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畿시나위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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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시나위오케스트라 는 (財)京畿아트센터 所屬의 韓國 傳統音樂 管絃樂團 으로, 2020年에 경기도립국악단 에서 名稱이 變更되었다.

創團 [ 編輯 ]

創團背景 [ 編輯 ]

  1. 文化政策 目標와 方向의 反映: 金永三 政府 의 就任(1993年 2月) 以後 '品位있는 民族文化'라는 文化部門 公約 下에 文化體育部를 創設하고, '유네스코 世界文化發展 10個年 計劃(1998)'의 基本 理念에 따라, '신한국 文化 暢達 5個年 計劃'을 樹立하였다. 政策 目標는 規制에서 自律로, 中央에서 地域으로, 創造階層에서 香水階層으로, 分斷에서 統一로, 보다 넓은 世界였다. 이에 따른 事業計劃으로는 民族正氣의 確立, 地域文化 活性化와 文化福祉 均霑化, 文化創造力 提高와 文化環境 改善, 文化産業 開發과 企業文化 活性化 支援, 한겨레 文化 造成과 우리 文化의 世界化였다. 當代 文化政策의 基調는 國民文化享受權의 擴大이자 文化民主主義의 實現였다.
  2. 地方自治制의 實現과 廣域團體長의 文化 마인드: 1995年 4大 地方選擧(6.27)가 同時에 實施되면서 地方分權과 權力均霑을 骨子로 하여 各 地域의 文化가 個性을 가지고 多元化할 수 있는 基盤이 마련되었다. 特別市와 廣域市는 文化産業 育成과 文化需要 創出에 集中한 反面, 도(道)는 文化藝術悔過, 文化藝術敎育硏究機關의 設立, 傳統藝術支援擴大에 政策 優先順位를 두었다. 當時 이인제 京畿道知事는 京畿道의 文化靑寫眞으로 地域에 根據한 傳統藝術 活性化를 公約으로 밝혀 注目되었다. 文藝基金 100億원으로 '경기문화재단' 設立, 1996年 경기도립국악단의 創團을 위한 12億 豫算 配置 等等의 內容이다.
  3. 傳統音樂의 歷史性과 京畿民謠의 存在: 利川, 驪州, 光州에는 陶藝文化 支援 擴大 및 '世界陶瓷器祝祭' 開催 等, 地域의 特性을 살려 獨自的인 文化活動을 活性化시킴으로써 地域民의 삶의 質을 높이고 나아가 地域文化의 正體性 確立과 自負心 向上을 計劃하였다. 경기도립국악단 創團 計劃의 裏面에는 京畿道의 音樂遺産인 京畿民謠가 地域文化의 正體性을 確保하고 文化的 競爭力을 提高할 수 있는 優秀한 資源이라고 判斷이 있었다. 그리고 京畿道民의 藝術生産과 鄕愁의 權利와 環境을 保障하기 위하여, 傳統音樂 自體의 뿌리와 歷史, 國樂人들의 努力이 그 底邊을 形成하고 있었기 때문에 京畿道를 代表하는 國樂團體로서 創團될 수 있었다.

創團과 組織 [ 編輯 ]

現 시나위오케스트라의 前身인 경기도립국악단은 1996年 8月 20日 創團하였다. 이인제 京畿道知事의 文化公約 發表 以後, 藝術監督 選任과 團員 오디션 等의 1年餘의 過程을 거쳐, 招待 이준호 藝術監督과 곽태헌 單武將, 채주병 絃樂樂章, 안성우 冠岳樂章, 김혜란 民謠樂章이 8月 1日子로 選任되었다. 그리고 김정집 피리 首席과 박영미 伽倻琴 首席, 강은일 解禁 首席 等이 다른 團員들과 함께 8月 20日子로 入團하였다.

