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右度키兒 마크렌步리티社
(
그리스어
: Ευδοκ?α Μακρεμβολ?τισσα), (
1021年
?
1096年
)는
비잔티움 帝國의 皇帝
콘스탄티누스 10歲
皇后였으며,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로마누스 4歲
와 結婚하여 로마누스가 皇帝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總大主敎
미카일 케룰라리오스
의 조카이기도 하다.
에右도키아는
1050年
警 콘스탄티누스가 皇帝가 되기 前에 結婚했다.
1059年
콘스탄티누스가 皇帝가 되자 皇后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1067年
죽었는데 當時 遺言으로 에우도키아에게 再婚하지 말 것을 誓約하게 했다. 그女는 어린 아들
미카일
을 代身해 統治했다. 當時
셀주크 투르크
의 侵略으로
비잔티움 帝國
에는 强力한 皇帝가 必要했기 때문에 그女는 콘스탄티누스와의 誓約을 깨고
1068年
1月 1日
로마누스 디오게네스
와 再婚하여 로마누스가 皇帝가 되었다.
새 男便 로마누스는 그女와 그女의 背景인 文民官僚階層을 排除하고 軍隊를 强化시켰다. 그러나
1071年
셀주크軍과
滿池케르트 戰鬪
에서 비잔티움軍이 大敗하고 로마누스는
셀주크 술탄
알프 아르瑟란
의 捕虜가 되었다. 滿池케르트에서 皇帝의 生死가 알 수 없는 狀態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에서는 쿠테타가 일어나 에右도키아는 皇后의 地位에서 廢位되고 强制로 削髮되어 修道院으로 流配되었다.
1078年
미카일 7歲
가
니케抛루스 3歲
에게 廢位되고 니케抛루스는 에右度키아와 結婚하려 했는데 요한네스 두카스의 反對로 이 計劃은 成事되지 않았다. 에右도키아는 1096年 修女院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