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건식
(閔健植,
日本式 이름:
閔原健植
빈하라 겐쇼쿠
,
1879年
陰曆 11月 27日
~
1944年
11月 10日
)은
日帝强占期
의
朝鮮貴族
이다. 本貫은
餘興
.
生涯
[
編輯
]
大韓帝國
의 度支部大臣을 지낸
민영기
의 아들로
餘興 閔氏
戚族 家門에서 태어났다.
1897年
警鐘
의 整備
단의왕후
가 묻힌 惠陵(惠陵)의 參奉職에 任命되면서 官職을 始作했다.
1905年
官立한성사범학교
校長에 任命되었고,
1907年
에는 日本에 視察團의 一員으로 다녀왔다.
1910年
韓日 倂合 條約
이 締結되면서 植民統治 諮問 機構인
朝鮮總督府 中樞院
이 設立될 때 副贊儀를 맡았고, 日本 政府로부터
男爵
위를 授與 받았다.
1921年
에는 中樞院 參議에 任命되었는데, 이때 그의 아버지인 민영기는 中樞院의 拷問에 任命되어 2臺가 함께 中樞院의 官職을 받았다.
1912年
日本 政府로부터
韓國倂合記念章
을 받았다.
[1]
親日 儒林 團體인
朝鮮儒敎回
에
안循環
,
김경중
,
안인식
等과 함께 參加했으며, 日本의 高級 密偵이었던
배정자
의 두 番째 男便
현영운
李 會長을 맡은 비슷한 性格의
朝鮮儒林聯合會
副會長도 맡았다.
[2]
그의 作爲는 아들 민병억이 習作했다. 光復 以後인
1949年
8月에 민건식의 아들인 민병억(閔丙億)李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에 送致되었다는 《경향신문》 記事가 있지만 爵位를 承繼받은 時期에 對한 記錄은 남아 있지 않다.
2002年
發表된
親日派 708人 名單
과
2008年
民族問題硏究所
에서
친일인명사전
에 收錄하기 위해 整理한
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 名單
에 민영기와 함께 選定되었으며
2009年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
가 發表한
親日反民族行爲 705人 名單
에도 包含되었다.
家族 關係
[
編輯
]
- 曾祖父 : 民治火(閔致和)
- 祖父 : 민준호(閔峻鎬)
- 아버지 :
민영기
(閔泳綺)
- 否認 :
南陽 洪氏
- 長男 : 민병억(閔丙億) - 生父 : 민정식(閔?植)
같이 보기
[
編輯
]
參考資料
[
編輯
]
各州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