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金珍雄
[1]
,
1980年
2月 20日
~ )은
KBO 리그
前
三星 라이온즈
의
投手
이다. 1990年代
三星 라이온즈
의 프랜차이즈 스타
投手
김상엽
을 잇는 右腕 强速球
投手
로서 2000年代 初盤
임창용
,
배영수
等과 함께 에이스 選拔
投手
로 일컬어졌었다.
[2]
新人 當時 入團 體格 184 cm 84kg의 均衡잡힌 몸을 가지고 있었으나 以後 잇달은 飮酒와 무릎 負傷, 軍 服務 後遺症으로 몸무게가 無慮 122kg까지 불어났고 2010年 末 三星으로부터 放出 通報를 받았다.
出身 學校
[
編輯
]
高校 野球 經歷
[
編輯
]
大邱옥산초등학교
와
耕耘中學校
를 거쳐
대구고등학교
에 進學한 김진웅은
1997年
3學年 時節, 제19회
大鵬期 全國高校野球大會
에서
대구고등학교
를 優勝으로 이끌었고, 大會 最優秀 選手商道 受賞하였다.
프로 野球 經歷
[
編輯
]
1998年
强速球를 자랑하던 有望株로 高卒優先指名을 받아
三星 라이온즈
에 入團하였고, 첫 해에는 별다른 成跡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해
1999 시즌
에는 平均 自責點이 5.40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11勝 13敗를 記錄하면서 可能性 있는
投手
로 評價받으며 成長하였고,150킬로의 공을 던질 수 있는 몇 안되는 國內投手로 次世代 三星 에이스로 期待받았는데 그 當時 三星은 前年度 15先發勝을 記錄한
[3]
베이커
가 이 해(1998年) 年俸의 倍 以上의 年俸을 불러온
[4]
것 外에도 딸까지 둔 家長이었으나 競技가 끝날 때마다 女子를 要求한 데다 平素 主審의 스트라이크 존에 不滿이 많아 어느 날 審判 判定에 不服하여 審判에게 辱說을 하는 等
[5]
좋지 않은 人性을 가졌던 터라 三星과 再契約에 失敗하여 美國으로 돌아간 데다 古參
成俊
도 롯데로 移籍하여 쓸만한 左腕 投手 不在에 시달렸으며
노장진
(15先發勝)(4位)
김상진
(12先發勝)(강병규와 共同 9位) 本人(김진웅) (11先發勝) 이들 3名의 平均自責點이 4點臺 以上이었던 데다 에이스
김상엽
이 負傷으로
[6]
正規시즌 뿐 아니라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하여 投手力이 數的-質的 모두 劣勢를 면치 못하자
임창용
이 마무리 投手로 뛰었음에도 138.2이닝을 消化해야 했다. 以後 프로 入團 3~4年次
2000 시즌
과
2001 시즌
에 自身의 프로 野球 最高 記錄을 세우면서 3年 連續 두 자릿數 勝數(當時 10先發勝 以上 - 99年 11先發勝 2000年 14先發勝)를 記錄하였다.
[7]
[8]
[9]
[10]
[11]
特히
2001年
에는
임창용
,
배영수
와 함께 三星 選拔
投手
3人坊으로 活躍하며 팀이
正規 시즌 1位
를 하는 데에 큰 功을 세웠다.
[12]
그러나
2001年 韓國시리즈
4次戰에서
두산 베어스
를 相對로 參星이 앞서던 渦中에 끝내 逆轉을 當하며 11:18이라는 點數로 大敗하는 等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는데
[13]
[14]
그 當時 三星은 마무리로 迎入한
리베라
가 201CM의 長身에서
[15]
나오는 빠른 强速球로 6月 初에 20세이브를 突破하는 等 三星의 뒷門을 지켰음에도 前半期에만 58.1이닝을 던질 程度로
김응용
監督에 依해 酷使를 當했고 이로 因해 6月 末부터 球威가 急激히 떨어져 亂打당한 데다 直球 拘束마저 120KM까지 떨어지자 올스타 브레이크 途中 美國에서 허리 디스크 診斷을 받아
7月 19日
웨이버 公示되는 바람에 리베라의 後任으로 補職 變更됐는데 리베라에 앞서 쓸만한 左腕 先發投手 補强을 위해 베니토 바에스를 迎入할 豫定이었으나
[16]
바에스가 契約 直前 메이저리그(플로리다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合流하여 霧散됐으며 리베라 迎入 過程에서 마무리
임창용
이 先發로
[17]
補職 變更했다.
2002年
부터 조금씩 下向勢를 보이다가
[18]
2005 시즌
途中
팔꿈치
負傷을 當하며 시즌을 마감했고, 再活軍에 머무르다가 掉尾하여
2005年
10月 13日
조브 클리닉에서 팔꿈치 手術을 받았다.
[8]
[10]
[19]
팔꿈치 手術 後
2005年
11月에 入隊하여
大邱
北區廳
에서
公益勤務要員
으로
軍服務
를 하였는데, 服務 期間 동안 自己管理 失敗로 體重이 急激히 불어나 또 다른 負傷이 찾아왔다. 召集 解除 後
2008年
所屬 球團에 復歸했으나
무릎
痛症으로 인해 다시 再活軍에 머무르며 힘든 訓鍊 生活을 하였다.
[10]
[20]
2009年
시즌 後 年俸 協商 때는 1億 3,500萬 원에서 3,500萬 원으로 74.1% 大幅 削減되었다.
[9]
[21]
2010 시즌
부터
퓨처스 리그
에서 꾸준히 先發로 登板하며 復活을 노렸지만
[11]
[22]
2010年
시즌 後 結局 放出 通報를 받았다.
