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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言論學 뿌리는 金東聖-김현준”|東亞日報

“韓國 言論學 뿌리는 金東聖-김현준”

  • 東亞日報
  • 入力 2019年 11月 4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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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出版원, 2名 照明 冊 出刊
金東聖, 美留學後 本報 創刊 參與… 1921年 萬國記者回 ‘코리아’ 代表도
김현준, 國內 最初 新聞學 博士學位

“나는 … 萬國記者大會에서 朝鮮民族度 他民族에 飛下野 別로히 遜色이 무(無)하다는 實地의 證明을 票(表)하게 된 것을 感謝한다.”

동아일보 創刊멤버 가운데 한 名인 金東聖 記者(1890∼1969)가 1921年 美國 하와이에서 열린 第2次 萬國記者大會에 ‘코리아 代表’로 參席하고 이듬해 2月 連載한 記事의 첫머리다. 나라 없는 民族의 記者 代表로 參席한 셈이다. 金 記者는 “各國 代表席 가운데 ‘코리아’라는 이름의 座席이 있는 것을 보고 感激했던 心情은 只今도 생생하다”고 나중에 述懷했다.

金 記者와 같은 韓國 言論學의 先驅者를 照明한 ‘韓國 言論學 先驅者: 金東成과 김현준’(차배근 박정규 김영희 박선희 지음, 서울大出版文化院·寫眞)이 發刊됐다.

金 記者는 1909年 美國에 留學해 新文學과 新聞漫畫, 農學 等을 工夫하고 歸國한 뒤 調査擔當 記者로 本報 創刊에 參與했고, 첫 워싱턴 特派員으로 活動했다. 新聞에 漫畫를 導入했고, 英文 推理小說을 飜譯 連載해 人氣를 모으기도 했다. 特히 1924年 그가 펴낸 ‘新文學(新聞學)’은 美國의 實踐的 저널리즘의 基礎를 韓國 事例와 함께 說明한 冊으로 우리나라 最初의 新文學 關聯 專門圖書로 評價된다. 光復 뒤에는 合同通信社를 設立하고 初代 社長을 지냈다.

또 다른 言論學의 先驅者로 꼽히는 김현준(1898∼1949)은 韓國人 最初의 新聞學 博士다. 獨逸 라이프치히大에서 博士 學位를 받고 1928年 歸國해 보성전문학교에서 敎鞭을 잡았다. 博士 論文인 ‘東아시아에서 近代 新聞의 樣態’는 韓中日 新聞의 모습을 槪括한 것이다. 이 論文에서 그는 동아일보의 例를 들며 “韓國人에 依해 發行되고 日本의 影響을 받지 않는 新聞은 (1面을) 國內外 政治內容의 主 社說로 始作한다”고 썼다.

잘못 알려진 김현준의 生涯도 바로잡았다. 冊에 따르면 김현준은 全南 羅州 胎生이며, 文學博士가 아닌 新文學 專攻醫 哲學博士였고, 1949年 光州 서석동 自宅에서 膽石症으로 死亡했다. 著者들은 “金東成과 김현준이 뿌린 新文學의 씨앗은 光復 以後 韓國 言論을 飛躍的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고 發刊 趣旨를 밝혔다.

조종엽 記者 jjj@donga.com
#韓國 言論學 #서울대出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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