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柱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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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柱烈
大韓民國의 第25, 26代 韓國銀行 總裁
任期 2014年 4月 1日~2022年 3月 31日
前任 김중수
後任 李昌鏞
大統領

이름
別名 주얼리(jewellery) [1]
身上情報
出生日 1952年 9月 13日 ( 1952-09-13 ) (71歲)
出生地 大韓民國 江原道 旌善郡 임계면
學歷 延世大學校 經營學 學士
펜실베니아 州立 大學校 經濟學 碩士
本館 덕수
署名
軍事 經歷
服務 大韓民國 空軍
最終階級 兵長
賞勳 1984年 12月 재무부長官 表彰

李柱烈 (李柱烈, 1952年 9月 13日 [2] ~ )은 大韓民國 의 第25·26代 韓國銀行 總裁 다.

生涯 [ 編輯 ]

本貫은 덕수 이며, 江原道 旌善郡 임계면 에서 태어났으나, 原州에서 幼年時節을 보냈다. 1977年 韓國銀行 入行 以後 調査局長, 政策企劃局長, 副總裁補(通貨信用政策 擔當) 等을 歷任하였고, 2012年 韓國銀行 副總裁 로 退任하였다. 以後 延世大學校 經濟大學院 特任敎授 等으로 活動하였으며, 2012年 改正된 ?韓國銀行法?에 따라 2014年 3月 19日 實施된 國會 人事聽聞會 를 거쳐 2014年 4月 1日 第25代 韓國銀行 總裁 에 就任하였다. [3] 2018年 3月 2日 文在寅 大統領에 依해 韓國銀行 總裁 候補로 指名되면서, 44年만에 連任 總裁가 되었고, 2018年 4月 새 任期를 始作하였다. [4] 2022年 3月 31日 退任하였다.

學歷 [ 編輯 ]

經歷 [ 編輯 ]

職務遂行 [ 編輯 ]

金利 引下와 家計負債 增加 [ 編輯 ]

李 總裁의 就任 初期에는 基準金利 가 2.50%였으나, 以後 基準金利를 5次例에 걸쳐 낮추어서 한때 1.25%까지 내려갔었던 적이 있다. (2018年 11月 30日 現在는 1.75%이다.) 이에 따라 貸出規模가 增加하여 家計負債 規模가 커졌다. 就任 첫 해인 2014年에는 家計負債가 1085兆 원이었는데, 2017年에는 1450兆 원으로 늘어났다. 特히 2015年과 2016年에는 家計負債의 前年同期 增加率이 各各 10.9%, 11.6%의 두 자릿數를 記錄했다. [5] 이에 對해 李 總裁는 "2014年은 物價가 0%에 이르면서 디플레이션 憂慮가 있었고, 家計負債 問題도 있었지만 經濟 狀況이 꺼져 가고 있어서 緩和 基調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解明하였다. [6]

中央銀行의 政治的 獨立性 問題 [ 編輯 ]

不動産 規制 및 貸出規制 緩和를 骨子로 하는 초이노믹스 朴槿惠 政府 의 政策에 지나치게 順應하면서 中央銀行의 政治的 獨立性이 毁損되었다는 批判이 提起되었다. 實際로 최경환 經濟副總理 就任 以後 金利를 引下하기 始作하였으며, 이로 인해 家計貸出 比重이 擴大되었다. [7] 2017年 10月 韓國銀行 國政感謝狀에서 바른政黨 (現 바른未來黨 ) 李惠薰 議員은 "就任 當時 2.5%였던 基準金利가 1.25%로 半 토막이 됐다. 所信을 못 지킨 게 理解가 안 된다"고 指摘했다. 自由韓國黨 秋慶鎬 議員도 "最近 김현철 靑瓦臺 經濟補佐官이 한 인터뷰에서 '過去 韓銀의 獨立性을 尊重하지 않고 기재부 長官이 高壓的으로 基準金利를 낮춰 家計負債 問題가 됐다'는 趣旨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며 "只今까지 金融通貨委員會의 金利決定이 中立的으로 이뤄졌다고 自負하느냐"고 叱咤했다. 이에 對해 李 總裁는 "5次例에 걸친 金利引下는 景氣흐름의 모멘텀을 살리는 데에 寄與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난해 下半期 以後 나타나고 있는 景氣 回復勢는 分明히 通貨緩和 基調가 相當部分 寄與했을 것"이라고 强調하였으며 韓銀의 獨立性 指摘과 關聯해선 "通貨政策은 그야말로 누구의 干涉도 없이 自律的, 中立的으로 決定되고 있다"며 "通貨政策에 있어 獨立性이 相當히 높은 水準"이라고 解明하였다. [8]

