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코人 (162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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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人 ( 日本語 : 永光院 間에이 元年( 1624年 ) - 쇼토쿠 元年 10月 11日( 1711年 11月 20日))은 에도 時代의 女性으로, 에도 幕府 3代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의 側室이다. 文身 로쿠兆 亞리즈美 (六?有純)의 딸이며, 어머니는 오가키番 招待 번주 度다 우지카네 (?田氏?)의 養女이다. 男동생은 高케 ( 日本語 : 高家 ) [1] 가 되어 幕府를 市中든 度다 憂時土曜 (?田氏豊). 이름은 (万), 統稱은 오만老伽陀 (お万の方)이다.

經歷 [ 編輯 ]

元來 二世 게이코인의 住持였지만 칸에이 16年(1639年)에 새로이 住持가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이에미쓰를 謁見하였고 이에미쓰의 命을 받은 가스家奴 쓰步네 에 依해 嗷嗷쿠 에 들어가게 된다. 還屬 後에는 法名人 게이코인에서 萬으로 이름을 고쳐 이에미쓰의 側室이 된다. 이때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때까지 덴안야시키(田安屋敷, 高級住宅中 하나)에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이에미쓰의 寵愛가 깊었지만, 둘 사이의 아이는 없었다. 에도 幕府 에서는 三代 이에미쓰 以後 慣例上 고셋케 皇族가 出身의 美다이도코로 (將軍 情實)를 맞았지만 次期 쇼군의 生母가 된 사람은 없었고, 그 外에도 天皇家·文身家門 出身의 生母를 둔 次期 쇼군이 태어난 적이 없어 오오쿠가 이를 管理했다고 斟酌된다. 參議를 지낸 로쿠兆 亞리즈美의 딸인 만도 決코 例外는 아니어서, 妊娠할 때마다 落胎藥 또는 不妊藥을 먹고 있었다는 俗說도 있다. 다만 이에미쓰의 寵愛가 强해서 소牛로토時料理(上?御年寄)나 오토視料理(年寄)의 待接을 받았다. [2] 가스家奴 쓰步네 의 死後에는 이에미쓰에 依해서 誤오쿠內의 일을 總 管理하게 되어 가스家奴 쓰步네 의 後任으로서 吳오쿠의 支配者가 되었다. 게이안 4年 4月 20日(1651年 6月 8日)에 이에미쓰가 死亡한 後는, 다른 側室들과는 달라 락쇼쿠(긴머리채를 잘라냄)하고 중이 되지 않고, 「誤바이老쿄쿠」(お梅の局)라고 이름을 바꾸어 오토視料理로서 다시 吳오쿠쪽 勤務를 始作했다고 傳해지고 있지만, 實際 이에미쓰 死後의 그女의 行跡은 거의 알려지지않았기 때문에 吳바이老쿄쿠라는 人物이 딴사람이라고 하는 說도 있다. 그러나, 메이레키 3年 1月 18日(1657年 3月 2日)에 일어난 토메소데火災( 메이레키 大火災 )로 에도城의 性의 中心 建物과 천수가 불타서 내려앉아 버려, 이에미쓰의 正室인 다카츠카사 다카코 와 함께 코이시카와의 無量院에 避難했다고 記錄되어 있다.그에 따라 적어도 이에쓰나의 在位時節에는 五五쿠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쇼토쿠 元年 10月 11日(1711年 11月 20日) 88歲에 死亡하였다. 墓所는 토쿄度 분쿄구 코이시카와의 無量원이다.

일화 [ 編輯 ]

에이코人은 日本 텔레비전 드라마 小說 의 影響으로 재色 兼備는 勿論이고 賢母良妻와 같이 柔順한 女性으로 理解하는 境遇가 많지만, 實際로는 이에미쓰 時代 後期의 誤오쿠의 支配者가 될 程度로 剛하며, 新邸宅 築造時에 官吏들의 서툰 솜씨를 쇼군 에게 一一이 詳細하게 報告하거나 幕角(에도幕府의 首腦部)의 反對를 무릅쓰고 誤오쿠에서 사루카쿠(옛 藝術祭)를 開催하는 等 엄청난 權力을 가진 女傑(女傑)이었다. 그래서 幕角으로부터 「第2의 가스家奴 쓰步네」로 불리었다고 한다. 또, 가스家奴 쓰步네가 構築한 質實强健(성실하고 剛健하다)인 無家風의 家風을, 傲慢은 華麗하고 호사스러운 쿄토 의 文身風으로 바꾸어 나갔다고 한다. 그 意外에도 에이코人을 가스家奴 쓰步네 의 姪女였던 所信니(そしんに) [3] 라는 比丘尼가 操縱하였다는 說도 있다.

에이코人을 演技한 俳優 [ 編輯 ]

各州 [ 編輯 ]

  1. 高케란 幕府 路中의 部下 中 하나로 幕府의 祭祀나 意識, 前例 等을 擔當한다. 初期에는 武士들이 그 職責을 맡았으나 漸漸 문신의 次男이나 三男 等 幕府와 因緣있는 門가의 子孫들이 맡았다. 에도 幕府時代의 이른바 名門, 名家라고 일컫는다.
  2. 誤오쿠內에서 側室은 오헤야추로(お部屋中?)정도로 取扱되었다. 實際로 쇼군의 生母들 中에서도 魂쥬인 (13代 도쿠가와 이에社다 의 生母)은 쇼군의 生母임에도 츄로에 머물렀다. 蘇生없는 側室에 對한 破格的인 待遇였다
  3. 比丘尼 所信니는 가스家奴 쓰步네 에 依해 오오쿠에 들어와 이에미쓰의 시중을 든것은 勿論이고 吳오쿠內에 불도 를 가르쳤다. 또한 그女의 姪女는 이에미쓰의 長女인 値요히메의 生母 午後리노카打(お振の方)로 情實과의 사이가 멀어져 있던 이에미쓰를 誘惑하기 위해 가스家奴 쓰步네 가 가장 먼저 들인 側室 中 한 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