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현 (175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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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현 (崔昌顯, 1759年 ~ 1801年 4月 8日 ( 陰曆 2月 26日 ))은 朝鮮 의 譯官이자 로마 가톨릭교회 殉敎者로 號는 貫穿(冠泉)이며 洗禮名은 요한이다. 2014年에 敎皇 프란치스코에 依해 諡福되었다. [1]

生涯 [ 編輯 ]

최창현은 1759年에 漢城府 에서 譯官으로 일하던 中人의 아들로 태어나서 입정동에 居住했다. 1784年에는 이승훈 , 李蘗 의 勸誘를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에 入敎했고 같은 해에 《聖經直解匡翼》(聖經直解廣益)을 出刊했다. 《聖經直解匡翼》은 포르투갈 出身의 예수회 宣敎師였던 디아스 神父가 1636年에 淸나라 베이징에서 刊行한 主日福音 解說書人 《聖經直解》(聖經直解), 프랑스 出身의 예수회 宣敎師였던 마이야 神父가 1740年에 刊行한 主日福音 默想書인 《聖經匡翼》(聖經廣益)의 一部 句節을 統合·拔萃하여 韓國語로 飜譯한 冊이다.

1791年에 일어난 辛亥迫害 를 契機로 一部 로마 가톨릭교회 信者들이 離脫한 以後에도 최창현은 同僚 로마 가톨릭교회 信者들과 함께 聖職者 迎入 運動을 展開했다. 特히 1794年에 淸나라 出身의 中國人 로마 가톨릭교회 司祭였던 周文謨 (周文謨) 神父가 朝鮮에 入國한 以後에 최창현은 朝鮮의 로마 가톨릭교회 信者들을 代表하는 總會長으로 推戴되었고 권일신 , 정약종 , 정약용 等과 함께 朝鮮 各地에서 天主敎 傳敎 事業을 展開했다.

1801年에 일어난 辛酉迫害 過程에서 義禁府 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核心 人士였던 최창현을 逮捕 對象으로 指目했다. 최창현은 다른 곳으로 避身했지만 疾病 治療를 理由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密告者였던 김여삼(金汝三)李 데리고 온 捕盜大將에게 逮捕되었고 捕盜廳에서 苛酷한 拷問을 받으면서 로마 가톨릭교회를 背敎하게 된다.

최창현은 義禁府에서 進行된 裁判에서 自身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首長임을 明示하면서 背敎 決定을 飜覆했고 天主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殉敎하겠다는 意思를 밝혔다. 結局 최창현은 1801年 4月 8日에 同僚 로마 가톨릭교회 信者들과 함께 漢城府 西小門 밖으로 끌려가서 斬首刑을 當하면서 殉敎하게 된다.

參考 文獻 [ 編輯 ]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