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飛流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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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飛流조프

세르게이 세墓노비치 飛流조프 (Серге?й Семёнович Бирюзо?в, 1904年 8月 21日 ~ 1964年 10月 19日) 은 第2次 世界大戰 에서 活躍하고, 後에 蘇聯軍 總參謀長을 지낸 소비에트 聯邦 의 軍事指揮官이다.

랴잔주 에서 태어났다. 1926年에 蘇聯 共産黨에 加入하고, 붉은 軍隊에 入隊하였다. 以後 1937年 프룬제 軍事 아카데미를 卒業하고, 步兵 師團의 參謀長이 되었다. 1939年에는 하르코프 軍管區의 作戰部長이 되었고, 以後 第132 步兵 師團長에 任命되었다.

以後 3年間 繼續 이 部隊를 指揮했는데, 蘇聯軍 指揮官의 平均 在任期間이 기껏해야 몇달임을 勘案하면 이것은 매우 例外的인 일이었다. 독소戰爭 이 勃發하자, 飛流조프의 師團은 南西戰線과 브랸스크 전선군에 所屬되었다.

飛流조프는 能力있는 師團長이었으며, 때로는 後方이 아니라 陣頭에서 直接 戰鬪를 指揮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41年 한해동안에 5番이나 負傷을 當했다. 1942年에는 第48軍의 參謀長이 되었고, 이 部隊는 브랸스크 전선군에 屬해 있었다. 以後 第2 근위군의 參謀長을 歷任하여 스탈린그라드 戰鬪 에서 獨逸 第6軍을 包圍 殲滅하는데 功을 세웠다.

1943年 4月에는 南部戰線君의 參謀長이 되었고, 이 戰線君의 司令官은 표도르 톨부힌 이었다. 1943年 10月 20日에 南西전선군은 第4 우크라이나 전선군으로 改稱했고, 1944年 5月까지 在任하다가 다시 톨部힌과 함께 第3 우크라이나 電線君의 參謀長으로 前任했다. 10月에는 이 部隊에 所屬된 第37軍 司令官으로 任命되었다. 이 部隊는 우크라이나, 불가리아를 거쳐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까지 進擊하여 終戰을 맞았다.

終戰 以後 불가리아 駐在 蘇聯軍 司令官이 되었고, 繼續 여러 자리를 거쳤다. 1955年 4月 蘇聯 怨讐 階級을 받고, 飛流조프는 蘇聯 國內 방공군의 司令官이 되었고, 1962年에는 核미사일 部隊를 責任진 戰略로켓軍 司令官이 되었다. 1963年에는 蘇聯軍 總參謀長에 任命되었다.

1964年 10月 飛流조프는 유고슬라비아를 訪問하던 中 飛行機 事故로 死亡하였고, 遺骸는 化粧되어 크레믈린의 壁墓地에 安葬되었다.

前任
마트베이 자카로프
第5代 蘇聯軍 總參謀長
1963年 3月 ~ 1964年 10月 19日
後任
마트베이 자카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