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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Face to Face] ‘國防部 狙擊手’ 金鍾大 “天安艦 事件? 進步도 틀렸다”|동아일보

[Magazine D/Face to Face] ‘國防部 狙擊手’ 金鍾大 “天安艦 事件? 進步도 틀렸다”

  • 東亞日報
  • 入力 2016年 4月 27日 13時 10分


코멘트

● 高卒者 配慮하는 入營豫約制 實施해야
● 韓國軍의 無能力 德分에 韓半島 平和 維持
● 武器 導入을 위해 安保를 强調하는 나라
● 사드, 核武裝은 典型的 安保 포퓰리즘
● ‘統一大舶’ 터뜨리려면 戰作權부터 가져와라
● 兵役 免除者, 安保 職責 못 맡게 해야

“軍에서는 金 當選者에 對해 ‘軍을 잘 아는 만큼 軍 政策 및 內部 問題 分析에 正確할 것’이라는 評價와 ‘軍 現實과 동떨어진 人氣迎合主義的 主張으로 國防 政策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評價가 克明하게 엇갈리고 있다.”(동아일보, ‘進步 軍事評論家’ 正義黨 金鍾大에 緊張하는 軍)

“軍 實相을 잘 아는 만큼 軍 內部 問題를 解決할 수 있을 것이라는 期待와 人氣迎合的인 進步的 主張으로 安保 政策에 발목잡기를 일삼을 수 있다는 憂慮가 그것이다.”(문화일보, ‘注目! 20代 初選’ 進步 軍事專門家 金鍾大… ‘國防部 狙擊手’ 自任)

“防産非理 剔抉을 위해 辯護士를 補佐官으로 採用하자 國防部도 緊張하고 있다고 한다.”(중앙일보, ‘防産非理 때려잡겠다’는 比例代表, 國防部 緊張)

김종대 당선자는 “병역 면제자는 안보 관련 직책을 못 맡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지호영 기자.
金鍾大 當選者는 “兵役 免除者는 安保 關聯 職責을 못 맡게 해야 한다”고 强調했다. 寫眞/ 지호영 記者.

4月 總選 以後 많은 媒體가 金鍾大(51·正義黨) 國會議員 當選者에 對한 關心을 나타낸 데는 그럴 만한 理由가 있다. 첫째, 稀少性이다. 그는 進步 政黨에서 드문 安保專門家다. 둘째, 專門性이다. 그는 軍에서도 인정받는 大衆的 安保專門家다. 지난 몇 年間 安保 懸案이 發生할 때마다 放送에 出演하고, 日刊紙와 雜誌에 많은 글을 써왔다. 셋째, 相對的 存在感 浮刻이다. 20代 國會는 軍 出身 安保專門家가 확 줄었다. 保守 政黨에서조차 손꼽을 程度다. 그의 存在感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環境이 造成된 것이다.

“狙擊手가 아니라 同伴者”


서울 汝矣島 正義黨 黨舍에서 만난 그는 國會議員 배지를 다는 게 아직 實感나지 않는 듯 “쑥스럽다”는 말을 몇 番이나 되뇌었다. 洗練味와는 距離가 먼 ‘시골스러운’ 印相과 수수한 옷차림은 變함이 없다. 洋服 上衣에 붙인 노란色 歲月號 배지가 눈길을 끈다. 그는 ‘安保 自販機’처럼 어떠한 質問에도 막힘없이 答辯을 쏟아냈다. 向後 國防·安保 政策에 큰 影響을 끼칠 수 있는 人物이라는 點을 考慮해 많은 質問으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郡에서 왜 緊張을 하나.


“國防部에 내 專擔者가 5名이라고 들었다. 아예 팀을 만들어 내 言行을 分析하는 等 萬般의 準備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 軍의 구석구석 안 들여다본 곳이 없다. 人事 問題도 觀察했다. 軍의 가장 銳敏한 구석을 밖에서 들여다봐 왔으니 緊張하는 것 같다. 不便한 感情도 있겠고.”

-‘國防部 狙擊手’라고 하는데.

“極端的이고 適切치 않은 表現이다. 우리 國防이 正常化하는 데 批判·牽制 勢力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을 따름이지 그들의 正體性과 自尊心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다. 市民을 代表해 君을 보겠다. 그런 點에서 狙擊手가 아니라 同伴者다.”

-‘安保 政策 발목잡기가 憂慮된다’거나 ‘人氣迎合的 主張을 편다’는 視角이 있다.

“現在 60萬인 軍 兵力을 40萬으로 줄이겠다는 正義黨 公約을 憂慮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人口 趨勢를 보면 減縮할 수밖에 없다. 人口絶壁 時期인 2022年이 되면 徵集 人口가 2016年보다 30퍼센트 줄어든다. 2016年 基準 21歲 男子가 36萬 名인데, 2022年엔 11萬 名이 減少한다. 뭐가 人氣迎合이냐. 只今부터 줄이지 않으면 다음 政權 때 郡의 下部構造가 崩壞하는 災難을 맞을 것이다. 事實 이런 건 保守政黨에서 準備해야 한다.”

