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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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身上情報
出生 1972年 4月 28日 ( 1972-04-28 ) (52歲) [1]
大韓民國 慶尙北道 靑松郡
職業 큐레이터 , 隨筆家 , 大學 敎授
國籍 大韓民國
學歷 重慶高等學校 (卒業)
캔자스 大學校 西洋畫科(中退)
經歷 東國大學校 助敎授
宗敎 改新敎 [2]
장르 美術
主要 作品
影響

신정아 (申貞娥, 1972年 4月 28日 ~)는 大韓民國 큐레이터 利子 大學 敎授 로, 學歷 僞造 및 橫領 事件을 일으켜 實刑을 宣告받고 服役한 人物이다. 한때 "美術界의 신데렐라"로 불리며 성곡미술관 의 큐레이터와 東國大學校 助敎授를 歷任하였고, 2007年, 光州 비엔날레 共同 藝術監督으로 內定된 바 있다.

學歷 [ 編輯 ]

生涯 [ 編輯 ]

初期의 삶 [ 編輯 ]

重慶高等學校 卒業 後 캔자스 大學校  西洋畫科로 留學을 떠났으며 放學때 故國에 돌아와 1995年 6月 23歲 여름에 故國에 머무르던 中 삼풍백화점 崩壞 事故 로 因해 24時間 동안 갇혀있다 救助되었다. 1996年 成跡 未達로 캔자스 大學을 中退하였다.

學歷 僞造 波紋 [ 編輯 ]

東國大學校 와 2008 光州 비엔날레에 支援할 때 신정아는 1994年 캔자스 大學校 에서 西洋化와 版畫로 學士學位(BFA)를, 1995年 같은 大學에서 經營學 碩士(MBA)를, 2005年 예일 大學校 에서 美術史로 博士 學位를 받았다고 記載하였으나 [3] 實際로는 重慶高等學校 를 卒業하고 캔자스代(美國 The University of Kansas 西洋畫)學部課程을 中退하였다. [4] 2007年 本人은 多少 非正常的인 方法(學習튜터雇傭, 代理出席)으로 캔자스 大學校에서 學ㆍ碩士, 예일 大學校에서 博士 學位를 取得했다고 主張했지만 裁判 過程에서도 學位取得 事實이 確認되지 않아, 이 事件 以後로 大韓民國 社會에서는 學位 檢證 바람이 불었다.

노무현 政府 當時 변양균 靑瓦臺 政策室長과 不適切한 關係였다는 等의 가십性記事가 쏟아졌고, 便 室長은 9月 10日 辭任, 신정아는 2007年 7月 16日 美國으로 逃避, 潛跡하였다. 9月 16日 돌아온 신정아는 空港에서 私文書 僞造 및 業務妨害 嫌疑로 逮捕令狀을 發付받아 待機하고 있던 檢察 搜査官들에게 바로 連行되어 서울西部地檢에서 調査받았다. 調査 內容은 예일大學校 博士學位의 眞僞 與否와, 東國大學校 敎授 任用 및 光州 비엔날레 總監督 選任 過程에서 변양균에게 請託을 했는지의 與否였으며, 檢察은 美國 逃避經歷(2007年 7月)이 있고, 證據를 湮滅할 危險이 있다고 判斷하여 拘束令狀을 申請하였다. 그러나 9月 18日 서울 西部地法은 逃走 및 證據 湮滅의 可能性이 없다며 檢察의 令狀을 棄却하였다. [5] 그 以後 橫領 等의 嫌疑가 追加로 드러나 10月 9日 拘束令狀이 再次 請求되고, 11日 令狀實質審査에서 변양균 前 靑瓦臺 政策室長과 함께 拘束이 決定되어 영등포拘置所에 收監되었다. 以後 18個月 만인 2009年 4月 10日 保釋으로 풀려났다. [6]

