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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95年 歸順 최세웅氏 個人外換去來 시스템開發|東亞日報

[클로즈업]95年 歸順 최세웅氏 個人外換去來 시스템開發

  • 入力 2002年 9月 17日 18時 59分


‘벤처’ ‘金融去來’ ‘經營者’ 等의 單語를 ‘北韓’과 함께 떠올리기는 多少 語塞하다.

최세웅(崔世雄·41·寫眞) 에스엔뱅크 社長은 이 單語들을 모두 떠올리게 하는 特異한 履歷을 가졌다.

17日 午前 10時半, 崔 社長은 서울은행이 선보인 ‘사이버 換錢市場’ 사이트에서 去來 狀況을 보고 있었다. 個人끼리 인터넷上에서 원貨와 달러貨 去來를 할 수 있는 電算시스템인 IBS를 開發한 곳이 바로 에스엔뱅크.

開場 1時間 만에 1萬달러어치가 去來됐다. 旣存의 外換市場이 ‘機關’끼리 去來하는 都賣兄이었다면 ‘소매 外換市場’이 열린 셈. 現在는 원貨와 달러貨만 去來되지만 유로貨 위안貨 금 等 去來品目을 擴大해 나갈 計劃이다.

벤처事業家로 變身한 최세웅 前 北韓 朝鮮統一發展銀行 副總裁補(왼쪽)가 1995年 家族과 함께 歸順할 當時 寫眞記者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동아일보 資料寫眞

崔 社長은 北韓 勞動黨 財經經理部長(韓國의 財政經濟部長官에 該當)을 지낸 최희벽氏의 次男.

高位層 人士가 모여 사는 平壤 창광동에 살았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獨文學을 專攻했다.

兄과 男동생이 軍에 몸담子 김정일 國防委員長이 “둘째는 金融을 가르쳐 經濟分野에서 일하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父親에게 提案한 것이 外換去來와 因緣을 맺은 契機. 오스트리아 銀行에서 84年부터 2年間 硏修를 받은 後 줄곧 國際金融 業務를 맡았다.

外換去來가 代金決濟 等에 主로 必要한 韓國과 달리 北韓에서는 外換去來 自體로 外貨를 벌어들이는 것이 重要하기 때문에 北韓 外換 딜러의 市場 豫測이나 去來技法 水準은 世界的이라는 것이 崔 社長의 說明.

그는 主로 런던에 居住하며 北韓의 대성銀行과 英國 企業이 合作한 外換去來 專門業體 代表를 5年間 지냈고 朝鮮統一發展銀行 副總裁補를 맡던 中 95年 夫人, 두 子女와 함께 歸順했다. 資本主義 社會에 오래 살았던 데다, 父親의 急作스러운 左遷 等으로 體制에 對한 懷疑가 들었기 때문.

“無消息이 喜消息이겠거니 한다”는 崔 社長은 歸順 以後 北에 있는 다른 家族들의 消息은 아는 바가 없다.

그는 海外에서는 두 名씩 함께 다니도록 돼 있는 規定도 適用받지 않았고 部下 職員 中에 外國人도 많아 歸順 前 ‘資本主義 經驗’이 많은 便이다. 하지만 “南으로 온지 7年”이라면서도 “이제 初等學校에 入學한 셈”이라고 말한다.

韓國에 와서는 金融決濟院·나라綜金 等에서 外換仲介業務를 하다가 2000年 에스엔뱅크의 前身인 벤처企業 엔포렉스를 設立했다. 아직 赤字지만 來年 1月頃 損益分岐點을 넘을 수 있다고 한다.

夫人 신영희氏는 85年 南北藝術團 交換公演 때 서울에서 公演하기도 했던 有名 舞踊家 出身.

김승진記者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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