새누리黨은 2012年 大選 當時 軍 服務 期間 短縮을 내세웠다가 슬그머니 撤回한 적이 있다. 正義黨의 接近方式은 좀 다르다. 金 當選者의 說明을 들어보자.

“高卒 靑年이 軍에 가려면 年齡 未達로 24個月 기다려야 한다. 2年 뒤 軍에 가서 21個月 勤務하고 나오면 45個月이 지나는데, 高卒이라 就職이 안 된다. 就職하는 데 平均 31個月 걸린다. 合하면 76個月이다. 社會 進出 競爭에서 6年 4個月이 뒤쳐지는 셈이다. 21個月을 18個月로 줄이는 것보다 76個月을 折半으로 줄이는 것이 重要하다. 高卒者는 願할 境遇 바로 軍에 들어가게 해 學歷 差別에 따른 被害를 最少化해야 한다. 20代 前半期를 虛費하면 자칫 平生 敗北者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靑年 問題, 일자리 問題, 兵役 問題가 따로 논다. 그래서 우리는 服務 期間 短縮은 主張하지 않는다. 代身 高卒의 社會 進出 待機 期間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關聯해 正義黨은 入營豫約制를 主張한다. 高校 1學年 때부터 相談을 하고 入營 案內를 받아 卒業하는 대로 願하는 部隊에 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自己主導型 入營이다.

“安保民主化는 經濟民主化의 先決課題”

國防文民化도 主要 公約이다. 이는 金 當選者의 오랜 所信이기도 하다. 그는 ‘安保民主化’라는 表現을 썼다.

“只今까지 安保는 保守 政權의 專有物이었다. 社會 共同의 價値이고 市民共同體의 價値임에도 特定 政派의 價値로 歪曲돼 왔다. 이것을 市民의 價値로 돌려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安保民主化다. 經濟民主化의 先決課題이기도 하다. 經濟民主化는 時間이 오래 걸린다. 企業構造도 바꿔야 하고 兩極化도 解消해야 한다. 이에 비해 安保民主化는 制度만 바꾸면 된다. 社會的 合意만 이뤄지면 된다. 오늘부터 民間이 國防을 統制하는 制度로 바꾸겠다고 宣布하면 된다.”

-長官을 비롯한 國防部의 主要 補職을 民間이 맡는 것이 關鍵이지 않나.

“國防部는 元來 國民을 代理해 君을 統制하는 集團이다. 그런데 우리 國防部를 보면 君을 代理해 國民을 統制하는 組織이다. 元來 軍의 代表는 軍 序列 1位인 合同參謀本部 議長이다. 軍의 意見을 代表하라고 만든 자리다. 그런데 只今 合參의 存在感은 거의 없고 國防部가 君을 代辯한다. 現役 軍人들이 主要 補職을 차지해 政策을 樹立한다. 長官도 軍 出身이 맡는다. 國防部가 合參의 上級部隊인 셈이다. 國防部 會議 때 次官은 序列 9位다. 長官 밑에 4星 將軍 8名이 있고 그 다음이 借款이다. 이건 軍部隊 編制나 다름없다.”

國防文民化에 가장 크게 逆行하는 人事가 이뤄진 것은 노무현 政府 때였다. 2006年 11月 盧 大統領은 金章洙 陸軍 參謀總長을 國防部 長官에 임명했다. 現役 大將인 參謀總長이 國防部 長官으로 直行한 것은 前例 없는 일이라 軍 안팎에서 論難이 일었다. 金 當選者가 노무현 政府 初期 靑瓦臺 國防補佐官室 行政官을 지냈기에, 그 일에 對해 따져봤다. 그는 “잘못된 人事였다”고 認定했다.

“2006年 10月 北韓이 核實驗을 한 以後 安保 危機論이 氣勝을 부렸다. 盧 大統領이 거기에 壓迫을 느껴 異常한 人事를 했다. 그것도 現役 隊長들 間 競爭을 붙여. 靑瓦臺 人事首席室 行政官이 函參議長과 육참總長을 만나 ‘長官이 되면 어떻게 할지’를 물어봤다. 一種의 面接試驗을 본 것이다. 그래서 候補者들 間 葛藤이 빚어지기도 했다. 軍人들을 그렇게 줄 세우면 안 된다. 노무현 政府의 큰 失策이었다.”

-南北 分斷 狀況에서 國防文民化, 卽 軍에 對한 文民 統制를 不安해하는 視角도 많다.

“그건 漠然한 不安感이다. 第2次 世界大戰 때 日本이 敗亡한 理由에서 敎訓을 얻어야 한다. 當時 日本軍은 天王의 名을 받는 大本營이 統制했다. 그런데 滿洲事變 當時 專攻에 눈이 먼 軍 指揮官들이 大本營을 무력화하며 中國軍과 全面戰을 벌였다. 이것이 日本 敗亡의 첫걸음이었다. 以後 統制에서 벗어난 日本軍은 太平洋으로 戰線을 擴大하면서 破滅의 길로 접어들었다. 軍人들은 흔히 安保論理를 軍事論理로 여기는데, 이는 政略과 戰略을 區分하지 못해서다. 國家의 政略은 軍事的 戰略을 超越한다. 軍人들의 職業的 偏見이기도 하다. 이런 偏見을 制御하기 위해서라도 專門 官僚集團의 統制가 必要하다.”

