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야 파블로브나
(
Мария Павловна
,
1786年
2月 16日
~
1859年
6月 23日
)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大公國
칼 프리드리히 對共
의 아내이다.
生涯
[
編輯
]
1786年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서
러시아 皇帝
파벨 1歲
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1804年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大攻勢子 칼 프리드리히와 結婚하였고 2男 2女를 낳았다.
1853年
男便이 죽고 난 뒤에는 모든 公務에서 隱退하였고, 2年 뒤인
1855年
조카
알렉산드르 2歲
의 戴冠式에 參席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訪問했다.
마리야는 藝術과 科學에 關心이 많았으며 작센바이마르아지제나흐 大公國의 文化를 발전시키는 데 큰 寄與를 했다. 그女는
예나 大學
에 여러 學科를 新設하고
알렉산더 폰 훔볼트
를 敎授로 招聘했다. 마리야는 러시아 詩人
바실리 駐콥스키
와 平生에 걸쳐 書信을 交換했으며,
프리드리히 실러
는 마리야에게 自身의 遺作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프란츠 리스트
를 宮廷에 招請해서 演奏會를 열었으며,
바그너
의 오페라 《
로엔그린
》의 初演이 바이마르에서 열린 것도 이 時期의 일이다.
子女
[
編輯
]
- 폴 알렉산더(1805年)
- 마리(1808~1877)
- 아우구스打
(1811~1890)
빌헬름 1歲
의 皇后
- 카를 알렉산더(1818~1901)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對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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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世代 (
알렉세이 1歲
의 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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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世代 (
알렉세이 皇太子
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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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3世代 (
표트르 3歲
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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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世代 (
파벨 1歲
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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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世代 (
파벨 1歲
의 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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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6世代 (니콜라이 1世의 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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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7世代 (니콜라이 1歲의 曾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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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8世代 (알렉산드르 2歲의 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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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9世代 (알렉산드르 2歲의 曾孫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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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굵은 글씨는
前러시아의 女帝
로 卽位했음을 意味
- †: 표트르 1歲의 夭折하지 않은 세 딸은
黃太女
稱號를 使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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