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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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國稅廳 의 稅務調査監督委員長
任期 2013年 11月 8日 ~ 2013年 12月 19日
大統領 朴槿惠
總理 鄭烘原
代表 김덕중 ( 國稅廳 廳長 )

身上情報
出生日 1955年 3月 31日 ( 1955-03-31 ) (69歲)
出生地 大韓民國 慶尙南道 咸安
居住地 大韓民國 서울特別市
國籍 大韓民國
學歷 서울大學校 法學科 中退(1975年)
陸軍步兵學校 卒業(1979年)
國防大學校 行政學社 27期(1982年)
經歷 大法院 大法官
光州大學校 法學科 兼任敎授
法務法人 平安 辯護士
새누리당 最高委員 兼 黨務委員
自由韓國黨 黨務委員 兼 法務特任委員
未來統合黨 黨務委員
國民의힘 常任顧問 兼 黨務委員
正當 國民의힘
軍事 經歷
服務 陸軍 軍法務官 大尉 轉役(1985年)

안대희 (安大熙, 1955年 3月 31日 ~)는 大韓民國의 法曹人으로, 大法官을 歷任하였다. 陸軍 軍法務官 大尉 로 全域하였으며, 지난날 서울高等檢察廳 刑事部長· 國稅廳 稅務調査監督委員長 等을 지냈다. 本貫은 순흥 (順興)이다.

生涯 [ 編輯 ]

서울 경기고등학교 卒業 後 서울大學校 法學科 在學 中 17回 司法試驗에 最年少 合格하였다. 司法試驗 動機로는 盧武鉉 前 大統領과 전효숙 前 憲法裁判所 裁判官, 김능환 前 中央選擧管理委員會 委員長 等이 있다. 以後 軍 法務官을 마친 뒤 25歲에 最年少로 檢査에 任用되었다. 서울중앙지검 特殊1·2·3部長을 거쳐, 大檢察廳 中央搜査本部 課長을 2番 歷任하였다. 2006年 大法官이 되었고 2012年 退任하여 새누리黨 政治刷新特別委員會 委員長을 歷任하였다. 朴 大統領 當選 以後 次期政府 主要 職責에 任命될 것이란 世間의 豫想과 달리 아무 職도 맡지 않았으나, 2014年 國務總理 候補者로 內定되었다. 그러나 前官禮遇 疑惑 等이 불거지고 論難이 繼續되자 辭退하였고 [1] [2] , 法務法人 平安의 代表辯護士로 活動하다가 2016年 總選에 豫備 候補로 登錄하였다.

經歷 [ 編輯 ]

出生과 成長 [ 編輯 ]

안대희는 慶南 咸安郡 에서 出生하였다. 釜山中學校 在學 中 B級 學生 [3] 이었던 안대희의 성실하지 못한 生活을 憂慮한 父母님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轉學가게 된다. 경기고등학교 에 入學한 後 서울大學校 法學科에 入學하였고 스무 살, 17回 司法試驗에 最年少 合格하였다. 司法硏修院 7期로 修了하고 軍 法務官을 마친 뒤 25歲에 檢事가 되어 '少年檢査'라는 別名도 이때 생겼다. 일찍 司試에 合格하는 바람에 最終學歷은 서울대 法學科 3學年 中退이다.

檢事 時節 [ 編輯 ]

안대희는 最年少로 檢査에 任用된 以後 大檢察廳 中央搜査本部 1, 3課長과 서울중앙지검 特殊 1, 2, 3部長을 거친 後, 大檢察廳 中搜部長까지 거친 우리나라 檢察의 代表的인 特殊通 檢事이다. [4] 麻浦甲 노웅래 議員은 안대희에 對하여 "公安檢事의 칼날을 휘둘렀던 經驗"이 있다고 主張하였다. [5]

나라綜金 事件 [ 編輯 ]

나라綜金 事件은 退出危機에 몰린 나라綜金이 盧 大統領의 側近인 안희정에게 生水會社의 債務辨濟 方式으로 3億9000萬원의 不法 政治資金을 提供하는 等 情·官界 로비를 벌인 事件이다. 이 事件 等으로 起訴된 安熙正 은 2004年 大法院에서 懲役 1年에 追徵金 4億9000萬원의 有罪 確定 判決을 받았다. [6] 當時 大檢 中搜部長이던 안대희는 나라종금事件을 搜査하며 大統領의 側近들을 줄줄이 拘束하였다. [7]

大選資金 搜査 [ 編輯 ]

안대희는 2003~2004年 大檢 中搜部長 在職時 不法 大選資金 搜査를 陣頭指揮, 檢察 搜査의 象徵的 人物로 떠올랐다. 政治權의 一部 論難에도 不拘하고 與野를 가리지 않는 原則的인 搜査를 했다는 評價를 받았다. [8]

