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는 約 20個의 朝鮮時代 橋梁이 있었다. 청계천을 覆蓋하면서 모두 撤去됐고 現在 原形 實物이 남아있는 것은 光敎(廣橋)와 水標橋(水標橋)뿐이다.
이들 文化財의 復元을 推進해온 청계천復元推進本部는 最近 原位置 復元이 어렵다는 意見을 내놓았다. 橋梁의 길이가 復元 河川의 幅과 맞지 않는 데다 原位置에 復元하면 汎濫을 誘發하고 交通 흐름도 妨害한다는 判斷 때문.
이에 對해 청계천復元市民委員會는 “文化財 復元 없는 청계천 復元은 있을 수 없다”고 反駁하고 있다.
▽光敎=光敎는 1958年 청계천 覆蓋 工事 때 覆蓋물로 덮어버렸다. 欄干 裝飾物 一部는 紛失됐고 一部는 昌德宮에 保存돼 있다. 光敎의 位置는 復元될 河川 물줄기의 北東쪽으로 벗어나 있다. 推進本部는 “原位置에 그대로 復元한다면 北쪽 車路에 놓여 交通 흐름을 妨害하게 된다”고 밝혔다.
原位置 南쪽의 河川으로 옮겨 復元해도 길이가 맞지 않는다. 光敎는 길이 12m, 幅 15.6m, 높이 3.5m. 河川 幅(26m)보다 짧고 河川 깊이(6m)보다 낮아 復元이 어렵다는 것. 推進本部는 또 構造物이 弱해져 集中 豪雨時 崩壞 危險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무교동 等 第3의 場所로 옮겨 復元하는 方案을 檢討 中이다.
1959年 청계천 覆蓋工事 때 奬忠壇公園으로 옮겨진 水標橋. -동아일보 資料寫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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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標橋=水標橋는 1959年 청계천 覆蓋視 奬忠壇公園으로 옮겨졌다. 길이 27.5m, 幅 7.5m, 높이 4m. 復元될 河川 幅(23m)보다 길어 原位置로 옮길 境遇 河川 兩쪽 車道로 2m 以上씩 튀어나온다. 높이도 河川 깊이에 못 미친다. 推進本部는 奬忠壇公園에 그대로 두고, 原位置엔 河川 幅에 맞게 길이를 줄인 水標橋 複製品을 設置하는 方案을 檢討 中이다.
▽原位置 復元, 不可能한가=시민위원회 租鑛權(趙匡權) 副委員長은 “洪水 交通對策의 技術的인 問題는 解決 可能하다. 文化財 復元은 意志의 問題”라고 말했다.
그는 “光敎의 境遇 北쪽 車路를 一部 統制하고, 水標橋의 境遇는 道路 操業空間(幅 2.5m)을 없애 車道로 利用하면 問題가 되지 않는다”면서 “橋梁의 安全 問題는 補强工事와 石材 交替를 통해 强度를 높이면 된다”고 主張했다.
水標橋 複製品을 原位置에 設置하는 것에 對한 反論도 있다. 크기를 줄인 複製品은 眞正한 意味의 複製品이 아니고 水標橋의 모습을 歪曲시킨다는 指摘이다.
原位置 復元의 목소리가 높자 推進本部는 좀 더 論議해 決定하기로 했다.
▽다른 文化財의 復元=推進本部는 광교와 水標橋, 興仁之門(東大門) 옆 오간수교(五間水橋)를 除外한 나머지 橋梁은 關聯 資料가 없어 復元 對象에서 除外했다.
오간수교의 境遇 청계천 復元을 마친 뒤 復元 與否를 決定할 計劃. 興仁之門으로 이어지는 漢陽의 城郭과 오간수교를 모두 復元해야 淸溪川의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는 意見에 따른 것.
또 청계천이 復元되면 청계천과 關聯된 다리밟기와 鳶날리기 等 各種 民俗놀이도 ‘復元’할 豫定이다. 水標橋의 原位置 옆엔 물의 높이를 재던 수표석의 複製品을 세울 計劃이다.
이광표記者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