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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裁判’하다 떠난 한기택 判事|東亞日報

‘목숨 걸고 裁判’하다 떠난 한기택 判事

  • 入力 2005年 8月 8日 04時 05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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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택(韓騎澤·寫眞) 大田高等法院 部長判事가 7月 末 家族들과의 休暇 旅行에서 心臟痲痹로 숨졌다. 그는 生前에 “목숨 걸고 裁判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裁判에 臨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法院의 인터넷 揭示板에도 너무 일찍 가 버린 그를 기리는 글이 繼續 이어지고 있다. 先輩 同僚 後輩 判事들에게서 가장 많은 尊敬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진 한 判事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로 우리 時代 法과 사람과 世上을 비춰 본다. 同僚 判事였던 강금실(康錦實) 前 法務部 長官의 追慕 글도 紹介한다.》

離別의 時間까지는 사랑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고 했던가.

7月 26日 三星서울病院 葬禮式場 16號室. 喪服을 한 中年의 女人이 男便의 影幀 앞에 섰다. 떠나는 男便에게 마지막 말을 해야 하는 瞬間. 그女가 한 말은 모두 세 마디.

“여보, 사랑해요. 잘 알지?”

“여보, 未安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여보, 고마워요. 所重한 아이들을 주고 가서….”

이날 對話의 主人公은 한기택 大田高等法院 部長判事와 그의 夫人 이상연 氏. 夫人 李 氏는 슬픔에 젖은 男便의 親舊와 同僚들을 慰勞하면서 눈물을 보이지 않다가 이 말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한 部長은 이틀 前 老母를 모시고 兄弟 家族들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休暇를 떠났다가 心臟痲痹로 숨졌다.

이 場面을 지켜보던 同僚 判事들은 그들이 離別하는 瞬間, 비로소 그들의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은 1977年 大學 1學年 때 만나 ‘1000番의 데이트’ 끝에 1985年 結婚했다. 젊었을 때 한 判事의 꿈은 좀 特異했다. ‘絶對로 火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李 氏는 한 判事가 이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結婚 20年 동안 한 番도 火를 내지 않았다는 것.

이들의 사랑의 根據는 서로에 對한 尊敬이었다. 葬禮式 節次가 한창 進行 中일 때 夫人 李 氏에게 故人의 同僚 判事가 車를 태워주겠다고 하자 이 氏는 鄭重히 拒絶했다. “男便이 願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 한 判事는 올해 2月 次官級인 高等法院 部長으로 昇進해 官用車를 제공받았지만 夫人과 家族에게 ‘單 1秒’도 車를 태워주지 않았다. 公職者의 道理에 어긋난다는 게 理由였다.

한 判事는 모든 걸 다 바쳐 오로지 裁判에만 熱中한 까닭에 後輩들 사이에서 ‘목숨 걸고 裁判하는 判事’로 불렸다.

그가 한 判決들을 보면 그가 무엇에 목숨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서울行政法院 時節 判決에는 社會的 少數者들이 받는 差別과 그들의 權益 保護에 對한 남다른 關心이 나타나 있다.

2003年 3月 法務部가 韓國人과 結婚한 中國人 配偶者에 對해 中國에 두고 온 成人 子女의 韓國 招請을 막는 것이 憲法에 保障된 平等權에 어긋난다고 判決했다.

2002年 5月에는 先任兵의 苛酷行爲로 自殺한 陸軍 某 砲兵部隊 二等兵 嚴貌 氏에 對해 “苛酷行爲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은 職務遂行과 關聯이 깊다”며 國家有功者로 認定하는 判決을 내렸다.

反面 高位公職者나 政治人에 對해서는 嚴格한 判決을 내렸다. 2003年 2月 高位公職者의 財産登錄 때 該當 公職者의 直系 존·卑俗이 財産登錄을 拒否할 境遇 拒否 事由와 拒否者의 이름을 公開하라고 判決했다. 財産登錄을 拒否하는 것이 正當한 것인지 國民이 監視하고 檢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4月 財閥家의 딸이 結婚 祝儀金 2億1000萬 원에 對해 賦課된 贈與稅를 取消하라며 낸 訴訟에서 “贈與稅 賦課가 正當하다”는 判決을 내린 것도 話題를 낳았다.

한 判事는 올해 2月 同僚와 後輩 判事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瞬間 眞正한 判事로서의 삶이 始作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그를 夫人 李 氏는 尊敬하고 사랑했다. 李 氏는 “20年을 살아오면서 한瞬間도 쉬지 않고 서로 사랑해 왔다”고 말했다.

夫婦끼리 切親한 사이인 이광범(李光範) 광주고등법원 部長判事의 夫人 김매지(金梅枝) 氏는 “두 사람은 眞正한 사랑과 尊敬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金宗壎(金宗勳) 辯護士는 “떠난 그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 없이 살아야 할 우리가 불쌍하다”고 말했다.

이수형 記者 sooh@donga.com

全知性 記者 verso@donga.com

▶ 故한기택 部長判事 略歷

▼강금실 前 法務部長官이 보낸 追慕의 글▼

한기택 部長判事의 葬禮式에서 흐느끼는 강금실 前 長官.
한기택 部長님, 한 判事님, 한 兄.

當身은 죽어서 그리움으로 存在하는 사람입니다. 살아서 우리에게 存在를 비추어 주는 빛의 役割을 하였고, 죽어서 그리움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永遠한 存在가 되었습니다.

當身이 가고 저는 살아서 이렇게 부끄럽습니다. 살아서 이렇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처음 해봅니다. 언제 보아도 호리호리하게 야윈 몸을 조금 흔드는 듯, 살짝 보조개가 들어가는 듯, 변함없는 微笑 속에서 언제나 다름없던 차근차근하고 조용한 말씨로, 當身은 恒常 거기에 그 자리에 있었어요.

우리가 가고 싶지만 차마 엄두가 안 나 못 가는 곳. 살아 있는 모든 時間, 살아 있는 모든 情熱을 沒入하여 至極한 純潔로 머물러 있는 곳. 거기에서 언제나 當身은 조용조용하게 우리에게 말하였고 몸소 보여 주었어요. 가장 熾烈한 頂點에서 사는 것만이 眞實이며 正答이라고요. 우리는 조금씩 비켜서 있었지요. 그러면서 當身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으로 스스로 慰勞했지요. 이제 當身은 永遠한, 永遠히 닿기 어려운 빛으로 우리 삶을 쓰다듬어 줄 것인가요.

한 判事님, 한 兄, 起宅 氏.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네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요.

苦惱하고 彷徨하는 우리 모두에게 當身은 이제 永遠한 그리움이 되었어요. 只今쯤 하느님 앞에서 새로운 靈魂의 삶을 準備하고 계신가요. 當身이 함께하였던 當身의 家族, 親舊들, 우리 모두에게 남은 삶의 길을 이끌어 줄 準備를 하고 계신가요.

當身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올해 2月 高等法院 部長昇進 祝賀모임 자리였어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곤소곤 저에게 말하였어요. “零細 받은 것 祝賀한다”고. “이승은 아무래도 幸福한 곳은 아니다”고. 그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當身 말이었어요. 이승은 아무래도 幸福한 곳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리움이 된 當身을 따라 우리도 最善의 길을 찾아 努力할게요. 다시 만날 날까지. 그날까지 새로운 그곳에서 幸福한 나날 꾸리고 있으세요. 다시 만날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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