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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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쿤데라(1980年)
作家 情報
本名 Milan Kundera
出生 1929年 4月 1日 ( 1929-04-01 )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
死亡 2023年 7月 11日 ( 2023-07-11 ) (94歲)
프랑스 파리
國籍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체코
職業 小說家, 詩人, 隨筆家, 劇作家
學歷 프라하 카렐 大學校
장르 小說, 詩, 隨筆, 戱曲
受賞 예루살렘上
유럽 文學을 위한 오스트리아 國家像
헤르더上
署名

밀란 쿤데라 ( 체코語 : Milan Kundera , 체코語 發音: [?m?lan ?kund?ra]  ( ) , 1929年 4月 1日 ~ 2023年 7月 11日 )는 체코 프랑스 의 小說家이다.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체코가 蘇聯軍에 占領 當한 後 市民權을 剝奪 當해, 프랑스로 亡命하였다. 以後 1989年 체코 民主化 以後 本國으로 臨時 歸國하였다.

쿤데라의 삶 [ 編輯 ]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 의 相當히 氣品 있는 집안에서 루드비크 쿤데라 (1891年~1971年)의 아들로 태어났다. 루드비크는 作曲家 레오視 야나체크 (1854年~1928年)의 門下生이었으며, 체코의 主要한 音樂學者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1948年에서 1961年 사이에는 브르노 뮤지컬 아카데미의 首長이었다. 쿤데라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나중에는 그 亦是 音樂學을 工夫했다. 이러한 音樂的 背景은 그의 作品의 根幹이 된다. 甚至於 그는 樂想 記號를 텍스트 속에 그려 넣기도 했다.

1948年, 그는 브르노에서 中等敎育 過程을 마친다. 그는 프라하 카렐 大學校 의 藝術學部에서 文學과 美學을 工夫했으나, 두 學期만에 프라하 의 公演藝術 아카데미의 映畫學部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映畫 企劃과 戱曲 創作에 對한 講義를 들었다. 映畫 아카데미 AMU에서 助敎로 活動하기도 했다. 1950年에, 그는 暫時 政治的인 理由로 인해 學業을 中斷 當했다. 1952年 卒業 後에, 映畫 아카데미에서 世界 文學을 가르치는 講師가 되었다. 쿤데라는 民主主義의 체코슬로바크를 經驗하지 않은 젊은 世代에 屬했다. 當時 체코슬로바키아 의 젊은이의 思想은 체코슬로바키아 共産黨 에 依해 많은 影響을 받았다. 1950年, 그와 얀 트레풀카 (Jan Trefulka)라고 하는 체코의 作家는 "反共産黨 活動"이라는 罪目으로 共産黨에서 추방당했다. 트리펄카는 이 事件을 그의 中篇小說 《그들에게 내린 幸福》(1962)에 描寫했다. 밀란 쿤데라 亦是 이 事件을 《 弄談 》(1967)에서 메인 테마로 使用하였다.

1956年에 쿤데라는 共産黨에 再入黨했다. 그러나 1968年 체코의 藝術家이자 作家인 바츨라프 하벨 과 함께 프라하의 봄 에 參與하였다. 以後 1970年 다시 共産黨에서 追放 當했다.

쿤데라는 1975年부터 프랑스 에 居住했으며, 1981年에 프랑스 市民權을 取得했다. 以後 2019年에 다시 체코 國籍을 回復했다.

作品 活動 [ 編輯 ]

쿤데라의 1番째 小說 《 弄談 》에서는 社會主義 體制의 全體主義 敵 特質에 對한 諷刺的 內容이 담겨있다. 그의 이와 같은 社會主義에 對한 批判으로 因해, 1968年 소비에트 聯邦 이 그의 故鄕을 占領한 以後 쿤데라는 곧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며 얼마間 그의 執筆 活動이 禁止되었다. 1975年, 프랑스 로 亡命했다. 그곳에서 그는 《 웃음과 忘却의 冊 》(1979)을 썼다. 《웃음과 忘却의 冊》은 다양한 方法으로 소비에트 體制에 抵抗하고 있는 체코 市民들의 이야기이다.

1984年, 그는 《 참을 수 없는 存在의 가벼움 》을 發表했다. 이 作品은 그의 代表作이기도 하다. 이 에서는 個人의 運命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그리고 있으며, 危險을 무릅쓰고 사는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反復과 經驗, 試驗과 失敗의 可能性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1988年, 美國의 映畫監督 필립 코프먼 은 이 作品을 映畫化했다. 1990年, 쿤데라는 이 小說을 再發刊 하기에 이른다. 체코에서 쿤데라가 執筆한 마지막 作品인 이 小說은, 그의 어떤 作品보다 世界主義的이며, 哲學的(조금 政治的이기도 하다)이다.

쿤데라는 自身을 政治的 或은 反體制的 作家가 아니라 純粹한 作家로서 보아달라고 累次 强調했다. 政治的 코멘트는 (特히 웃음과 忘却에 關한 冊에서부터) 廣義의 哲學的 테마인 境遇를 除外하고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쿤데라 小說의 스타일은 哲學的 餘談(餘談)의 얽힘이자, 로베르트 무질 의 小說과 니체의 散文에서 많은 影響을 받았다. 이러한 쿤데라의 小說的 技法은 알랭 드 普通 이나 애덤 鉏웰과 같은 사람들에 依해 借用되었다. 쿤데라는 小說的 靈感을 조반니 보카치오 라블레 뿐만 아니라 로렌스 스턴 , 드니 디드로 , 무질, 비톨트 곰브로비치 , 헤르만 브로흐 , 프란츠 카프카 , 마르틴 하이데거 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얻었다.

또한 그는 체코 傳統 音樂이나 버르토크 벨러 , 레오視 야나체크 와 같은 사람들의 音樂에서도 影響을 받았다. 이러한 影響때문에 그는 自身의 첫 小說 弄談 에 音標를 그려넣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쉰베르크의 無調性 槪念을 導入했다. 政治的인 擴張으로도 나아갔다( 鄕愁 (小說) ).

作品들을 체코語와 프랑스語로 썼지만, 1985-1987年 사이에 以前에 쓴 作品들의 프랑스語 飜譯을 修正했다. 따라서 프랑스語本을 權威를 가진 原本으로 取扱한다. 國內 飜譯 作品들도 프랑스語本으로 飜譯하고 있다.

主要 著書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