[23]
年度別 細部 成績
[
編輯
]
鳶島
|
所屬
|
京畿
|
勝利
|
敗戰
|
세이브
|
이닝
|
被安打
|
4四球
|
脫三振
|
失點
|
自責點
|
平均 自責
|
備考
|
1998
|
三星
|
28
|
3
|
4
|
0
|
76 2/3
|
62
|
46
|
55
|
27
|
27
|
3.17
|
|
1999
|
30
|
11
|
13
|
0
|
171 2/3
|
173
|
89
|
144
|
115
|
103
|
5.40
|
[24]
|
2000
|
32
|
15
|
7
|
1
|
173 1/3
|
183
|
67
|
136
|
99
|
95
|
4.93
|
[24]
|
2001
|
43
|
11
|
7
|
12
|
141
|
132
|
63
|
129
|
65
|
62
|
3.96
|
|
2002
|
18
|
1
|
4
|
3
|
50 1/3
|
59
|
24
|
60
|
40
|
39
|
6.97
|
|
2003
|
32
|
9
|
11
|
1
|
153 1/3
|
151
|
75
|
99
|
75
|
69
|
4.05
|
|
2004
|
35
|
9
|
7
|
0
|
135 1/3
|
126
|
99
|
83
|
73
|
65
|
4.32
|
|
2005
|
12
|
1
|
1
|
1
|
19 2/3
|
14
|
11
|
15
|
10
|
10
|
4.58
|
|
通算
|
8 시즌
|
234
|
60
|
54
|
18
|
921 1/3
|
900
|
463
|
737
|
504
|
470
|
4.59
|
|
등番號
[
編輯
]
- '51' (1998年 ~ 2004年, 2008年 ~ 2010年)
- '18' (2005年)
[25]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 ↑
韓國野球委員會, 2010 가이드북
- ↑
스포츠 春秋 - 2008年 10月
박동희
의 칼럼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落差 컸던 내 人生”"
- ↑
권인하 (2015年 12月 29日).
“三星 外國人 投手 來年엔 15勝 壁 넘을까”
. 스포츠조선
. 2022年 6月 23日에 確認함
.
- ↑
崔榮鎬 (1998年 11月 16日).
“[프로野球] 三星, 베이커와 再契約 抛棄”
. 영남일보
. 2022年 6月 23日에 確認함
.
- ↑
崔榮鎬 (1998年 8月 27日).
“[프로野球] 三星 亡身, 現代에 6-19 대패”
. 영남일보
. 2022年 6月 23日에 確認함
.
- ↑
장환수 (1999年 3月 11日).
“프로野球 選手'삐끗'優勝꿈'삐걱
'
”
. 東亞日報
. 2022年 6月 23日에 確認함
.
- ↑
마이 데일리
- 2009年 2月 記事
"프로 野球 27年, 10勝 投手들에 對한 몇 가지 事實들"
- ↑
가
나
OSEN
- 2009年 9月 記事
"김진웅, 來年이 마지막 機會라고 생각"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가
나
OSEN
- 2010年 4月 記事
"'往年의 에이스' 김진웅, 잃어버린 自尊心 되찾을까"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가
나
다
韓國日報
- 2010年 2月 記事
"김진웅, 올 반드시 1軍 컴백"
Archived
2010年 4月 16日 -
웨이백 머신
- ↑
가
나
韓國日報 - 2010年 8月 記事
"三星 김진웅 1軍 復歸가 보인다"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OSEN
- 2010年 2月 記事
"三星, 올 시즌 10勝 投手 5名 排出 挑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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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이 데일리 - 2009年 2月 記事
"三星 김진웅과 韓國시리즈의 남다른 惡緣"
- ↑
日刊 스포츠
- 2010年 8月 記事
"勝利를 願하는가, 外國人 選手를 길들여라"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조진범 (2001年 2月 3日).
“
"
201cm 144kg" ML出身 强速球 三星에 둥지..投手 라베라”
. 영남일보
. 2022年 3月 16日에 確認함
.
- ↑
최용석 (2000年 12月 22日).
“[프로野球] 三星, 左腕投手 바에스 落點”
. 東亞日報
. 2022年 5月 15日에 確認함
.
- ↑
류강훈 (2001年 3月 19日).
“[2001프로野球 내가 最高야] (5) 救援王…진필중 牙城에 傭兵 挑戰”
. 國民日報
. 2022年 5月 15日에 確認함
.
- ↑
김진웅 ‘깜짝 選拔’三星 勝負手
- 京鄕新聞
- ↑
심정수, 어깨 負傷으로 아시아 시리즈 不參
- 聯合뉴스
- ↑
지승민·김진웅 等 '흘러간(?) 三星 投手들' 再活 안간힘
- 每日新聞
- ↑
노컷 뉴스
- 2009年 1月 記事
"三星 往年 에이스 김진웅, 年俸 1億 원 削減"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
박동희
의 라디오볼 -
2010年 8月 記事
- ↑
三星 김진웅, 끝내 자리 못 잡고 放出
- 스포츠조선
- ↑
가
나
마이 데일리 - 2009年 5月 記事
"공 하나에 웃고 울고… 勝利 投手, 幸運과 不運 사이"
Archived
2016年 3月 5日 -
웨이백 머신
- ↑
김진웅, "先 監督님 現役時節 배번은 아무나 다나" :: 네이버 뉴스
外部 링크
[
編輯
]
|
---|
| |
1等, 2等에만 올림픽 出戰權이 주어졌기에 大韓民國 國家代表팀은 3位에 그쳐
2004年 夏季 올림픽
에 出戰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