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正말 알아야 할 三國遺事(1, 2)/高雲起 지음 양진 寫眞/1卷 415, 2卷 395쪽 各 2萬원 현암사
‘三國遺事’는 ‘三國史記’와 함께 우리 民族의 古典으로 우리의 歷史와 文化를 傳하고 있는 寶庫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의 內容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 冊은 그런 ‘三國遺事’를 大衆들이 쉽게 理解할 수 있도록 解說한 冊이라고 할 수 있다.
大部分의 사람들은 ‘三國遺事’를 읽고 싶어도 그 脈絡을 잘 몰라 接近하기가 쉽지가 않으므로 著者는 그 背景을 說明하여 ‘三國遺事’의 內容을 理解하기 쉽도록 했다. 또한 140餘 個에 達하는 項目을 40個의 題目으로 分類해 두 冊으로 나눴는데 그 項目의 題目을 現代人들의 口味에 맞게 달아놨다.
‘三國遺事’는 13世紀 末 一然에 依해 쓰여지고 그의 弟子들에 依해 出版됐다고 보고, 一然의 生涯와 著述에 對해서도 補充 說明을 했다. 또한 그동안 學界에서 硏究된 硏究 成果를 일정하게 反映하고 있다.
아울러 文學을 專攻한 著者는 文學的 想像力을 加味하여 ‘三國遺事’의 世界를 豐富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이 冊의 壓卷은 400餘 張에 達하는 ‘三國遺事’ 關聯 現場 寫眞과 그에 對한 簡潔한 寫眞 說明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點은 學界의 最近 硏究成果를 일정하게 反映하고 있기는 하나 韓國史學界의 硏究成果는 充分히 反映하지 못하고 있다는 點이다. 먼저 ‘三國遺事’의 著者는 一然 혼자가 아니라 共同 編纂됐다는 說이 提起되고 있는데 이에 對한 言及이 없어 아쉽다. 特히 王力便은 一然이 執筆한 것이 아니라는 見解와 그의 弟子인 無極이 썼다는 대목에 對한 補充 說明이 있었으면 大衆들이 ‘三國遺事’에 對해 더욱 關心을 갖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土着信仰과 佛敎와의 文化接變現象을 ‘習合’이라고 表現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말이 아니며 日本學者들이 使用한 用語로 歷史學界에서는 ‘融和’나 ‘融合’이라고 表現하고 있다. 高句麗를 北方文化, 新羅를 南方文化와 관련시켜 論하고 있으나 이런 用語도 日帝 植民史學者들이 使用한 用語이므로 使用에 신중할 必要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13世紀를 中世의 始作으로 보는 見解는 韓國史學界의 硏究成果와는 全혀 距離가 멀며, 오히려 日本史學界의 硏究成果와 一致하고 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冊은 맛깔스런 表現으로 ‘三國遺事’를 立體的으로 再照明하는데 成功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三國遺事’에 對한 硏究書와 飜譯本이 많이 나왔음에도 不拘하고 大衆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못한 것을 勘案할 때, 이 冊은 大衆的 글쓰기로써 ‘三國遺事’를 大衆들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 가장 큰 意義가 있다고 하겠다.
최광식 高麗大 敎授·韓國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