藝術監督을 包含하여 總 55名의 團員은 3名의 絃樂, 冠岳, 民謠 樂章과 피리 7名, 代金 6名, 소금 1名, 解禁 8名, 牙箏 1名, 거문고 6名, 伽倻琴 7名, 打樂 4名, 民謠 5名, 政家 2名, 그리고 單武將, 樂譜, 弘報, 樂器 等 各 1名으로 構成되었다. 總 60名 庭園에 55名으로 始作한 國樂團은 1998年에 65名, 2002年에 80名으로 增員되었다. 모두 常任團員으로 活動하면서도 每해 內外部 審査委員을 委囑한 오디션을 巨浸으로써 持續的인 技倆向上을 위한 努力을 기울이고 있다.

公演活動과 運營方向 [ 編輯 ]

1996-1999: 경기소리의 活性化와 樂團의 個性構築 [ 編輯 ]

創團公演은 1996年 11月 21日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이준호 藝術監督의 指揮로 進行된 演奏曲目은 1. 大吹打, 2. 거文科와 伽倻琴을 위한 日出(정대석 委囑曲), 3. 京畿雜歌-有産家(묵계월, 이은주), 山타령(지화자 外 14名), 4. 보러자, 5. 우리 비나리(이준호 委囑曲), 6. 방아타령을 主題로 한 奚琴協奏曲(김영재 作曲), 7. 京畿祝典序曲(李相奎 委囑曲)이었다. 李相奎 作曲의 <京畿祝典序曲>은 경기도립국악단의 創團을 祝賀하는 曲으로 한명희 敎授의 丑時에 依한 合唱, 民謠獨唱, 民謠合唱으로 構成되어, 聲樂科 管絃樂曲이 어우러진 作品이다. 이준호 作曲, 구히서 作詩, 김혜란 작창의 <우리 비나리> 또한 傳統聲樂科 管絃樂을 椄木한 作品이다. 또한 京畿雜歌의 원현과 함께 세련된 京畿民謠를 素材로 한 國樂管絃樂曲 <방아타령을 主題로 한 奚琴 協奏曲>의 配置는 京畿民謠의 現代的 繼承意志를 담고 있다.

第2回 定期公演(1997. 4. 23)은 '김혜란의 서울굿과 경기소리'란 主題로 달거리, 방아타령, 사철가 等의 京畿民謠와 京畿都堂굿을 母體로 한 박범훈 作曲의 管絃樂曲 <京畿굿을 위한 序曲, 神내림>을 연주하였다. 또한 서울굿 12거리 中 不正거리, 불사거리, 大監거리를 선보임으로써 景氣도 가락을 普及하고 活性化하고자하였다. 第3回 定期公演(1997. 6. 4)은 傳統音樂을 새로이 編曲한 <신수제천>(김영동 編曲)과 <千年萬歲>(李相奎 編曲)로 傳統音樂이 現代的으로 再創造된 演奏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伽倻琴 三重奏를 위한 캐논, 자바>(백대웅 編曲)로 西洋音樂과 國樂器의 椄木을, <메나리調 主題에 依한 피리協奏曲>(이강덕 作曲), <改良해금을 위한 管絃樂-바람>(이준호 作曲)으로創作 管絃樂曲의 獨創性을 보여주었다. 1997年 8月 20日과 21日에 열린 創團 1周年 記念公演 '우리音樂 大祝祭'는 傳統音樂과 創作音樂, 재즈, 大衆音樂의 境界를 허물고 國樂의 새로움과 現代的 再創造의 可能性을 實驗하는 公演이었다. 電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朴, 비나리의 最高峯 이광수, 國樂 歌手 김용우, 歌手 李善熙, 六角水 等의 出演만으로도 觀客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한 홍동기 作編曲의 <高句麗魂>과 이준호 作曲의 <視線뱃노래>가 初演되었다.

