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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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
大韓民國 大法官
任期 2020年 3月 4日~

身上情報
出生日 1962年 11月 20日 ( 1962-11-20 ) (61歲)
出生地 大韓民國 慶尙南道 昌寧郡
學歷 한양대학교 法學 學事
經歷 特許法院 部長判事
서울高等法院 部長判事
서울北部地方法院 法院長
所屬 大法院 大法官
第22代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長
本館 光州 (光州)
兄弟姊妹 노태강 (兄)

노태악 (盧泰嶽, 1962年 11月 20日 ~)은 大韓民國의 大法官 (2020. 3.~), 第22代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長 (2022. 5.~)이다.

生涯 [ 編輯 ]

노태악은 1962年 慶尙南道 昌寧郡 이방면 동산리 에서 제일모직 染色 工場 勞動者의 3兄弟 中에 次男으로 태어났다. 獨立有功者 노차갑 의 孫子이자 朴槿惠 大統領이 在任 時節 "참 나쁜 사람"이라고 指目하며 辭職을 强要한 文化體育觀光部 2次官 노태강 이 親兄이다.

1981年 大邱 에서 계성高等學校 를 卒業하였으나 1980年 課外禁止 措置로 入住 課外를 할 수 없게 되자 苦悶했던 노태악은 "兄님 親舊들이 再修해서 '3學年 때까지 司法試驗 1次에 合格하면 寄宿舍와 奬學金 支援을 받을 수 있는' 漢陽大 考試班 寄宿舍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그분들의 紹介를 받아 入學하게 된 [1] 한양대학교 法學科 在學 中이던 1984年 第26回 司法試驗 에 合格했다. 司法硏修院 16基를 修了하고 陸軍 法務官을 거쳐 1990年 水原地方法院城南支院 判事에 任官했다. 以後 大邱地方法院 判事와 大法院 裁判硏究官, 大田地方法院 部長判事, 司法硏修院 敎授, 特許法院 部長判事, 서울中央地方法院 刑事首席部長判事, 서울북부지법院長 을 歷任하고 2019年 2月부터 서울高等法院 部長判事로 在職했다

정현종 時人의 「訪問客」에 나오는 句節처럼 "한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一生이 오는 것"과 같기에 "世上에 重要하지 않은 事件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裁判에 臨하려고 努力하면서 "機械的인 法 適用으로 形式的 結論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當事者의 眞心을 헤아린 解決 方案을 摸索했는지, 判決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當事者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理解했는지 苦悶을 거듭했다."고 밝힌 [1] 노태악은 判事로 있으면서 夜間勤務 中 醉客을 相對하다 腦出血이 發病한 警察官의 公務上 災害 認定 △公正去來委員會가 퀄컴에 賦課한 1兆원臺 課徵金 適法 △改正 債務者回生法上 外國倒産節次 代表者의 法的地位에 關한 法理 設施 △李承晩 大統領과 장택상 前 國務總理 等의 名譽를 毁損해 死者名譽毁損 嫌疑로 不拘束 起訴된 KBS 大河드라마 '서울 1945'의 PD와 作家에게 無罪 宣告 等이 있다.

서울高等法院에서 國際去來·知識財産權 專擔裁判部 裁判長을 3年 6個月 程度하면서 國際去來 分野는 先例가 없는 事件이 많아 紛爭 當事者가 訴訟할 때 어느 程度 結論을 豫想할 수 있는 法的 判斷 基準을 마련하기 위해 仲裁判定富의 節次 進行에 不服할 수 있는 仲裁法 第17條의 權限審査規定, 債務者回生法에 따른 外國倒産節次 代表者의 法的 地位에 關한 法理를 最初로 展開했으며 大法院 傘下 國際去來法硏究會長을 맡아 FTA 等 外國과의 投資協定이 늘어나는 趨勢에 맞춰 紛爭解決節次의 主要 爭點, 實際 仲裁 事例를 檢討·分析한「투자자-국가분쟁해결절차에 關한 硏究」論文集을 代表로 發刊했다.

배우고 工夫하는 걸 좋아하는 노태악은 2003年 司法硏修院 國際去來總論 指導敎授를 맡은 게 契機가 돼 韓國民事訴訟法學會, 韓國國際司法學會, 國際去來法學會에 出席했으며 유엔 國際商去來法委員會(UNCITRAL) 會議에 첫 判事 代表로 參席했다. [1]

서울高等法院 第19民事部 裁判長으로 있던 2015年 4月 3日 大法院 全員合議體가 2013年 4月 18日에 "國家緊急權에 關한 大統領의 決斷은 憲法上의 發動 要件 및 限界에 符合하여야" 하고 " 維新憲法 第53條에 規定된 緊急措置 卷 亦是 例外가 될 수는 없다"는 理由로 緊急措置 9號 發令 行爲에 違憲·無效로 한 것을 根據로 1審에서 緊急措置 9號 被害者의 原稿 勝訴한 判決을 取消하면서 " 維新憲法 에 根據한 大統領의 緊急措置權 行事는 高度의 政治性을 띤 國家行爲"라며 "大統領의 이러한 權力行使가 國民 個個人에 對한 關係에서 民事上 不法行爲를 構成한다고 볼 수 없다"고 判斷했다. [2] 이와 關聯하여 司法權 濫用으로 拘束된 梁承泰 指示로 法院行政處 가 作成한 文件에는 '國政運營 協助 事例'로 緊急措置 賠償判決이 包含돼 있다.

