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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치 즈이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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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치 즈이盞
다케치 즈이盞
日本語式 漢字 表記 武市 瑞山
가나 表記 たけち ずいざん
國立國語院 標準 表記 다케치 즈이盞
로마字 Takechi Zuizan

다케치 즈이盞 ( 日本語 : 武市 瑞山 , 1829年 10月 24日 ~ 1865年 7月 3日 )은 막말 에 活躍한 無事로 道士 勤王當 의 首長이었다. 즈이盞은 法號이며 統稱은 한페이타(半平太)로 다케치 한페이타 로 불리는 境遇가 많다. 兒名은 시카에(鹿衛), 本名은 高타테(小楯)이다. 假名을 쓸 때는 아나機카와 社몬(柳川左門)을 使用했으며, 이때 후키盞(吹山)을 雅號로 삼았다.

아버지는 道士番 下級武士 다케치 마사쓰네 , 어머니는 오이 氏 (大井氏)이다. 夫人은 緦麻무라 도미코 이며 子女는 없다. 緦麻무라 氏 또한 道士 番의 下級武士 家門이다. 즈이盞은 사카모토 료마 와는 먼 親戚뻘이다.

1863年 9月 21日 '警査의 事態에 따라(京師の沙汰により)'라는 罪目으로 城下의 오비野情 남繪素에 投獄되었다. 1865年 7月 3日 火가 머리 끝까지 뻗친 야마우치 尿道 에 依해 '主君께 對한 不敬行爲'를 罪目으로 割腹 命令이 떨어졌다. 韓페이打는 몸을 깨끗이 하고 正裝하여 같은 날 20時頃 南繪素 큰마당에서 只今까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이야기되던 '三文字割腹의 法'을 使用하여 法式대로 배를 세 番 가른 後 앞으로 쓰러졌으며 兩便의 가이샤쿠닌 에 依해 心臟을 꿰뚫려 絶命했다. 享年 37歲(만으로는 35歲).

辭世句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歲月을 無償打 하여도 只今에 와서는 아쉬움 없는 몸이 되었도다
(ふた?びと 返らぬ?を はかなくも 今は惜しまぬ 身となりにけり) [1]

事後 1891年 메이지 政府 로부터 贈位 되어 情4位 에 位階되었다.

그의 生家와 墓所는 國家 史跡으로 指定되어 있으며, 고치시 에 있다.

다케치 즈이盞을 演技한 俳優들 [ 編輯 ]

TV 드라마 [ 編輯 ]

各州 [ 編輯 ]

  1. 勇猛?悲? ?世の句150 ??武??維新志士?帝?軍人…日本男?が遺した最後の言葉!p.140 DIA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