議政府 怒江書院

議政府 怒江書院
(議政府 鷺江書院)
대한민국 京畿道 記念物
種目 記念物 第41號
( 1977年 10月 13日 指定)
數量 一圓
時代 朝鮮時代
位置
住所 京畿道 議政府市 장암동 산 146-1番地
座標 北緯 37° 42′ 0″ 東京 127° 3′ 47″  /  北緯 37.70000° 東經 127.06306°  / 37.70000; 127.06306
情報 文化財廳 國家文化遺産포털 情報

議政府 怒江書院 (議政府 鷺江書院)은 京畿道 議政府市 장암동에 있는 서원 이다. 1977年 10月 13日 京畿道의 記念物 第41號로 指定되었다.

1695年 門렬공 박태보 (文烈公 朴泰輔)를 모시기 위해 京畿道 과천군 의 怒江(鷺江, 現 서울 鷺梁津 )에 忠烈祠 (忠烈祠)로 지어져 1697年 賜額을 처음 받았다. 1791年 怒江書院 으로 昇格되면서 다시 賜額을 받았다.

書院 撤廢令 을 거치고 韓國戰爭 때 破損되었고, 1969年 現在 位置인 議政府市 에 復元하였다.

槪要 [ 編輯 ]

朝鮮 肅宗 때 文臣인 박태보(1654∼1689)의 學問과 德行을 追慕하기 위해 세운 書院이다.

朴泰輔는 湖南 暗行御史, 坡州 牧師 等의 벼슬을 歷任하였고 仁顯王后의 廢位를 反對하는 上疏를 올렸다가 甚한 拷問을 받고 珍島로 流配가는 途中 죽었다. 學問에도 깊고 性品도 剛直한 분으로 알려졌으며 죽은 뒤에 領議政에 任命되었다.

肅宗 21年(1695)에 세운 이 書院은 肅宗 27年(1701)에 國家에서 認定한 賜額書院으로 ‘怒江’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元來는 서울 鷺梁津에 세웠으나 韓國戰爭으로 消失되었고 1968年 只今 있는 자리로 옮겨 復元한 것이다. 興宣大院君의 書院撤廢令 에도 閉鎖되지 않은 47個 書院 中 하나이다.

境內 建物로는 祠堂, 東齋·西齋, 高直射 等과 出入門이 있으며 敎育場所로 使用되는 講堂은 따로 두지 않았다. 祠堂은 박태보의 位牌를 모시고 있는 建物로 앞面 3칸·옆面 2칸 規模이다. 지붕은 옆面에서 볼 때 사람 人(人)字 模樣인 맞배지붕으로 꾸몄으며, 各 칸에는 4짝으로 이루어진 門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裝飾하여 만든 恐怖는 새 날개 模樣의 匿空 樣式을 使用하였는데 가운데 칸에 龍머리를 添加하였다. 桐·西齋는 溫突房으로 꾸며 儒生들이 工夫하면서 起居하는 建物이다. 앞面 3칸·옆面 1칸 規模로 앞에는 退마루를 두었다.

해마다 3月과 9月에 祭祀를 지내고 있다.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