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
(李連熙,
1804年
~
1839年
9月 3日
)는
朝鮮
의
天主敎
迫害
때에
殉敎
한
韓國 天主敎
의
103位 成人
中에 한 사람이다.
洗禮名
은
마리아
(Maria)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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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희는
殉敎者
남명혁 다미아盧
의 夫人이다. 그女는 매우 强한 意志를 가진 매우 怜悧한 女性이었다. 그女도
권희 바르바라
와 마찬가지로 當時의 危險을 무릅쓰고
앵베르
主敎
와
宣敎師
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들에게 宿食을 提供했다. 사람들이 그女의 집에 모여들면, 그女는 그들을 돌보며 가르쳤고 그들이
成事
를 볼 수 있도록 도왔다. 그女의 親切과 謙遜은 周圍의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1839年
에 그女가
逮捕
되었을 때, 그女는 36歲였다. 監獄에서 그女는 兄卒들에게
拷問
받았다. 그女가 그들의 無禮함을 꾸짖자, 男便
남명혁
은 그女에게
天主敎
信者는 順한
量
처럼 죽어야 한다고 忠告하였다. 그 後 그女는 어떠한 虐待나 殘酷 行爲라도 不平없이 견뎠다.
그女의 12살 된 아들이 다른 獄房에 갖혀 있었는데, 兄卒들은 그를 拷問하며 그女가 아들의 悲鳴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兄卒들은 그女에게 아이가 어떻게
拷問
받는지를 말해주었다. 그女는 幸여나 아들이 顧問에 屈服하여 自身의 信仰을 버릴까 念慮하였지만, 모든 試鍊은
하느님
의 가장 偉大한 榮光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女는 苛酷한
刑罰
과 拷問을 받으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며 自身이 願하는 것은 오직
天國
뿐이라고 證言하였다.
그女는
1839年
9月 3日
에
西小門
밖에서 다섯 名의 敎友와 함께
斬首
되었다. 그女가 信仰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을 때 나이 36歲였다.
諡福 · 詩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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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희 마리아는
1925年
7月 5日
에
聖 베드로 廣場
에서
敎皇
비오 11歲
가 집전한 79位
[2]
諡福式
을 통해
福者
품에 올랐고,
[3]
1984年
5月 6日
에
서울特別市
汝矣島
에서
韓國 天主敎
創立 200周年을 記念하여 訪韓한
敎皇
요한 바오로 2歲
가 집전한
미사
中에 이뤄진 103位
諡聖式
을 통해
成人
품에 올랐다.
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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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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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