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年 시즌을 끝으로 國內舞臺를 떠나 日本과 美國프로野球를 모두 經驗하며 彷徨의 時間을 보내기도 했던 이상훈이 4年 7個月餘만의 復歸 後 登板競技에서 녹슬지 않은 鋼鐵어깨와 老鍊味로 예전의 名聲에 걸맞은 活躍을 보여줬다.
이상훈이 只今까지 마운드에 오른 것은 고작 2競技에 不過하지만 自身의 眞價를 보여주기에는 不足함이 없었다.
지난 18日 기아와의 競技에서 時速 150㎞의 直球를 던져 周邊을 놀라게 했던 이상훈은 21日 롯데戰에서도 3-3으로 맞선 7回末 走者없는 2死後 登板, 1⅓이닝을 1安打, 2脫三振, 無失點으로 막고 팀 打線의 支援속에 復歸 後 첫 救援勝을 올렸다.
이상훈으로선 4年 8個月餘만에 맛본 感激의 勝利였다.
하지만 이상훈은 復歸 當時만해도 國內 프로選手 最高 契約金(4億7千萬원)에 相應하는 活躍을 보여 줄 지에 對한 疑惑의 視線을 받은 게 事實이다.
97年 시즌을 끝으로 日本으로 건너간 이상훈은 주니치에서 2年間 7勝5敗23세이브를 記錄한 뒤 2000年 美國프로野球 보스턴 레드삭스에 入團했지만 메이저리그의 높은 壁을 넘지 못하고 結局 지난 해 8月 放出되는 아픔을 겪고 以後 國內 復歸까지 오랜 彷徨의 時間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5年前 145㎞ 안팎이었던 볼 스피드가 오히려 빨라졌고 競技運營에도 相對 他者의 心理를 읽는 頭腦피칭과 볼 配合이 以前보다 휠씬 나아졌다는 게 周邊의 評價다.
여기에 球團과 팀同僚들의 信賴와 LG팬들과 野球팬들의 사랑과 信賴도 이상훈이 빠른 時間에 適應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球團은 이상훈의 國內復歸를 위해 球團主가 直接 나서 이상훈 說得作業을 했던 日부터, 復歸以後 國內 프로選手 最高의 待遇를 서슴치 않았다.
팀同僚들의 信賴 또한 全幅的이다.
勝負師 氣質이 多分한 이상훈의 모습과 日本과 美國 先進野球를 接한 經驗에 對해 後輩, 同僚 選手들은 존경스러워 한다.
지난 18日 蠶室復歸舞臺를 치룬 이상훈은 변함없는 팬들 사랑에 가슴뭉클했다. 蠶室 마운드에 오른 이상훈의 모습을 보기위해 구름때처럼 모인 LG팬들의 熱狂度 이상훈이 自信感을 갖는데 한몫했다.
自身의 復活意志와 周邊의 따뜻한 配慮속에 復歸 後 成功的으로 適應하고 있는 이상훈이 多勝王(95年.20勝)과 救援王(97年.47세이브포인트)을 거머쥐었던 全盛期때의 名聲을 다시 回復할 수 있을지 期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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