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신드롬/제임스 B 트위첼 지음 최기철 옮김/472쪽 未來의창 1萬5000원
이제는 當然히 우리 社會의 한 部分이라고 생각되는 모습들. 거리에서 구치 핸드백을 든 女性이나 랄프 로렌 셔츠를 입은 젊은이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람에 앞서 브랜드가 거리를 闊步하는 時代다. 이른바 ‘名品族’이 늘어나다 보니 웬만한 高價品은 奢侈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 周邊에는 이렇게 富者가 많은 것일까.
事實 조니 워커 블루가 아니어도 위스키는 많다. 굳이 카르티에 로고가 없더라도 여간해서 손목時計의 時間이 틀리는 法은 없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은 ‘名品’을 찾는 것일까. 사람들은 그들이 使用하는 브랜드(製品이 아니라)가 그들을 代辯한다고 믿는다.
‘모두를 위한 奢侈品’은 언뜻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奢侈品, 또는 豪奢品을 사서 쓸 수 있다면 그것은 더 以上 豪奢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現代社會는 이 矛盾된 命題를 충족시킨다. 포르셰 911 乘用車를 타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물 한盞이라면 에비앙 程度는 마실 수 있다. 된醬찌개 白飯으로 點心을 때우고 난 뒤라도 後食은 點心값만큼을 支拂해야 하는 스타벅스 커피. 브랜드를 통해 所屬感을 느끼는 오늘, ‘日常의 豪奢品’은 階層의 壁을 허무는 道具로 받아들여진다.
美國 플로리다대 廣告學 및 英文學 敎授인 著者는 이 冊에서 現代社會의 名品 신드롬을 分析하고 이를 操心스럽게 擁護한다. 누가 豪奢品을 만들어내는가, 어떻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創造하고 이를 大衆에게 刻印시키는가, 왜 大衆은 豪奢品을 願하는가. 이런 質問에 對한 解答을 提示하면서 한便으로는 傳統的인 檢約款, 儉素管을 相對로 豪奢品에 對한 辯論을 펼친다.
勿論 모든 讀者가 “豪奢品은 民主的이고 結束力이 있다”는 著者의 主張에 全的으로 共感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敎育費로 40萬달러를 쏟아 부으면서도 이웃의 메르세데스 乘用車를 奢侈라고 非難하는 知識人의 ‘知的 虛榮’을 들춰내는 대목에서는 우리가 ‘豪奢品’에 對해 가지고 있던 偏見을 되돌아보게 한다.
주성원記者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