韓美 間 金利 逆轉 [ 編輯 ]

韓國時間 基準 2018年 3月 22日, 美國 聯邦準備制度 에서 基準金利를 1.50%에서 1.75%로 올리면서 10年 7個月 만에 韓美 基準金利 逆轉이 일어났으며, 以後에도 繼續 올라갈 것이라는 展望이 있다. 美國 金利가 韓國 金利보다 높은 狀態를 維持하는 現象이 長期化 · 深化될 境遇 資本流出이 發生할 것이라는 憂慮가 提起되었다. [9] 그러나 美國을 따라 金利를 引上하기도 쉽지 않다는 分析이 나온다. 前年 對比 消費者物價 上昇率이 1% 初盤의 낮은 水準을 記錄한 것, 美國發 保護貿易主義 强化 · GM事態 · 雇傭 不振 等 景氣 上昇勢에 對한 不確實性, 家計負債 償還 負擔의 增加 憂慮 等이 金利 引上을 가로막는 要因으로 꼽힌다. [10] 李 總裁는 "한두 番 金利 引上으로 資本流出이 觸發되는 건 아니며 資本流出을 決定하는 다른 要素가 많다", "美國 金利의 上昇이 國內에 미치는 影響이 크지 않다"며 [11] 金利 引上에 對해 신중한 立場을 取하고 있다. [12]

政策官 [ 編輯 ]

李柱烈은 韓國銀行 副總裁 退任 以後 言論 寄稿文을 통해 韓國經濟와 中央銀行 通貨政策 關聯 이슈에 對한 自身의 見解를 披瀝하였다.

韓國經濟, 初心 되살려야 [ 編輯 ]

李柱烈은 低成長·低物價와 急速한 高齡化 現象이 나타나고 있는 韓國經濟에 있어 規制의 劃期的 緩和, 서비스 産業의 競爭力 提高 等 經濟 活性化 政策 뿐만 아니라 經濟를 보는 모두의 意識에 一大 轉換이 必要하다고 主張하였다. 特히 國民으로부터의 信賴가 政策의 成敗를 가르는 最大의 推進動力人 만큼 어려울 때일수록 政府를 信賴하고 따르는 姿勢가 必要함을 强調하였다. 또한 成長의 主體는 어디까지나 企業인 만큼 企業家精神 이 尊重되어야 함과 아울러 成長의 過失을 勤勞者와 나누고 中小 自營業者와 同伴成長을 이끌어 내는 企業의 社會的 責任 도 强調하였다. [13]

通貨政策 目標, 物價 安定 vs. 經濟成長 [ 編輯 ]

金利 라는 한 가지 政策手段을 지닌 中央銀行 에 物價 安定과 經濟 成長이라는 相衝 素地가 있는 複數의 政策目標를 追求토록 하는 것이 果然 바람직한 것인가에 對해서는 論難의 餘地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韓國銀行 이 達成하고자 하는 物價 安定은 그 自體가 最終 目標라기보다는 國民經濟 發展을 뒷받침하는 데 窮極的인 目的이 있음을 强調하였다. [14]

디플레이션 [ 編輯 ]

