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슈리 카툰
(
몽골語
:
Данашир хатан
또는
答납實利
(答納失里)는
1320年
-
1335年
)은 元나라 11代 皇帝
惠宗
의 皇后(在位:
1333年
~
1335年
)이다.
킵차크 칸國
의 親衛隊 司令官을 지냈었고, 元나라의 政治家인 右丞相이며, 太史(太師)를 지낸 太平王(太平王)
엘 테무르
(燕鐵木兒)의 딸이다. 姓은 킵차크 氏(欽察氏) 또는 바야우트 氏(伯岳吾氏).
[註 1]
最終 身分이 西人(庶人: 平民)이었던 탓에 諡號는 없다.
當代 實勢였던 아버지 엘 테무르의 事後 오빠인
텡기스
의 叛亂에 連累되어 廢位되었으며 闕 밖 司祭에서 지내다가
바얀
丞相이 보낸 獨走(毒酒: 鴆毒)를 마시고 死亡했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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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年은 알려지지 않으며 當代 實勢였던
太平王
(太平王)
엘 테무르
의 딸로 欠刹部 出身이다. 원 무종때부터 皇室과 聯關되었던 아버지
엘 테무르
는 晉종 系列을 沒落시키고, 무종의 아들 문종을 登極시켰다. 그러나 뒤늦게 軍士를 이끌고 온 明宗에게 文宗은 帝位를 讓步했지만, 갑작스럽게 毒殺당했다. 엘 테무르는 明宗을 毒殺했다는 疑惑을 받았고, 自身의 딸 다나슈리를 明宗의 아들 土곤테무르와 婚姻시켰지만, 土곤테무르가 明宗 毒殺의 責任을 물을까봐 두려워했다.
어떤 理由에서였는지 그女는 結婚 後 아이를 낳지 못했다.
1333年
(至純 4年·圓筒 元年) 6月에
惠宗
이 그女의 아버지
엘 테무르
의 補佐 아래 皇帝로 語위하였고 다음 達人 7月에 惠宗의 원후(元后: 첫 皇后)로 出嫁했다.
1334年
(圓筒 2年)에 冊褓를 받고 正式 皇后로 冊立되어 惠宗의 第1 皇后로 登極했다.
1335年에 오빠
텡기스
가 叛亂에 힙쓸렸다가 親衛隊 司令官을 맡은
바얀
(伯?)에 依해 死刑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女 亦是 廢位되어 出宮되었다. 以後 個坪部(開平府: 現 內몽골 自治區 多輪縣 西北部)에서 平民으로 지내다가
바얀
丞相이 보낸 鴆毒(?毒)
[註 2]
으로 死亡했다.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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叛亂이 鎭壓되자 타라카이는 다나슈리의 皇后前으로 숨어들었다. 다나슈리는 타라카이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哀願하였으나 그가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10代 初中半의 매우 어린 나이에도 不拘하고 性情이 매우 殘惡無道했다.
高麗
人 出身으로 男便의 後宮인
기황후
를 嫉妬하여 別 理由 없이 채찍질을 하고 인두로 지지는 等 毆打 苛酷行爲를 일삼았다. 다나슈리가 기황후를 侮辱하고 無慈悲하게 毆打한 것은 여러
몽골
과 中國 民譚, 傳說에 傳해 내려오고 있다.
家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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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슈리가 登場한 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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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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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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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明나라에서 編纂한 《元士(元史)》에선 타나實利 婦女를 킵차크 氏(欽察氏)로 表記하고 있고, 中華民國에서 再編纂한 《新元史(新元史)》에선 바야우트 氏(伯岳吾氏)로 表記하고 있다.
- ↑
鴆새의 깃털을 술에 憂慮 抽出한 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