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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謙齋旌善이 본 ´漢陽眞景´⑭]안현석鳳|東亞日報

[謙齋旌善이 본 ´漢陽眞景´⑭]안현석鳳

  • 入力 2002年 7月 11日 18時 44分


안현은 安山(鞍山) 또는 모악산(母岳山)이라 부르는 서울의 西쪽 山이다. 奉元寺(奉元寺)와 연세대 및 이화여대를 품고 있는 높이 296m의 山이다.

漢陽의 內白虎(內白虎·明堂의 西쪽을 막아주는 안쪽 山줄기)인 仁王山에서 西쪽으로 다시 갈라져 仁王山 西쪽을 겹으로 막아주고 있으니 漢陽의 外白虎(外白虎)에 該當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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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山을 安山 또는 안현이라 부르는 것은 산 模樣이 말鞍裝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길마는 安葬이란 뜻의 純 우리말이다. 아마 안현이나 安山은 길마재의 漢字式 表記일 것이다.

모악산 또는 모惡材라 부르는 것은 風水說에 依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서울의 早産(祖山·風水說에서 明堂의 根源이 되는 으뜸山)인 三角山(北漢山)은 부아악(負兒岳·애 업은 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를 업고 西쪽으로 달아나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西쪽 끝의 길마재를 모악(母岳·어미山)이라 하고 그 아래 연세대 附近 野山을 떡고개라 했다 한다. 어미가 떡으로 아이를 달래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어떻든 이런 길마재 위에는 太祖 때부터 烽燧臺(烽燧臺)를 設置하여 每日 저녁 烽火불을 올리게 했다. 無事하면 烽火불 하나를 올리고 外賊이 나타나면 두 個, 國境에 가까이 오면 세 個, 國境을 侵犯하면 네 個, 싸움이 붙으면 다섯 個를 올리도록 했다. 따라서 平和時에는 늘 烽火불 하나가 길마재 相逢에서 타오르기 마련이었다.

元來 길마재에는 東西 두 봉우리에 各其 다른 烽燧臺가 設置되어 있었다. 東쪽 봉우리에서는 平安道와 黃海道의 陸地 쪽에서 傳해오는 烽火불 信號를 京畿 高陽市 德陽區 강매동 봉대산(烽臺山)에서 받아 木覓山 第3烽燧臺로, 西쪽 봉우리에서는 平安道와 黃海道의 바다 쪽 奉化 信號를 高陽市 일산구 일산동 고봉산(高烽山)烽燧臺에서 받아 木覓山 第4烽燧臺로 傳해주게 돼 있었다.

그러니 中國 쪽에서 外敵이 侵入하는지 與否는 全的으로 이 안현烽燧臺의 불꽃 數에 依支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重要한 안현의 烽火불이기에 謙齋는 英祖 16年(1740) 初가을에 江 건너 陽川(現在 陽川區)의 縣令으로 赴任해 가서는 城山 아래인 現在 가양동 6 一帶의 현아(懸衙)에 앉아 틈만 나면 이 길마재의 저녁 烽火불을 건너다보고 나라의 安危를 確認했던 것 같다. 그쪽 方向은 바로 自身의 故鄕집이 있는 漢陽이기도 했다.

한 가닥 촛불처럼 피어오르는 烽火불은 오늘도 西北地域이 無事하다는 信號인데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길마재 너머로 仁王山과 北岳山이 初저녁 어둠을 안고 더욱 뚜렷이 다가온다. 하늘이 멀어지고 먼 山이 가까워지는 初가을 어느 맑은 날 해거름에 蕭瑟한 가을바람이 水面을 타고 소리없이 들어와 문득 謙齋의 그리움을 刺戟했던 模樣이다.

仁王山 아래에는 食率들이 기다리는 故鄕집이 있고 北岳山 아래에는 平生 뜻을 같이하는 그리운 親舊 泗川 이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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