第4回 定期公演(1997. 11. 19~20)은 創作曲으로만 연주했다.김희조의 <散調主題에 依한 合奏曲>, 國樂管絃樂과 民謠窓이 어우러지는 박범훈 編曲의 <旌善아리랑>, 中國의 傳統 樂器 이호와 琵琶가 國樂管絃樂과 어우러지는 이준호 作曲의 <바람>, 유문금 作曲의 <桐防止魂>, 이준호 初筵曲人 笙簧協奏曲 <風向>으로 構成하였다. 이 해에는 이준호 監督이 'KBS 國樂對象' 作曲家賞을 受賞하였고, 獨逸 世界音樂 祝祭에 招請되어 韓國을 代表하는 演奏團으로 役割하였다. 第4回 定期公演(1998. 4. 23)은 김덕수패 四物놀이의 協演으로 박범훈 作曲 <四物놀이와 國樂管絃樂을 위한 協奏曲-新모듬> 前樂章이 演奏되었다. 第6回 定期公演(198. 6. 2)에서는 처음으로 宗廟祭禮樂과 歌曲을 연주하였고, 京畿民謠人 장기타령과 京畿民謠를 主題로 한 박일훈 作曲의 <율(律)을 위한 가락>을 연주하였다. 第7回 定期公演(1998. 9. 4)은 '創作音樂과 京畿民謠의 밤'으로 果川市民會館에서 열렸다. 京畿民謠 7曲과 民謠主題에 依한 管絃樂 <어랑어랑>(박범훈 作曲) 그리고 傳統놀이를 素材로 한 管絃樂曲 <軸體>(이준호 作曲)가 初演되었으며, 風物굿牌 '몰개'의 協演으로 <新모듬> 3張이 演奏되었다. '傳統音樂과 創作音樂의 밤'이란 題目으로 公演한 第8回 定期公演은 含靈止哭, 平時調, 生疏倂奏 水龍吟, 京畿民謠와 <滿船>, <新모듬> 等으로 꾸며졌다.

第9回 定期公演(1999. 4. 22)에는 京畿民謠와 京畿山타령을 編曲한 김희조의 <선소리 山타령>, 안성우 冠岳樂章이 作曲한 <黃土길>, 이준호 監督이 編曲한 <이生薑類 散調를 위한 國樂管絃樂>이 演奏되었다. 第10回 定期公演(1999. 6. 2)은 '삶, 6月, 우리들의 노래'라는 題目으로 서울, 京畿地域의 音樂性이 잘 드러나도록 作曲한 김성경의 <仁王素描>, 國樂器와 西洋樂器의 椄木을 試圖한 金大城의 <선부리>, 김영동의 國樂歌謠, 大衆歌手 餘震의 人氣曲, 京畿民謠 等이 어우러졌다. 第11回 定期公演(1999. 10. 14)은 京畿民謠 9曲과 세 篇의 創作曲으로 꾸며졌다. 特히 現 藝術監督으로 在職中인 元日 作曲의 <바람곶>과 이명욱 作曲의 <伽倻琴과 國樂管絃樂을 위한 꼬마각시>가 初演 委囑曲으로 發表되어 創作音樂의 振興에 持續的인 關心을 기울였다. 12回 定期公演(1999. 11. 17)은 '協演의 밤'으로 김미숙, 황규남, 신영희, 김덕수 四物놀이와 같은 外部의 뛰어난 藝術家들과 協演하였다.

이 밖에도 해마다 新春國樂大公演과 送年舞臺公演과 같은 節氣 公演, 京畿民謠와 管絃樂科의 만남, 八道民謠로 꾸민 어버어날 孝道音樂會, 京畿民謠 企劃公演, 靑少年을 위한 特別公演, 常設公演, 招請公演, 巡廻公演 等 150回의 公演을 開催하였다. 1997年에는 京畿道內 靑少年을 對象으로 여름國樂敎室을 無料로 열었으며, 1998年부터는 여름, 겨울 두 次例씩 敎師 對象의 國樂硏修 프로그램을 進行하였다. 이와 같이 創團 直後 몇 年間의 公演과 活動들은 國樂 大衆化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바탕을 두고 京畿民謠의 活性化를 爲한 努力과 함께 樂團의 個性을 構築하는데 힘썼다. 이 時期에는 傳統音樂과 創作音樂이 均衡을 이루고 있으며, 늘 京畿民謠와 경기소리를 素材로 하여 現代的으로 作編曲된 創作曲을 按排하였다. 그리고 公演 때마다 두세 曲씩 創作曲을 委囑하여 超然함으로써 새로운 傳統을 創造하고자하였다. 그리고 創作初演曲을 제1집 音盤 (1997. 11)으로 내놓았다.

