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탁 (高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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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탁
死亡日 1126年
死亡地 開城
國籍 高麗

최탁 (崔卓, ? ~ 1126年 陰曆 2月 26日 )은 高麗 中期의 武臣이다. 本館 通川(通川) 이고, 祖父 監察御史 中書左常侍 를 지낸 최경현 이고 通川 崔氏의 始祖이다. 父親은 都僉議侍中 을 지낸 최우순 이다.

官職은 散員同情과 左右衛中郞將을 거쳤으며, 尹瓘 여진 征伐 詩에는 府使(副使)로 參戰하였다. 以後에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人種 卽位年인 1122年 에는 戶部尙書 에 올랐다.

1126年 (仁祖 4年)에 上將軍으로 있으면서 이자겸 (李資謙)李 自身을 持軍國師(知軍國事)라 稱하며 國政을 紊亂하게 하자 人種이 內侍至厚 金瓚 , 內侍祿仕 안보린 , 東知樞密院事 지녹연 (智祿延)에게 이자겸· 척준경 (拓俊京) 等을 誅殺할 것을 命하자 上將軍 (上將軍) 汚濁 (吳卓)과 大將軍 (大將軍) 卷數 (權秀), 將軍 (將軍) 고석 (高碩) 等과 더불어 擧沙하여 拓俊京의 아우인 兵部尙書 (兵部尙書) 척준신(拓俊臣)과 拓俊京의 아들인 內侍 (內侍) 척順(拓純)을 죽였으나, 이자겸·척준경 一派의 反擊으로 失敗하여 죽임을 當하였다.

<< 高麗史 >>의 記錄에는 李資謙과 拓俊京을 反目하게 하는 計策을 내어 亂을 平定하게 한 功이 있다하여 當時 議官이었던 최사전 이 功臣에 책록되었고, 척준경 또한 비록 逆賊이나 李資謙을 除去한 功을 認定하여 末年에 귀양에서 풀려나 벼슬을 받은 點으로 보면 이들을 除去하기 위해 擧事를 圖謀하고 參與한 人物들이 李資謙과 拓俊京의 除去 以後 身元이 되고 功臣으로 책록되었을 可能性도 있으나 高麗의 記錄이 不實하여 確認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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