2019年 서울北部地方法院長 에 赴任하면서 書藝를 배우기 始作하여 2年에 걸쳐 新聞紙에 한一字(一) 쓰기부터 始作해 千字文을 썼으며 마음에 새기는 글句로는 '스스로 쓰는 訃告'라는 뜻 을 가진 詩人 노수신 先生의 詩 「자만(自挽)」을 써서 第9回 全國法院藝術大展에 出品했다. [1]

2020年 1月에 大法官 候補者로 任命 提請 [3] 되어 文在寅 大統領이 "法官으로서 뛰어난 能力과 資質을 바탕으로 한 國民의 基本權 保障과 憲法 守護의 意志, 合理的으로 공정한 裁判을 통한 司法府 信賴 回復 및 裁判의 獨立에 對한 確固한 哲學을 가지고 있는 對象者"로 "卓越한 法理論을 바탕으로 다양한 裁判業務를 擔當하고 特許法院 部長判事와 서울高等法院 知的財産專擔裁判部, 國際去來專擔裁判部 裁判長을 歷任하면서 法院 안팎에서 特許와 國際去來分野에 專門性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評價받고 있다"며 任命同意를 要請하여 열린 大法官 候補 國會 人事聽聞會에서 2018年 2月부터 5月에 司法行政權 濫用 疑惑 關聯 特別調査團 委員으로 임종헌 法院行政處 次長 等의 하드디스크 파일을 調査할 當時 “裁判 去來를 試圖한 痕跡은 있으나 現在 資料만으로는 有罪가 나오기 어려운 程度라 判斷했다”고 밝혔다. [4]

大法官에 任命된 노태악은 2021年 4月 29日에 憲法裁判所 의 違憲政黨 解散 決定으로 議員職을 喪失한 統合進步黨 國會議員 金美希 · 金在姸 · 오병윤 · 李相奎 · 李石基 前 議員이 國家를 相對로 낸 國會議員地位 確認訴訟에서 上告審을 맡아 棄却 決定을 하면서 原審을 確定하자 法廷 傍聽席에 앉아 있던 오병윤 으로부터 "개새끼들아 너희가 大法官이냐 개새끼들아"라고 侮辱 을 當했다 [5]

한양대학교 總同門會(會長 손용근)는 2021年 7月9日 午後 4時 서울市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 同門會館 6層 大講堂에서 자랑스런 漢陽引上 施賞式을 열고 노태악에 對해 "少數者와 社會的 弱者를 위한 司法을 實踐함으로써 漢陽人의 位相을 드높였다"며 施賞했다. [6]

2022年 4月 옥시 加濕器 殺菌劑에 對한 實驗操作 嫌疑를 받은 서울對 敎授에게 該當 嫌疑에 對해 無罪 判決을 내렸다.

學歷 [ 編輯 ]

經歷 [ 編輯 ]

  • 1984年: 第26回 司法試驗 合格
  • 1987年: 司法硏修院 16期 修了
  • 1990年: 수원지방법원 城南支院 判事
  • 1992年: 서울地方法院 東部支院 判事
  • 1994年: 大邱地方法院 盈德支院 判事
  • 1996年: 大邱高等法院 判事
  • 1997年: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判事
  • 1998年: 서울地方法院 判事
  • 1999年: 서울高等法院 判事
  • 2002年: 大田地方法院 部長判事
  • 2006年: 서울中央地方法院 部長判事
  • 2009年: 特許法院 部長判事
  • 2010年: 韓國國際司法學會 副會長
  • 2011年~2012年: 서울高等法院 部長判事
  • 2011年: 大法院 司法情報化硏究會長
  • 2012年: 서울中央地方法院 刑事首席部長判事
  • 2012年: 大法院 刑事法硏究會長
  • 2014年: 서울高等法院 部長判事
  • 2017年 2月~2019年 2月: 서울北部地方法院 法院長
  • 2018年: 韓國民事訴訟法學會 首席副會長
  • 2019年 2月~2020年 3月: 서울高等法院 部長判事
  • 2020年 3月~: 大法院 大法官
  • 2022年 3月~: 韓國國際私法學會長
  • 2022年 5月~: 第22代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長

各州 [ 編輯 ]

前任
盧貞姬
第22代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長
2022年 5月 17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