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왈갸 피옹돈
(
滿洲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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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algiya Fiongdon
韓國 漢字
:
瓜爾佳 費英東
過이가 非嶺東
,
1562年
~
1620年
3月 8日
)은
後金
의 軍人 兼 政治家이다.
後金 開國五代身
中 한 名이다.
建州女眞
의
手腕 구왈갸 할아
(蘇完瓜爾佳氏,
滿洲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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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wan G?walgiya Hala
) 出身으로, 12歲 때 이미 强弓을 당길 수 있었다. 16歲 때인 1588年 父親
구왈갸 솔고
가
누르價値
에게 歸附할 때 그도 함께 歸附했다. 35歲 때인 1607年
버이러
슈르價値
와 함께
해서여진
軍隊를 깨뜨렸다. 39歲 때인 1611年
아바타이
와 함께
穆陵
을 陷落시켰다. 40歲 때인 1613年
蔚아
를 멸망시켰다. 1615年
팔機制
가 確立되면서 피옹돈의 구왈갸 一族은
洋黃機
에 屬했다. 後金이 開創한 1616年, 피옹돈은
뇨후루 어이두
,
동오 好호리
,
校르車 안피楊口
,
퉁갸 후르韓
과 함께 5代
巖盤
으로 꼽혔다.
1618年, 名의
무筍
을 攻擊해 4月 20日 名의 總兵官
장승音
의 起兵 萬 氣를 擊破해 누르價値에게
眞萬人敵
이라는 感歎을 들었다. 1619年,
如許
를 攻擊하고
사르後 戰鬪
에서 活躍했다. 누르價値를 30年 넘게 섬기고 언제나 最前方에서 活躍하여 一等총병관의 職을 받았다. 千名 5年 3月에 죽었다.
千摠
6年(1632年) 直擬공(直義公) 爵位가 追敍되었다.
家計
[
編輯
]
틀:後金 闡明提議 代理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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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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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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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夫人과 같이 太廟에 背向.
# 헐리聯銀
1796年
(佳境 元年) 11月에 配享되었으나,
1799年
(佳境 4年) 正月에 太廟에서 出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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