2000-2004: 創作音樂의 實驗과 開花 [ 編輯 ]

2000年度의 눈에 띄는 變化는 定期公演 回數의 增加다. 以前의 두 倍에 該當하는 總 8回의 定期公演을 하였다. 2000年度 定期公演의 큰 成果는 第19回(11. 23)와 第20回(12. 7) 定期公演으로 연이어진 '젊은 作曲家의 밤'이다. 김승근의 <合奏曲 3番>, 元日의 <나비의 꿈>, 유은선의 <國樂管絃樂을 위한 男사당놀이>, 契成員의 <曠野>, 공우영의 <風구소리 主題에 依한 國樂管絃樂>, 김만석의 <25絃 伽倻琴과 管絃樂 '흥'>은 國樂界의 主要 젊은 作曲家들의 初筵曲이다. 김남조, 조병화 等 文學界의 代表的 詩人들의 作品에서 얻은 感興을 바탕으로 創作한 曲들로 韓國文學과 傳統的 旋律의 調和라는 點과 모두 管絃樂曲이라는 點이 特徵的이다.

또한 2000年에는 初代 이준호 常任指揮者가 行政上의 摩擦로 12月 31日子로 退任을 하였고, 團員들의 請願과 道知事(當時 임창렬)의 判斷으로 2001年 12月 11日子로 再就任하게 된다. 따라서 2001年에는 '名人의 밤'(4. 26)을 除外하고, 公演의 回數나 演奏會 形式의 變化는 거의 없이 旣存의 틀을 維持하였다. 2002年에는 定期演奏會를 10回로 늘려, '新年音樂會', '名人招待席', '孝道音樂會', '우리가락 한마당', '靑少年을 위한 우리音樂旅行', '大學生 協演의 밤', '가을音樂旅行' 等으로 定期公演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2004年에는 運營體制의 變化들이 있었다.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이 財團法人化되면서 京畿道文化의전당(당시 홍사종 社長)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경기도립국악단은 京畿道文化의전당 國樂堂 運營本部에서 委託運營하게 되었다(경기도립예술단 設置 및 運營條例 第3條 2랑, 2004. 4. 12 改正). 그리고 演奏空間의 變化가 있었는데, 7月 13日 競技도 國樂堂이 開館하여 (손학규 京畿道知事 當時) 네 個의 藝術團이 함께 喪主하여 空間 利用의 不足함이나 國樂普及을 위한 常設公演과 講習의 限界를 解消하였다. 또한 藝術과 行政을 分離하여 國樂團을 行政的으로 뒷받침하는 運營本部를 두어 國樂團의 活動을 더욱 원활하게 하였는데, 이 때 樂團의 企劃과 運營을 總括해오던 곽태헌 單武將이 國樂堂 運營本部長으로 就任하였다. 마지막으로, 創團부터 樂團을 이끌어 온 이준호 藝術監督이 그 해 12月에 KBS國樂管絃樂團 常任指揮者로 옮겨가면서, 絃樂樂章으로 活動해 온 채주병 樂章이 藝術監督을 代行하는 體制로 變更되어 運營되었다.