그러나 김용철 은 當時 中搜部長이던 안대희가 自身이 겪은 가장 청렴하고 能力 있고 剛直한 檢事인데, 2002年 大統領選擧 때에 三星그룹 의 祕資金이 한나라黨 에 傳해진 것을 알고도 덮었다고 主張했다. [9]

大法官 時節 [ 編輯 ]

안대희는 檢事 出身임에도 不拘하고, 大法院에서 大法官을 歷任하였다. 裁判硏究官 사이에서는 一般的으로 外部 人士가 大法官으로 迎入되는 境遇를 選好하지 않는다고 하나, 안대희는 特異하게도 判事들 사이에서도 그 實力을 인정받아서 尊敬받았다고 한다. [10]

론스타, 외환카드 株價造作 事件 [ 編輯 ]

2011年 3月 大法院이 '虛僞 감자說 流布'를 통한 株價造作 嫌疑 等으로 起訴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代表에 對해 事實上 有罪를 宣告하면서 5年에 걸친 法廷 攻防은 檢察의 勝利로 幕을 내렸다. 이로 인해 外換銀行 賣却 作業을 빨리 마무리짓고 資金을 回收해 韓國을 떠나려던 론스타의 計劃에도 蹉跌이 생길 수 있다. 또한 外國系 金融社의 株價造作에 對해 有罪가 認定된 첫 番째 判決이란 點에서 象徵的인 意味가 크다. 當時 大法官은 안대희이다. [11]

論難 [ 編輯 ]

前官禮遇 [ 編輯 ]

2006年 大法官 에 任命될 때, 人事聽聞會 에서 前官禮遇 에 對한 意見을 묻는 質問을 받고 " 辯護士 는 適正 報酬에 對해 생각해야 하고 檢事 는 社會的 優待에 對한 幻想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던 안대희는 [12] 大法官 退任 以後였던 2013年 7月 서울市 龍山區 에서 辯護士 事務室을 開業한 뒤 年末까지 5個月間 16億餘원을 챙긴거나 國稅廳 稅務調査監督委員長에 委囑되고도 나이스홀딩스의 法人稅 取消訴訟 抗訴審 辯論 等을 맡은 事實로 인하여 2014年 5月 22日 國務總理 로 指定되면서 前官禮遇 論難이 커졌다. [13] 그러자 5月 26日 國會에 任命同意案이 提出되는 때에 맞춰 "國民情緖에 비춰봐도 너무 많은 額數"라며 "辯護士 活動으로 늘어난 財産 11億餘원을 모두 社會에 還元하겠다"고 했다. [14] 國務總理에 指名되기 直前에 4億 7千萬원을 寄附했다.

하지만 論難이 사그러지지 않자 國務總理 候補에서 辭退하면서 "제가 公職에 있을 때 前官禮遇 를 해준적이 없기 때문에 前官禮遇 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前官禮遇라 는 誤解와 非難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行動 하나하나 操心했다."고 主張하면서 [15] 自身이 辯護한 大法院 上告事件을 言及하며 "100페이지가 넘는 上告理由書를 다 直接 썼고, 署名만 한 일은 한番도 없다. 이는 前官禮遇와는 全혀 關係가 없다"고 解明했지만 朴智元 議員은 “國稅廳 稅務調査 監督委員會 委員長을 맡고 있었다. 그러면서 法人稅 取消事件, 이 租稅事件을 受任했다고 하면 現職의 禮遇를 받은 것이다"고 主張했다. [16]

그러나 盧武鉉 政權에서 大法院長에 任命된 이용훈 前 大法院長이 60億 원의 受任料를 받는 等 高位 法官 出身들의 痼疾的인 問題라는 視角도 있다. [17] [18]

'企劃 寄附', '賣官賣職' 論難 [ 編輯 ]

안대희는 2013年 5個月間 벌어들인 收益 16億餘원 中 4億餘원을 4月16日 歲月號 慘事 被害者들을 위해 낸 寄附했다고 했으나, 寄附時點과 關聯하여 '3億원의 寄附 時點이 總理 指名과 聯關이 있는 것 아니냐'는 論難이 또다시 提起되었다. 안대희는 歲月號 慘事에 對한 責任을 지고 鄭烘原 總理 가 辭退意思를 밝힌 4月 27日 즈음인 4月 末에 " 歲月號 沈沒 事故 와 關聯해 寄附를 할 수 있느냐"고 유니세프 韓國委員會에 問議를 한 後 5月 中旬에 寄附를 하였다. [19] [20] [21] [22] 그러나 안대희는 이에 對하여 總理 指名과 無關하게 寄附하였다고 밝혔다. [23]

不動産 關聯 疑惑 [ 編輯 ]