2013年 以後 提起되고 있는 韓國經濟에서의 디플레이션 發生 憂慮와 關聯하여 李柱烈은 ‘1930年代 美國 大恐慌 ’과 ‘1990年代 以後 日本 잃어버린 20年 ’과 같은 海外 事例에 비추어 ‘資産버블 形成과 崩壞’ → ‘債務不履行 增加’ → ‘金融社 不實化’로 이어지는 負債디플레이션 過程이 觸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資産價格 下落을 防止하는 데 力點을 두어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또한 디플레이션 發生 可能性이 높아지면 初期 段階에서 果敢하고 積極的인 財政, 通貨政策 을 運用할 것도 强調하였다. [15]

通貨政策 과 不確實性 [ 編輯 ]

한便 通貨政策 을 運用함에 있어 對內外 經濟與件의 不確實性은 本質的으로 不可避한 制約 條件이므로 이를 管理 可能한 리스크로 轉換시키는 努力과 同時에 政策結晶子는 直觀(intuition)과 適時에 決定을 내릴 수 있는 果斷性을 重要한 德目으로 保有하여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16]

通貨政策 의 有效性 提高 [ 編輯 ]

李柱烈은 通貨政策 의 有效性을 높이기 위해서는 國民의 信賴가 重要하다고 强調하였다. 또한 通貨政策 에 對한 國民의 信賴라는 것은 恒久的인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허약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繼續 維持하고 確固히 다져 나가는 것이 더욱 힘든 課題라고 指摘하였다. 따라서 信賴性 本來의 定義에 充實해 對外에 約束한 대로 行動하는 言行一致 傳統을 確立하는 것이야말로 各 經濟主體로부터 通貨政策 에 對한 信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有效한 方法이라고 强調하였다. [17]

人事聽聞會 [ 編輯 ]

2012年 3月 21日 公布된 ?韓國銀行法? 改正(2012年 4月 22日 施行) [18] 에 따라 韓國銀行 總裁 는 旣存의 國務會議 審議 外에 追加로 國會 人事聽聞 節次를 거쳐 任命되도록 變更되었다. 이에 따라 改正法 施行 後 最初로 任命되는 總裁부터는 ?國會法? 및 ?人事聽聞會法?에 따라 國會 所管 常任委員會(企劃財政委員會)의 人事聽聞會 를 거치게 되었다. 人事聽聞會 節次上 國會는 人事聽聞要請案이 國會에 提出된 날로부터 20日 以內에 人事聽聞會 를 마쳐야 하며 人事聽聞經過報告書를 任命權者인 大統領 에게 送付하도록 되어 있다.

2014年 3月 朴槿惠 大統領 名義로 國會에 提出한 ?韓國銀行 總裁候補子 人事聽聞 要請思惟서? [19] 에는 이주열 總裁 候補者의 人事聽聞 要請思惟를 “通貨信用政策 分野의 높은 專門性과 市場과의 원활한 疏通能力, 卓越한 리더십을 두루 갖추었으며, 韓國銀行 이 그 設立目的人 物價安定과 金融安定을 圖謀하고 國民經濟의 發展에 寄與토록 하는 데 適任者로 判斷된다”고 明示하였다.

한便, 韓國銀行 總裁 候補者 李柱烈에 對한 國會 人事聽聞會 는 2014年 3月 19日에 實施되었다. 過去 相當數의 人事聽聞會가 候補者에 對한 身上털기 中心으로 進行된 것과 달리 李柱烈 韓國銀行 總裁 候補者에 對한 人事聽聞會는 現在 韓國經濟가 直面한 潛在成長力 低下 및 家計負債 累增 等 構造的 懸案事項과 이의 解決을 위한 通貨政策 首長으로서의 業務能力 檢證에 焦點을 맞추어 質疑·答辯하는 政策中心의 聽聞會로 進行되었다. 이 過程에서 민주당 金賢美 議員은 “오늘 午前 質疑 내내 政策質疑로 된 것은 候補者가 살아온 길에 對한 나름대로의 評價라고 생각한다”라고 言及하기도 하였다.