2004年 2月에는 委囑 管絃樂曲과 創作 聲樂曲, 編曲 民謠 等 경기도립국악단의 創作音樂과 人氣曲을 集大成하여 CD 2章으로 構成하여 音盤을 吹入하였다. 또한 定氣公演의 레퍼토리 시스템을 志向하는 한 篇 200回가 넘는 巡廻公演으로 島民의 情緖涵養과 國樂 普及을 위한 活動을 펼쳤다. 이처럼 이 時期는 定期公演을 定例化하여 정착시키고, '젊은 作曲家의 밤'을 企劃하여 創作音樂系의 舞臺가 되었고, 委囑은 하나의 傾向이나 作曲家에 偏重되지 않고 多樣性을 追求하였다. 경기소리나 가락을 素材로 한 創作曲과 編曲도 繼續 維持하여 경기소리를 活性化하는데 持續的 關心을 기울였다. '名人의 밤', '名唱의 밤'은 樂團의 演奏水準을 높이는데 寄與하였고, '大學生 協演의 밤'은 자라나는 國樂世代를 發掘하고 育成하는데 一助하였다.

2005-現在: 大型 創作레퍼토리 開發과 世界化 志向 [ 編輯 ]

2005年에는 藝術監督 兼 常任指揮者로 김영동을 맞이하였다. 김영동은 釜山市立國樂管絃樂團의 音樂監督 兼 首席指揮者와 서울市國樂管絃樂團의 上岩指揮者를 歷任하였다. 第55回 定期公演(2004. 11. 30)에는 音樂 敍事劇 '토지'를 主題로 하여 박경리 原作의 大河小說을 이승하 臺本, 김영동 作曲 및 演出로 再創造하였다. 이 作品은 1995年에 官服 50周年 記念公演으로 初演되었던 作品으로, 國樂管絃樂, 演劇, 노래가 어우러지고 合唱이 劇을 展開해나가는 大型作品으로 唱劇이나 西洋 칸타타와도 區別되는 韓國的 音樂劇으로 注目을 받았다. 2005年 家庭의 달 特別公演으로 '創作 소리劇' <춘향 내 사랑>(5. 22)도 實驗的인 作品으로, 판소리 春香歌를 경기소리로 構成된 唱劇으로 再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경기소리의 現代的 繼承의 意味를 지닌다. 이러한 音樂劇 公演은 경기도립국악단 創團 10周年을 記念하는 第66回 定期公演(2006. 8. 17~20)인 <한네의 昇天>으로 이어졌다. 1975年 오영진 原作의 戱曲으로써, '劇의 內容에 맞춘 音樂의 附隨的 役割 程度에 머물지 않고 本格的인 國樂創作 音樂劇으로서 再創造'할 것이라는 김영동의 意圖를 忠實히 再現하였다. 現代的이면서도 大衆的인 感受性에 密着할 수 있는 作曲과 演奏였다는 評價가 있다.

김영동 藝術監督의 赴任 以後 첫 番째 定期公演(第61回, 2005. 11. 9) '新詩(神市)'는 國立國樂院 禮樂堂에서 열었다. <新詩>는 高句麗 國內城 古墳에서 靈感을 얻은 曲으로 總 5樂章으로 이루어진 大作이다. 우리 民族의 素朴한 삶과 발자취를 담아 1樂章 다스름, 2樂章 一身도, 3樂章 月信徒, 4樂章 弄信徒, 5樂章 新詩로 構成되었다. 第63回 定期公演(2006. 3. 30~31)은 '김영동의 管絃樂-檀君神話'로 '퓨전과 純粹의 遭遇'를 마주하게 하였다. 洋琴, 신디사이저,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훈과 같은 各國의 樂器와 國樂器의 퓨전으로 民族意識과 時代的 課題를 담아 雄壯한 旋律로 提示되었다. 外國의 傳統樂器와 國樂器의 協演은 <바람의 소리>에 이어 國樂이 世界音樂으로서 지닐 수 있는 普遍性을 實驗하는 試圖였다. 第65回 定期公演 '김영동의 童謠-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는 어린이를 위한 國樂童謠 公演으로 京畿道 光州市 少年少女合唱團의 노래와 함께 연주하였다. 굿의 不正놀이 장단을 利用한 것에서부터 西歐的 장단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노래나 신디사이저와 鐵伽倻琴, 鐵現金 等의 改良樂器가 傳統樂器와 調和를 이룬 點이 이 公演의 特色이다.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