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에를리히
(Paul Ehrlich,
1854年
~
1915年
)는
獨逸
의
微生物學者
·
면역학자
·
化學療法
의 創始者이다. "
化學療法
(chemotherapy)"이라는 用語와 "魔法의 彈丸 (magic bullet)"이라는 槪念을 처음으로 使用하였다. 1909年에 性病인 梅毒(梅毒 Syphilis) 治療劑인 '살바른山 606'을 開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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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年에는 노벨 生理醫學賞을 받았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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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王國
슐레지엔
의 슈토레렌(現在의
폴란드
돌니室롱스크週
)의 유태系 독일인 家庭에서 出生했다.
브로츠와프
,
스트라스부르
,
프라이부르크
,
라이프치히
의 各 大學에서
醫學
을 工夫했다. 靑年 時代부터
色素
에 依한 組織 染色에 對한 硏究를 推進하고, 加熱 染色 結核菌 標本이 기연(機緣)李 되어서
코흐
의 硏究所에 招聘되어
免疫學
(免疫學) 硏究에 從事했다. 뒤에
베링
의 請에 應하여 抗毒素 血淸 製造 技術의 改良에 成功, 베를린 郊外 스테그리츠 國立 血淸檢定 兼 血淸硏究所 所長이 되었으며, 이어서 이 硏究所의 規模를 擴大하여 以前(移轉)韓 프랑크푸르트의 實驗治療法硏究所 所長이 되었다. 그동안 血淸 檢定法·免疫 單位를 確立하여 오늘날 各國에서의 檢定法의 規範을 만들었다. 또 免疫 反應의 理論으로서 側碎屑(側鎖說)을 提唱했다. 이와 같은 免疫學에 對한 業績으로,
1908年
엘리 메치니코프
와 함께
노벨 生理學·醫學賞
을 받았다.
1906年
, 스파이엘 夫人의 寄贈에 依하여 硏究所를 設立하고, 여기서 色素療法으로부터 化學療法에로 硏究를 推進하고,
1910年
606號(살바르산)을 創製하여 化學療法의 길을 開拓했다.
實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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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血液學·免疫·化學 療法의 基礎를 마련 獨創的인 硏究者이며, 細菌學 및 醫療 化學 方面으로 수많은 새로운 技法을 考案했다. 150餘 篇의 論文은 多方面에 걸친다. 처음에는 血液 얼룩에 着眼하여 아닐린 染料에 依한 生體 染色으로 硏究를 발전시켜 "血液 腦 障壁"의 存在에 注目했다. 이어 免疫學 硏究로 옮겨 抗原 抗體의 特異成果 量的 關係를 밝혔고, 有名한 測鎖說을 세웠다.
側碎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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測鎖說이란 各 細胞가 特定한 毒性物質을 吸收하거나 同化하는 測鎖 或은 受容器를 가지고 있다는 假說이다. 毒性을 가진 分子는 細胞의 測鎖와 結合해야 細胞에 作用할 수 있다. 毒性에 感染된 有機體는 많은 測鎖를 만들어내는데, 이 測鎖로 인해 새로운 感染을 막아낼 수 있는 免疫이 생긴다. 에를리히는 토끼 實驗을 통해 毒性을 조금씩 늘리는 方法을 使用하여 致死量의 5000倍가 되는 濃度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證明했다. 이 理論은 血淸의 效果와 抗原의 定量的인 形態를 說明해냈다.
梅毒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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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에를리히는 相當한 資金이 있었고, 그가 主管하는 硏究所가 있었다. 그의 同僚인 사하치로 하타는 梅毒을 물리치는데 많은 寄與를 했다.
主要 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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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e Wertbemessung des Diphtherieheilserum and deren theoretischen Grundlagen (1897年 A. Lazarus와 共同)
- Gesaramelte Arbeiten zur Immunitatsforschung (1904年)
- Uber die Beziehungen zwischen Toxin und Antitoxin und die Wege zn ihrer Erforschung (1905年)
- Die experimentelle Chemotherapie der Spirillosen (1910年)
- Abhandlungen uber Salvarsan (4 卷 1911 - 14年)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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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트룬 슈리 <世界史를 뒤흔든 16가지 發見> 茶山草堂 2008年 p229
外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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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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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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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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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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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現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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