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킹켈
(
獨逸語
:
Klaus Kinkel
,
1936年
12月 17日
~
2019年
3月 4日
)은
獨逸
의
公務員
,
辯護士
,
自由民主黨
政治人이다. 法務長官(1991年 ~ 1992年), 外務長官(1992年 ~ 1998年)을 지내왔으며,
1993年
부터 副總理를 겸하였다.
外務長官으로서 1990年代의
유고슬라비아 戰爭
동안에 殘虐이 일어나는 것을 끝내는 뚜렷한 態度를 取하였고,
舊유고슬라비아 國際刑事裁判所
의 創立을 提案하였다.
初期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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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師
의 아들로,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메칭겐의
로마 가톨릭교회
信者 家門에서 태어났다.
튀빙겐
,
본
,
쾰른
의 大學校들에서
法學
을 專攻하고, 튀빙겐에서 첫 法學 試驗을 치고,
슈투트가르트
에서 두 番째 試驗을 마친 後에
1964年
法學碩士 學位를 取得하였다.
公務員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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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켈은 처음에 바덴뷔르템베르크 注意
公務員
으로서 雇用되었다가,
1968年
에는 聯邦 政府의 內務部에 들어갔다.
1970年
부터
1974年
까지 當時
한스디트리히 겐셔
內務長官의 個人的 書記로 있다가, 結局 長官國의 局長이 되었다. 겐셔가 外務長官이 된 後에 킹켈은 外務部의 높은 職位들을 가졌다.
政治的 經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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聯邦情報部
의 本部長(1979年 ~ 1982年), 聯邦 法務長官(1982年 ~ 1991年)을 거쳐
1991年
자유민주당의 黨員이 되었다.
1991年
1月 18日
부터
1992年
5月 18日
까지 法務長官을 지냈고, 겐셔 外務長官이 辭任하자 그 뒤를 이어 外務長官으로
1998年
10月 26日
까지 있었다.
1993年
1月 21日
부터 副總理를 겸하였으며,
1998年
選擧에서
헬무트 콜
政府의 敗北와 함께 辭任하게 되었다.
1993年
부터
1995年
까지 자유민주당의 議長을 지내기도 하였다.
外務長官 在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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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켈의 外務長官 在職 동안에 그는
발칸 戰爭
에서
세르비아人
들에 依하여 일으켜진 殘虐을 끝내는 實質的인 成果를 이루었다. 前 유고슬라비아의 大統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는
네덜란드
헤이그
에서 열린 自身의 裁判 동안에 킹켈의 政策은 獨逸 外交 政策의 多年間 目標에 基礎를 두었다고 請求하였다.
1992年
ICTY
를 創立하는 提案을 하였고, 獨逸이
國際聯合 安全保障理事會
의 常任理事國이 되는 希望을 公告하였다.
國會 議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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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年
부터
2002年
까지 獨逸 國會의
下院 議員
을 지냈고,
1998年
부터는 自由민주당 黨派의 副議長을 겸하였는 데 바덴뷔르템베르크 州 政府에서 選出되었다. 政界를 떠난 以後에는
辯護士
生活을 하였고, 博愛主義 活動들에 參與했다.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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