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렐무스 티렌시스
(
라틴語
:
Willelmus Tyrensis
) 또는
티레의 윌리엄
(
英語
:
William of Tyre
) 또는
기욤 드 티레
(
프랑스語
:
Guillaume de Tyr
, 1130年頃 ~ 1186年 9月 29日)는 中世 유럽의 政治가, 聖職者, 歷史家였다. 그는
第1次 十字軍
後 建國된
예루살렘 王國
의 全盛期 때
예루살렘
에서 자랐다.
프랑스
와
이탈리아
에서 敎育을 받았고
라틴語
,
그리스어
,
아라비아語
를 알고 있었으며 리버럴 아트(Liberal Arts)와
敎會法
을 工夫했다. 1160年頃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以後
예루살렘 王國
의 王
아모리 1歲
의 아들인 보두앵의 敎師가 됐다. 1174年 보두앵이 王의 事後 王位를 이어받아
보두앵 4歲
가 된 後
티레
의 大主敎이자 受賞(Chancellor)李 되었다. 1179年 3次 라테란 公議會에 參席했다.
예루살렘
總大主敎 當選에 失敗 後 1183年에 로마로 돌아왔으며 이때 그가 쓴 두 卷의 冊을 가져왔다. 한 卷은 消失되었지만 《바다 너머에서 行해진 일의 歷史》(History of Deeds Done Beyond the Sea)는 現在까지 傳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