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리
(韓悳履,
1871年
6月 5日
~
1939年
3月 4日
)은
大韓帝國
의
獨立運動家
이다.
本館
은
淸州
(淸州),
號
(號)는 菉山村(綠山村)이며 兒名(兒名)은
한필수
(韓苾樹)·
한근형
(韓瑾馨)이고
1876年
에
한덕리
(韓悳履)로 改名하였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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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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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畿道 楊平에서 出生하였으며 1898年 大韓帝國 官僚에 薦擧되어 以後 1898年에서 1901年까지 群棲機關 職級 官僚를 지냈고 1901年 大韓帝國 官僚職을 辭退 및 落鄕하였다.
1910年 大韓帝國 滅國 國恥 事態 後 1919年 京畿道 楊平 鄕里에서 三逸 對한 獨立 萬歲 運動에 參加하였고 朝鮮獨立團 京畿道支團을 創團하여 支團長으로 選任되어 郡守 面長들에게는 獨立運動에 參與할 것을 勸誘하고 親日派들에게는 脅迫狀을 發送하였으며 富豪들로부터 軍資金을 募集하는 等 主謀者로 活動하였다.
政黨 黨員 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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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獨立黨
常任委員 兼 黨務委員(1922年~1929年)
- 韓國獨立黨
前任顧問 兼 黨務委員(1930年~1931年)
事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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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 政府에서는 故人의 功勳을 기리고자 1990年 8月 15日을 期하여 大韓民國 建國訓長 애족장을 追敍하였다.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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