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무질
(
獨逸語
:
Robert Musil
1880年
11月 6日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
1942年
4月 15日
스위스
제네바
)은
오스트리아
의 作家이다.
紹介
[
編輯
]
무질은 알프레드 무질(
獨逸語
:
Alfred Musil
,
1846年
-
1924年
)과 그의 아내 헤르美네(
獨逸語
:
Hermine
,
1853年
-
1924年
)의 아들이다. 이들은 血緣은 아니지만 "三寸"이라 불리는 하인리히 라이터(
獨逸語
:
Heinrich Reiter
,
1856年
生)과 함께 살았다.
빈 技術士官學校, 브륀 工科大學 等에서 受學하면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메테를링크, 에머슨 等의 作品을 읽었다. 以後 베를린대학에서 哲學과 論理學, 心理學을 工夫하면서 첫 小說 ≪生도 퇴를레스의 混亂≫(Die Verwirrungen des Zoeglings Toerleß, 1906)을 發表하여 評壇의 좋은 評價를 받았다. 무질은 1902年 슈투트가르트 工科大學의 助敎 時節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이 小說을 쓰기 始作했다고 述懷하고 있다. 1908年 같은 大學에서 에른스트 마흐에 關한 硏究로 博士學位를 받았고 以後 哲學 敎授職을 提議받았으나 拒絶하고 作家로서의 길을 걷는다.
1930年과 32年 平生의 力作 ≪特性 없는 男子≫(Der Mann ohne Eigenschaften) 1, 2卷을 出刊했다. 이 小說의 主人公인 울리히의 눈을 통해 본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
의 道德的 및 知的 衰退를 다루고 있다. 背景은
第1次 世界 大戰
直前의
비엔나
이다. 무질은
1914年
에서
1918年
사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帝國 陸軍에서 事務官으로 從事하였었다.
《
特性없는 男子
》는 1938年 나치 政權에 依해 獨逸과 오스트리아에서 販賣가 禁止되었다. 以後 ≪特性 없는 男子≫를 完成하기 위해 스위스로 移住했으나 疾病과 生活苦에 시달리다가 結局 未完成인 채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生前에 評壇 外에 큰 注目을 받지 못했던 ≪特性 없는 男子≫는 아돌프 프리제가 遺稿를 整理한 全集이 出刊되면서 世界的인 關心을 끌었고 只今은 20世紀에 發表된 가장 重要한 獨逸語 小說로 꼽히고 있다.
이들 作品 外에 短篇集 ≪合一≫(Vereinigungen) ≪세 女人≫(Drei Frauen), 戱曲 ≪夢想家들≫(Die Schwaermer), 文集 ≪生前의 有故≫(Nachlass zu Lebzeiten) 等이 있다.
參考 資料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