後 1991年부터 ‘ 한타박스 ’란 이름으로 市販되었다. 한타박스는 우리나라 新藥 1號다.

流行性 出血熱의 原因菌과 傳播經路, 診斷法 豫防백신에 이르기까지 全 過程을 開發해 人類를 이 怪疾의 恐怖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世界保健機構(WHO)는 그의 業績을 認定해 1981年부터 그가 勤務하는 高麗大 醫大 바이러스硏究所를 世界에서 唯一한 ‘WHO 한타바이러스 硏究協力센터’로 指定했다.

1998年에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發生하는 두 가지 種類의 流行性 出血熱을 同時에 豫防할 수 있는 混合豫防백신을 開發해 特許를 獲得했다. 그는 流行性 出血熱 關聯 240餘篇의 論文을 國內外에 發表하고 10件의 關聯 特許를 登錄했다.

醫學 硏究와 後進 養成에 獻身한 業績을 認定 받아 2009年 第6回 서재필 醫學賞 을 受賞하였다. [3] [4]

賞勳 [ 編輯 ]

脚註 및 參考 文獻 [ 編輯 ]

  • 大韓民國 科學技術有功者 홈페이지 [1] Archived 2021年 2月 24日 - 웨이백 머신
  • 韓國 바이러스硏究의 아버지, 李鎬汪 高麗大 名譽敎授 [2]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大韓民國 科學技術有功者 百科 李鎬汪 [3]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