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남
(李德男,
1557年
~
1592年
)은
朝鮮
중기의
無關
으로
壬辰倭亂
때
金化
縣監
(金化縣監)으로 戰死하였다. 本貫은
雨季
(羽溪)이고, 자는 得報(得甫)이다.
아버지는 이준헌(李遵憲)이고,
全州
웅치戰鬪
와
남원성 戰鬪
에서 活動한
이복남
(李福男)은 그의 兄이었다.
兵馬節度使
와
水軍節度使
를 지낸
移轉
(李?)의 孫子이다.
京畿道
廣州郡
에서 태어났으나, 過去에 及第할 무렵 그는
忠州
(忠州)에 居住하고 있었다.
보인(保人) 身分으로
1583年
(宣祖 16年) 癸未(癸未) 別試武科(別試武科)에 甁과(丙科) 405位로 及第하였다.
[1]
1592年
(宣祖 25)
4月
壬辰倭亂
이 發生하자
金化
縣監
(金化縣監)으로 在職 中,
日本軍
을 맞아 殉節하였다.
兄
이복남
은
丁酉再亂
때 殉節했고, 동생
이인남
은 武科 及第後 南道 虞侯로
申砬
의 麾下에서 忠州 彈琴臺 戰鬪에서 戰死했고, 叔父
이경헌
과
이승헌
은
申砬
將軍의 副官으로
忠州
彈琴臺
에서 싸우다가 殉節하여 世間에서는 一室 五絶이라 稱했다. 그의 祖父
移轉
은
義州
로 避難가는
宣祖
의 가마를
義州
까지 扈從하였다.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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配偶者에 對한 記錄은 失傳되어 未詳이고, 後孫들에 對한 記錄도 失傳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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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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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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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萬曆11年癸未9月初3日別試房목(萬曆十一年癸未九月初三日別試榜目) 13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