2007年 12月 27日, 東國大學校는 예일 大學校에서 신정아의 "美術史 博士學位 學歷 確認 팩스"가 眞本이라는 通報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팩스'自體는 虛僞가 아닌 예일대에서 보낸 것이 맞다는 것을 뜻하고, 이에 예일대는 東國大에 謝過를 표한다. 하지만 '팩스'가 眞本이라는 것이고 신정아의 博士學位는 虛僞였음이 밝혀졌다. [7]

波及 效果 [ 編輯 ]

이에 國防部 에서도 신정아와 마찬가지의 學歷僞造 事例가 있는지의 與否를 調査했다. 그 結果 學士士官 에서 學歷僞造로 合格하여 任官하거나 武官候補生으로 敎育中에 있는 前 現職 將校 및 候補生들 中에 學歷僞造子 23名(42期 2名 - 豫備役, 44期 5名 - 大尉(晉), 46期 3名 - 中尉, 48期 5名 - 所謂, 以上 現役, 50期 8名 - 候補生)을 摘發했다. 이들은 필리핀 某處의 某 大學에서 發給한 學位를 利用하여 任官하였으며 필리핀 滯留期間이 學位를 取得하기에는 터무니없이 不足한 點을 異常히 여겨 뒷調査 끝에 摘發했다. 結局 國防部는 이들에 對해 이미 轉役한 42期는 刑事 處罰, 現役 將校 身分인 44期~48期는 任官 無效處分 및 現役兵 入營 處理, 아직 候補生人 50期에 對해서는 退校 措置했다. [8] 또한 政府 機關 뿐만 아니라 民間에서도 學歷 僞造에 對한 憂慮가 擴散되어 高學歷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 對한 學歷 檢證이 廣範圍하게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9] 學歷僞造가 밝혀진 사람들 中에서 刑事處罰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演藝界에서도 마찬가지의 學歷僞造 事例가 있는지를 調査하다가 歌手 타블로 가 搜査對象이 되었다. 하지만 타블로는 스탠퍼드 大學校 에서 實際로 在學해서 碩士學位를 받았으며 大韓民國 滯留期間은 放學期間인 것으로 確認되어 無嫌疑 處分이 되었다.

2011年 自身의 收監番號였던 4001을 題目으로 내세운 에세이를 出刊, 告白型 에세이라는 장르로 自身과 聯關되어 있던 많은 事件들을 言及했다.

宗敎 [ 編輯 ]

搜査 過程에서 그女 自身은 篤實한 改新敎 信者임에도 不拘하고 그女의 어머니를 비롯한 周邊 人物들은 모두 佛子이며, 佛敎界 모임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出世를 위해 宗敎를 利用했다는 推測이 나왔다. [2]

著書 [ 編輯 ]

  • 《4001》 四月의책, 2011年 3月, ISBN   978-89-964610-6-7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신정아 波紋’… 예일大 “동국대의 學歷照會 公文 못받아”” . 朝鮮日報 . 2007年 7月 19日 . 2007年 10月 27日에 確認함 .  
  2. ‘基督敎 信者로 佛敎人事 接近… 專門家들 ‘空想虛言症’ 診斷 , 文化日報 2007年 9月 13日
  3. University Prof. Forges Degrees
  4. [1]
  5. 신정아 令狀 棄却… "逃走·證據湮滅 憂慮없다" Archived 2007年 9月 29日 - 웨이백 머신 - 韓國日報
  6. 當時 言論에서 報道했던 여러 가지 疑惑 中에서 有罪로 確定된 部分은 一部일 뿐이라고, 신정아는 自敍傳 4001에서 적고 있다. 김지환 記者 (2009年 4月 10日). “신정아氏 18個月만에 釋放” . 京鄕新聞.  
  7. 신재우 記者, "동국대, 예일대가 보낸 學歷 팩스는 眞本", 聯合뉴스, 2007. 12. 27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8. '假짜學位' 學士將校 무더기 摘發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9. 열흘 만에 4百件 問議…學歷 不信 擴散! YTN 2007年 8月 1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