國會 企劃財政委員會 는 이주열 韓國銀行 總裁 候補者에 對한 人事聽聞會 開催結果 ‘全般的으로 候補者는 效率的 通貨信用政策 樹立, 物價安定, 디플레이션 防止, 金融安定 達成 等 山積한 經濟 課題에 對한 解決 意志와 經驗을 갖췄다고 評價되고 遵法性과 道德性에서도 韓銀 總裁로서 適格하다고 判斷한다’고 評價한 人事聽聞經過報告書 [20] 를 異例的으로 人事聽聞會 當日 與野 滿場一致로 採擇하였다. [21]

各州 [ 編輯 ]

  1. 박재현 (2014年 3月 6日). “李柱烈 돌아오자 술렁이는 韓銀” . 傾向비즈.  
  2. 링크
  3. 韓國銀行 總裁 紹介 Archived 2015年 9月 23日 - 웨이백 머신 韓國銀行 홈페이지
  4. “40年 만의 連任, 李柱烈 韓銀 總裁가 4年 더 通貨政策 指揮棒 잡게 된 까닭은.” . 《中央日報》. 2018年 3月 2日.  
  5. “e-나라指標 - 家計信用 動向” .  
  6. “韓美 金利逆轉 되더라도…이주열 金利引上 愼重히” . 《mk.co.kr》.  
  7. 헤럴드經濟 (2018年 6月 19日). “초이노믹스 끌고 민 崔敬煥·李柱烈 以後…銀行 家計貸出 쏠림 深化” .  
  8. “[이코노믹포스트] 李柱烈 韓銀 總裁, ˝低金利 政策, 不可避˝” . 《이코노믹포스트》.  
  9. ' 韓美 金利逆轉 길어질지도'…우려커지는 市場” . 《아시아經濟》. 2018年 3月 24日.  
  10. “[MT리포트] 韓美金利 逆轉, 韓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 머니투데이 뉴스” .  
  11. 박민하 (2018年 6月 14日). “美 聯準 政策金利 引上에…이주열 "影響 크지 않을 것 " . 《SBS NEWS》.  
  12. “李柱烈 韓銀 總裁 “金利引上 愼重히···10年 前 水準 引上은 어려워”” . 2018年 3月 21日.  
  13. 李柱烈 (2013年 12月 6日). “韓國經濟, 初心 되살려야 할 때다” . 文化日報 . 2014年 7月 3日에 確認함 .  
  14. 李柱烈 (2014年 1月 27日). “通貨政策 目標, 物價 安定 vs 經濟 成長” . 每經프리미엄 . 2014年 7月 3日에 確認함 .  
  15. 李柱烈 (2014年 2月 4日). “디플레이션 豫防은 國民들 自信感 回復이 關鍵” . 每經프리미엄 . 2014年 7月 3日에 確認함 .  
  16. 李柱烈 (2014年 2月 10日). “通貨政策, 不確實性 理由로 타이밍 놓쳐선 困難” . 每經프리미엄 . 2014年 7月 3日에 確認함 .  
  17. 李柱烈 (2014年 2月 17日). “通貨政策의 有效性은 國民의 信賴에서 나온다” . 每經프리미엄 . 2014年 7月 3日에 確認함 .  
  18. 韓國銀行法 法制處 國家法令情報센터
  19. 韓國銀行 總裁候補子(이주열) 人事聽聞要請案 國會 議案情報시스템
  20. 韓國銀行 總裁候補子(이주열) 人事聽聞經過報告書 國會 議案情報시스템
  21. 第322回 企劃財政委員會會議錄 國會 議案情報시스템
前任
이승일
第27代 韓國銀行 副總裁
2009年 4月 8日~2012年 4月 7日
後任
박원식
前任
김중수
第25·26代 韓國銀行 總裁
2014年 4月 1日~ 2022年 3月 31日
後任
(職務代行) 주상영
李昌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