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로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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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로렌 ( 알레만어 : Elsass?Lothringa 엘사스로트링겐 , 프랑스語 : Alsace-Lorraine , 獨逸語 : Elsaß-Lothringen 엘자스로트링겐 [ * ] )은 알자스 로렌 두 地域을 함께 부르는 옛 名稱이며, 現在는 프랑스 管轄으로 알자스-모젤 ( 프랑스語 : Alsace-Moselle )이 되었다. 이곳은 獨逸 第2帝國 보불戰爭 프랑크푸르트 條約 을 통해 프랑스 第2帝國 管轄 下에 있던 地方을 獨逸 帝國이 占領하여 誕生하였다. 알자스-로렌 地方은 第1次 世界 大戰 이 끝난 後에 베르사유 條約 으로 다시 프랑스로 移管되었다.

1871年 當時 이곳의 正式 名稱은 獨逸 帝國의 管轄으로 帝國領 엘자스-로트링겐 ( 獨逸語 : Reichsland Elsaß?Lothringen , 알레만어 : Richsland Elsass?Lothringa )으로 命名되었으며, 보불戰爭의 勝利를 통해 第2라이히(獨逸 第2帝國)는 로렌 地方의 某셀레 데파르트網 과 알자스 地方을 大部分 合倂하였다.

第2라이히는 알자스 地方의 96%, 로렌 地方의 26%를 차지하였으며 나머지 地域은 繼續 프랑스 管轄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歷史的 理由로 알자스-로렌 地方에는 "알자스-로렌 地方法"이라는 특수한 法律이 適用된다. 프랑스로 알자스-로렌이 移管된 後 프랑스 行政區域上 알자스-모젤 地方이 되었고, 現在 프랑스 그랑테스트 레지옹에 屬한다.

알자스-로렌의 國紀
알자스-로렌의 文章

지리 [ 元本 編輯 ]

알자스-로렌의 面積은 14,496 km 2 이였고, 主導는 스트라스부르 였다. 알자스-로렌은 3個의 區域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都市 [ 元本 編輯 ]

1910年 알자스-로렌에서 가장 巨大한 都市들은 人口順으로 다음과 같았다.

歷史 [ 元本 編輯 ]

1870年의 로렌 地方. 검은色 線이 現在의 週( 데파르트網 ) 境界이고 當時의 州(데파르트網) 區分은 色깔로 되어 있다

알자스-로렌 地域은 921年 부터 神聖 로마 帝國 에 屬했으나, 1600年代 初盤부터 獨逸 內에 30年 戰爭 이 일어나고 1648年 베스트팔렌 條約 의 結果 프랑스 嶺으로 服屬되어 倂合되었다. 1871年 프로이센-프랑스 戰爭 프랑크푸르트 條約 에 따라 알자스-로렌은 새로 만들어진 獨逸 帝國 의 領土로 되돌려졌다. 獨逸 帝國의 宰相 오토 폰 비스마르크 는 알자스-로렌 地域에 可能한 限 많은 自治權을 附與하도록 하여 프랑스 文化 및 影響圈에서 벗어나 獨逸 帝國令으로 自然히 물들이기 위해 積極 推進하려고 했으나, 周邊 保守派들(융커 階層)의 反撥이 甚해 結局 알자스-로렌 地方은 獨逸 帝國令으로 服屬되었다.

第1次 世界 大戰 直後 暫時 獨立國(알자스-로렌 獨立 共和國)으로 있다가 1919年 베르사유 條約 으로 프랑스 領土가 되었다. 알자스로렌의 讓渡에 따라서 프랑스에 獨逸式 社會保障制度가 導入되었다.

이 地域은 1940年 나치 獨逸 에 依해 다시 合倂되었으나, 1945年 第2次 世界 大戰 이 끝난 後 프랑스에게 되돌아갔다.

特記할 點은 프랑크푸르트 條約으로 로렌의 約 1/4이 獨逸 帝國의 領土가 된 바, 當時 프랑스의 株 境界와 相關 없이 領土의 割讓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州의 境界가 調整되었다. 以後 알자스-로렌이 프랑스領으로 되돌려진 以後에도 調整된 境界를 그대로 維持한 채로 現在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