안대희는 1978年부터 1985年까지 7年사이에 수색동 - 갈현동 - 수색동 - 팔판동 - 효제동 - 도곡동 - 狎鷗亭洞 等으로 住所地를 13次例 옮겼으며, 그 뒤로도 江南과 江北을 오가며 7個月에 한 番꼴로 住所地가 바뀌었다는 主張이 있다. [24] 또한 2013年 10月 11日 서울 中區 회현동에 있는 南山롯데캐슬아이리스 住商複合 아파트(257m 2 )를 買入하며 實去來價額이 12億5,000萬원임에도 不拘하고 이를 부풀려 16億2,000萬원을 去來價額으로 申告함으로써 不動産 實去來價 申告에 對한 法規를 違反했다고 主張이 提起되었다. [25]

國會議員 出馬 [ 編輯 ]

안대희는 2016年 1月 19日 서울 麻浦區甲 選擧區에 새누리당 所屬 國會議員選擧 豫備候補로 登錄한 뒤, 公薦을 받아 出馬했으나 盧雄來 候補에게 敗했다.

歷代 選擧 結果 [ 編輯 ]

實施年度 選擧 臺數 職責 選擧區 正當 得票數 得票率 順位 當落 備考
2016年 總選 20代 國會議員 서울 麻浦區 甲 새누리黨 28,429票
33.20%
2位 落選

各州 [ 編輯 ]

  1. “안대희 인터뷰 "釜山 海雲臺에 出馬한다 " . 《시사저널》. 2015年 12月 16日.  
  2. “少年檢査→國民檢事→宰相으로… 안대희 前大法官, 새 總理에 內定” . 《國民日報》. 2014年 5月 23日.   .
  3. 안, 大喜 (2012年 7月 7日). “[Why] [강훈의 와일드 터치] 法대로 35年… 戰爭이었다” . 《조선닷컴》.  
  4. 안대희 總理 內政, 現役 議員 줄줄이 拘束했던 '特殊통' 檢事出身 . The Fact 라이프, 2014年 5月 23日
  5. 盧雄來, 안대희 麻浦甲 挑戰 歡迎..."안대희 前 大法官 堂堂히 나서라" , 日曜新聞, 2016年 1月 15日
  6. ' 盧武鉉 大選資金 疑惑' 一觸卽發” . 2007年 4月 23日.  
  7. “[政治] 散散이 흩어진 錦江同志여!” . 《주간한국》. 2004年 3月 17日.  
  8. “[안대희 서울高檢長] 不法 大選資金 대쪽 搜査” . 《韓國日報》. 2005年 4月 4日.  
  9. “2002 大選 資金 보인다, 보여” . 示唆IN. 2007年 11月 28日 . 2009年 6月 12日에 確認함 .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10. 上告審 事件 報告 月 100餘件...休日도 返納 '殺人的 業務' , 世界日報, 2016年 1月 23日
  11. “大法 `론스타 외환카드 株價造作 無罪` 破棄” . 《每日經濟》. 2011年 3月 11日.  
  12. "'辯護士 適正 保守' 얘기했던 안대희" YTN 5月 27日
  13. "안대희, 前官禮遇 疑惑 비켜갈 수 없다" 中央日報 2014年 5月 27日
  14. "안대희 總理 候補者 "個人的으로 생각해도 너무 많다" 中央日報 5月 27日
  15. 안대희 "前官禮遇, 하지도 받으려고도 않았다" 解明 Archived 2016年 2月 5日 - 웨이백 머신 이데일리 2014. 5. 28.
  16. "朴智元, 안대희 前官禮遇?.. 現職禮遇 받았다" 머니투데이 5月 27日
  17. "안대희, 1週日만에 國務總理 辭退" YTN, 2014. 5. 28.
  18. "안대희, 前官禮遇, 寄附時點 等 論難만 10餘個" 충청일보 2014. 5. 28.
  19. "單獨! 안대희, 總理物望 時點에 歲月號 3億 寄附" 한겨레新聞 2014年 5月 26日
  20. "안대희, 總理 指名 앞서 3億 寄附…人事聽聞會 對備?" JTBC 2014年 5月 27日
  21. "안대희 候補 '11億 社會還元'… 總理內定 直前 3億 부랴부랴 寄附" 이투데이 2014年 5月 27日
  22. "安 候補者, 번 돈 내놓는다고 公職 積弊 剔抉 資格 생기겠나" 朝鮮日報 2014年 5月 27日
  23. "안대희 候補者, 3億 寄附時點 論難..."總理 指名과 無關"" MBN뉴스, 2014. 5. 28.
  24. "安 候補者 夫人, 2001·2007年 子女만 데리고 住所地 옮겨" 朝鮮日報 2014年 5月 27日
  25. "안대희 候補者, '南山 住商複合' 實去來價 違反 疑惑" 노컷뉴스 2014年 5月 27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