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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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광
出生 陰曆 1901年 6月 9日 ( 1901-06-09 )
大韓帝國 黃海道 海州
死亡 1950年 7月 19日 ( 1950-07-19 ) (49歲)
大韓民國 서울
職業 劇作家, 演出家, 俳優, 聲優, 映畫監督
活動 期間 1918年 ~ 1949年

김춘광 (金春光, 1901年 ~ 1950年 7月 19日 )은 大韓民國의 劇作家 , 演劇 演出家 , 映畫俳優 , 映畫監督 이다. 改名 前 이름은 金肇盛 (金肇盛)이다.

生涯 [ 編輯 ]

黃海道 海州 出身. 1918年 演劇俳優 첫 데뷔 後 無聲映畫 時代에 우미관 (優美館)의 主任 變死(主任 辯士)로 出發한 것이 決定的인 契機가 되어 映畫界에 投身한 김춘광은 《興夫傳》, 《春香傳》, 《悲戀(悲戀)의 曲(曲)》 等의 映畫에서 主役을 맡았다. 그리고 1937年에 新派劇團 예원좌(藝苑座)를 組織하여 府民館(府民館)을 中心으로 《아리랑》, 《村색시》, 《彌勒王子》 等을 公演했고, 府民館 演劇競演大會에서 史劇으로 團體商을 받기도 했다. 8·15 光復 直後인 1945年 10月에 김춘광은 예원좌를 改編하여 靑春劇場(靑春劇場)으로 改稱하고, 황금좌(黃金座)와 더불어 光復 後의 가장 代表的인 新派極端으로 君臨하다가 1950年 7月 19日 死亡하였다. 청춘극장(靑春劇場)은 1954年 解散될 때까지 70餘回의 中央公演을 하였다. [1]

主要 作品 [ 編輯 ]

演劇 出演 作品 [ 編輯 ]

  • 《아리랑》
  • 《村색시》
  • 《彌勒王子》

映畫 出演 作品 [ 編輯 ]

  • 《興夫傳》
  • 《春香傳》

戱曲 劇作 作品 [ 編輯 ]

  • 《檢事와 女先生》

演劇 演出 作品 [ 編輯 ]

  • 《檢事와 女先生》

作品 世界 및 評價 [ 編輯 ]

그는 新派劇界에서 박승희 (朴勝喜)와 함께 가장 많은 作品을 쓴 劇作家로, 約 70餘篇의 創作劇과 飜案劇을 썼다. 代表的인 作品은 《檢事와 女先生》, 《3·1 運動과 김상옥(金相玉)事件》, 《安重根 詐欺(安重根史記)》, 《大院君》 等이다. 그 中에서도 《 檢査와 女先生 》은 新派劇의 名作으로 알려져 있다. [1]

各州 [ 編輯 ]

  1. 文化·民俗/韓國의 演劇/韓國의 新派劇/新派劇의 作家와 作品/김춘광, 《글로벌 世界 大百科》

參考 資料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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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