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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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케닌 ( 日本語 : 御家人 )이란 主로 가마쿠라 時代 쇼군 과 主從 關係에 있던 無事를 뜻하는 말로 漸次 武士의 身分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가마쿠라逃奴 ( 鎌倉殿 가마쿠라逃奴 [ * ] ) 卽 쇼군으로부터 元來 가지고 있던 領地 所有權을 '安堵(安堵)'라는 形式으로 인정받거나 새로운 領地를 下賜받는 代身 戰鬪에 參加하여 功을 세우거나 쇼군의 警護, 가마쿠라·교토 經費와 같은 軍事的 任務 및 政治機構의 官僚로서 幕府 政治에 參與, 幕府의 財政에 必要한 財源 等을 내는 義務를 다하였다. 고케닌이 되는 方法은 쇼군과 直接 대면하여 主從關係를 맺는 '犬참( 見參 겐盞 [ * ] )'과 고케닌이 되고자 하는 武士가 直接 署名한 書類를 바치는 '名簿奉呈( 名簿奉呈 墓富豪테이 [ * ] )'의 두 가지 方法이 있었다. 이러한 節次를 거쳐 고케닌이 된 도고쿠 武士들 사이에는 '고케닌은 모두가 平等하고 對等하다'는 意識이 確立되어 있었는데, 가마쿠라 幕府의 開創者였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志向한 窮極的인 目標는 크고 작은 武士團을 이끌고 있는 고케닌들을 結束시키면서 貴族政治와는 다른 獨自的인 政權運營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1]

고케닌은 가마쿠라 幕府의 根幹이 되는 政治體制였고 쇼군 周邊의 人的 資源으로 가장 먼저 擧論되는 存在였다. 이들을 어떻게 管理하고 統制하느냐가 幕府 存立의 關鍵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쇼군과 고케닌 關係는 自己 利益의 補正과 擴張(쇼군의 境遇는 自身의 政權 創出과 統治를 위해, 고케닌이 된 武士의 境遇는 집안의 維持와 子孫의 繁榮을 위해)을 위해 맺어진 人爲的이면서 公式的(契約關係)인 主從關係였다고 規定할 수 있다. 古代 國家의 奴隸制적 一方的 支配關係와 根本的으로 다른 點은 '高溫(御恩)'과 '好코(奉公)'라는 雙務的 義務가 前提되었다는 點으로, 家臣인 고케닌이 無條件的으로 쇼군에게 충성할 義務를 강요받았던 것이 아니라 戰場에서 勇猛하게 싸운 '忠誠'에 對한 代價로 銀賞(恩償)을 要求할 수도 있었고, 事情에 따라서는 오랫동안 섬겼던 主君을 버리는 境遇도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忠誠'이란 집안의 維持와 子孫의 繁榮이라는 窮極的인 自己 目標를 위한 手段에 不過했고, 그것을 達成하기 위해 主君을 받들지만 같은 主君을 섬기는 고케닌 相互間에는 별다른 連帶感이 없었다. [2]

무로마치 時代 에는 直接的으로 고케닌을 두지 않았지만, 쇼군 을 直接的으로 섬기는 無事를 뜻하는 奉空中( 日本語 : 奉公衆 好코슈 [ * ] )이란 말代身 고케닌으로 記錄하는 境遇가 種種 있었다.

센고쿠 時代 에서는 다이묘 의 上級 部下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에도 時代 의 고케닌은 쇼군 直屬街神壇에서 하타모토 다음의 下級武士를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쇼군 을 直接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하타모토 와의 差異點이었다. 一般的으로 고케닌의 祿俸은 100席 以下인 境遇가 많아 經濟的 窮乏에 시달렸으며, 夜間 警備 業務 等을 통해 副收入을 얻기도 했다. 에도 時代 後期에 와서 富裕한 商人, 農民이 困窮한 고케닌의 兩者 身分을 金錢으로 買入하여, 고케닌 身分을 獲得하는 것이 公公然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신종대, 「가마쿠라 幕府의 側近政治에 關한 考察」『日本語文學』第30輯(2002) p.369.
  2. 위의 論文, p.371~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