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東宮
(寺洞宮)은 現在
서울特別市
鍾路區
관훈동
196番地 一帶에 있었던
大韓帝國 高宗
의 庶出 5남이었던
의친왕
의 私邸이자 친왕부(親王府)이다.
歷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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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궁은 의친왕 이講義 私邸로 관훈동 196番地 一帶에 있던 宮으로 洋屋 1洞과 韓屋 數十東으로 構成된 大邸宅이었다. 1906年 사동궁에 의친왕部(義親王府)가 設置되었다.
[1]
1910年
韓日 倂合 條約
締結 後에 이강이
日本 帝國
政府가
大韓帝國 皇室
의 傍系 血族에 對해 規定한 身分인 公族으로 分類되어 共의 地位를 받으면서 社東宮은 ‘이강공저’(公邸)로 불리었다. 이강이
상하이
로 亡命하려다 失敗하였던 大同團 事件의 影響으로 1930年에 强制로 隱居하게 되고, 長男 이건이 뒤를 이어 公暇를 世襲하게 되면서 ‘이건공저’로 불리었다.
의친왕은
한국기원
의 母胎인 한성기원이 자리를 잡지 못할 때 自身의 사위 이학진(李鶴鎭)의 周旋으로 사동궁의 韓屋 15칸을 起源으로 提供하였고, 사동궁에 자리를 잡으며 朝鮮起源으로 名稱을 바꾸었다.
[2]
[3]
1917年 《京城府管內指摘目錄》에 따르면 社東宮은 大地가 總 7880m
2
에 達하였지만 漸次 縮小되어가다 1947年에 民間에 불하되었다.
[4]
[5]
그 後 社東宮 建物의 一部가 1955年부터 ‘桃源’이라는 妖精으로 使用되었다. 2005年
종로구청
이 土地와 建物을 買入하여 公營駐車場을 造成하였다. 買入 當時 1950年代 前後에 建立된 것으로 推定되는 韓屋 3채와 1970年代 以後 增築된 것으로 推定되는 洋屋 2채가 있었으나 增築된 韓屋은 韓屋 本然의 木造構造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고, 나머지 韓屋 3채의 境遇도 增築, 改築, 道路 開設 等으로 一部 變形, 毁損된 狀態였다. 서울市는 保存 狀態가 良好한 建物 1棟을 補修하여 現在 仁寺洞 觀光弘報館으로 使用 中에 있으며, 그 以外 建物은 駐車場 造成 時에 撤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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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궁의 歷代 首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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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東宮 宗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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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1代 :
의친왕
李堈(義親王 李堈, 1877年 ~ 1955年)
- 第2代 :
이건
(李鍵, 1909年 ~ 1990年)
社東宮 使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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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3代 :
이곤
(李?, 1920年 ~ 1984年)
- 第4代 :
李儁
(李준, 1961年 ~ )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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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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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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