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벽
( 孫小碧,
1801年
~
1840年
1月 31日
)은
朝鮮
의
天主敎
迫害
때에
殉敎
한
韓國 天主敎
의
103位 成人
中에 사람이다.
洗禮名
은
막달레나
(Magdalena)이다.
그女는
殉敎者
최창흡 베드로
의 아내이다.
生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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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孫昭壁은
漢陽
의 한
天主敎
家庭에서 태어났다. 그女의 아버지가
1801年
辛酉迫害
로 流配刑에 處해진 後
殉敎
하고, 얼마 못가 어머니 마저도 世上을 떠난 뒤로, 그女는 外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家族의 不幸한 狀況은 그女를 小心하게 만들었고 그女는 다른
天主敎
人들과 떨어져 지냈으므로, 天主敎를 늦게 배웠다.
그女는 17歲에
최창흡
과 結婚하여 함께
敎理
를 배웠다.
1821年
에
콜레라
가 猖獗하자, 그女는 男便과 함께 非常
洗禮
를 받았다. 그는 後日에 그女보다 먼저
殉敎
한다. 그들은 열한 名의 子女를 두었지만, 그들 中 아홉 名은 幼兒期 때 목숨을 잃었다. 그女는 溫和한 性品과 상냥한 말씨를 지녔었으며, 바느질과
수놓기
에 뛰어난 才能이 있는 것으로 有名했다.
1839年
己亥年의 迫害
동안에, 그女는 親戚집에서 숨어지냈지만,
6月
에 家族과 함께
逮捕
되었다. 鋪裝은 그女를
審問
했다. "네 同僚
天主敎
도 들이 어딨는지 불어라." "저는 제 同僚 敎友들이 있는 곳을 發說하여 그들에게 害를 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絶對
하느님
을 否定할 수 없습니다." "네가 그 한 마디만 한다면, 釋放되어 네 男便과 子息들과 함께 살 수 있지만, 固執을 부린다면, 너는 죽을 것이다." "제 삶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삶을
舊怨
받기 위하여 제
하느님
을 否定할 수 없습니다."
그女는 그女의
사위
趙信喆
이
베이징
에서 가져와 그女에게 맡겨 놓은
敎會
物品에 對한 出處의 추긍으로 인하여서도 極甚한
拷問
을 받았다. 그女는 일곱 次例의
審問
을 받았고, 세 次例
周牢刑
에 處해졌으며,
棍杖
260 餘臺를 맞았다. 그女는
살
가죽이 떨어져 나갔으며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모든 苦痛을 견딜 수 있는
힘
乙 준
하느님
께 感謝했다.
孫昭壁은 그女의 두 살 된 막내딸도
監獄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그곳은 濁한 空氣에 어둡고 飮食이 不足한데다가, 그女는 子息이 그女의
殉敎
意志를 弱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딸을 한 親戚에게 맡겼다. 그女는
刑曹
에서도 3 次例의
拷問
을 더 犬女낸 뒤, 死刑場에서
殉敎
하였다.
官撰記錄(《
承政院日記
》)에 따르면, 孫昭壁은 마침내
漢陽
近郊의
당고개
로 押送되어
1840年
1月 31日
에 39歲의 나이로 다섯 名의 敎友와 함께
斬首
되었다고 한다.
諡福 · 詩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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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소벽 막달레나는
1925年
7月 5日
에
로마
聖 베드로 廣場
에서
敎皇
비오 11歲
가 집전한 79位
[2]
諡福式
을 통해
福者
품에 올랐고,
[3]
1984年
5月 6日
에
서울特別市
汝矣島
에서
韓國 天主敎
創立 200周年을 記念하여 訪韓한
敎皇
요한 바오로 2歲
가 집전한
미사
中에 이뤄진 103位
諡聖式
을 통해
成人
품에 올랐다.
參考 文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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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