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
(靈圭,
1537年
~
1592年
9月 23日
(
陰曆 8月 18日
)
[1]
)는
朝鮮
중기의 僧兵長이다. 俗姓은
朴
, 本貫은
密陽
, 號는 騎虛當(騎虛堂)이다.
壬辰倭亂
當時 義兵將
조헌
(趙憲)과 함께 活躍하였다.
忠南
公州
出身이다.
鷄龍山
甲紗
에 出家하여
西山大師
의 告祭로
公州
청련암에서 修道하였고 船長으로 武藝를 익혔다.
1592年
壬辰倭亂
이 일어나자 最初로 僧兵을 일으켜 500名을 이끌고 義兵將
조헌
과 함께
淸州 戰鬪
에서 청주성을 奪還했다. 그리고 다시
第2次 錦山 戰鬪
를 벌였고 激戰 끝에 싸우다 戰死하였다.
錦山
의
七百義塚
에 묻히고
종용사
에 祭享되었으며 法도, 大人에 依해
진락산
에 영각이 세워졌으며 義旋이란 扁額이 下賜되었다.
電氣 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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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智元, 《燕巖集》 卷10, 令閨非(靈圭碑)
- 황경원, 《江한집》 卷9, 靈圭大使 四절기
- 조인영, 《운석유고》 卷12, 靈圭大使 荀의 悲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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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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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인영, 《운석유고》 卷12, 靈圭大使 荀의 悲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