“安保 分野 正常化가 必要하다”고 强調한 그는 오병흥 前 陸軍 准將의 證言을 끄집어냈다. 天安艦 事件 當時 合參 戰備態勢檢閱室 次長이던 吳 前 准將은 最近 ‘나비와 天安艦’이라는 冊을 펴내 話題가 됐다. 要旨는 天安艦 事件 後 監察 次元에서 作成한 調査報告書가 上部 壓力으로 造作됐다는 것.

“合參議長은 調査報告書에서 ‘데프콘 1 發令時 自動措置 事項인 危機措置班을 召集하지 않았다’라는 대목을 ‘危機措置班을 遲延 召集하였다’로 修正했다.”(조선일보, ‘天安艦 事件 調査한 將軍 입 열다… 오병흥 前 合參 戰備態勢檢閱次長’, 2016年 4月 11日)

吳 前 准將은 또 “天安艦 事件(2010年 3月)은 大靑海戰(2009年 11月)에 對한 報復이었으며, 北韓의 潛水艦 攻擊을 豫想하고도 軍 指揮部가 全혀 對備하지 않았다”라고 主張했다. 그에 따르면 大靑海戰은 過剩對應에 依한 ‘억지 勝戰’이며, ‘比例性‘이라는 交戰規則을 深刻하게 違反한 戰鬪였다.

“天安艦 事件, 結果만 있고 過程이 없다”


金 當選者는 “五 前 准將의 證言은 내가 ‘西海戰爭’에서 폈던 主張과 脈絡이 닿는다”고 말했다. 그가 2013年 펴낸 ‘西海戰爭’은 김대중 政府 以後 南北韓 軍이 交戰을 벌인 第1延坪海戰, 第2延坪海戰, 天安艦 事件, 延坪島 砲擊事件 等의 眞實을 追跡한 冊이다. 그는 “軍 指揮官들의 專門性은 必要하지만 統制 받아야 한다. 이게 安保民主化의 核心이다”라고 强調했다.

-金 當選者가 天安艦 事件에 對해 다른 視角을 가진 것 아니냐고 疑心하는 사람들이 있다.


“天安艦 事件은 事實의 問題가 아니라 믿음의 問題가 돼버렸다. 北韓이 벌인 짓이라는 걸 믿느냐, 안 믿느냐. 政府 發表를 믿느냐, 안 믿느냐. 나는 閔君合同調査團 發表를 信賴한다고 數도 없이 얘기했다. 그런데 그들은 또 묻는다. 100퍼센트 믿느냐고. 이건 對答하지 않으면 攻擊하겠다는 意圖다. 天安艦 事件이 난 지 6年이 지났다. 그 事件에 北韓의 새로운 戰術과 새로운 武器體系가 動員됐다면 마땅히 硏究하고 分析해야 한다. 그런데 只今까지 이와 關聯된 論文이 發表된 적도 없고 세미나 한 番 열리지 않았다. 160t짜리 潛水艇이 7m짜리 重魚雷로 攻擊했다는 건데, 그 작은 潛水艇에 어떻게 그토록 무겁고 規模가 큰 魚雷가 搭載될 수 있었는지, 武器 體系 作動原理는 뭔지 硏究해야 하지 않나.”

-推定이라는 건가? 科學的 證據가 아니라.


“事件 後 論議가 딱 封鎖되지 않았나. 結果만 있지 過程은 없는 事件이 돼 버렸다. 그런 點에서 天安艦 事件은 再糾明해야 한다. 過程에 對한 科學的 討論이 이뤄져야 한다. 進步도 問題가 있다. 科學的 論爭이라면 魚雷波와 機雷派가 한 篇이 돼야 한다. 水中 爆發이 있었는지가 가장 큰 爭點이기 때문이다. 坐礁파는 視覺이 完全히 다르다. 그런데 實際로는 坐礁波와 機雷派가 한 篇이고, 魚雷派가 反對便에 있다.”

-政府에 對한 無條件的 不信도 한몫했다.

“科學이 아니라 北韓을 判斷 基準으로 삼으니 機雷波와 坐礁派가 한 篇이 된 거다. 北韓이 했느냐, 안 했느냐. 이런 非科學的 論爭이 어디 있냐. 科學과 상관없는 陣營論理다.”

-事件 初期 靑瓦臺는 北韓 所行이라는 國防部 報告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 對해선 많은 證言이 있다. 魚雷 얘기를 源泉封鎖하려 했다. 甚至於 波濤說까지 나오지 않았나. 安保라인 祕書官은 魚雷說을 報道한 조선일보에 抗議했고, 李明博 大統領은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波濤에도 그렇게 두 동강 나 똑 부러질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延坪島 砲擊事件이 일어나자 그 責任을 軍에 뒤집어 씌웠다. 軍의 反對로 戰鬪機로 못 때린 게 千秋의 恨이라며. 軍 關係者들 證言으로 MB가 거짓말했다는 게 確認됐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지 않나.

“當時 合參議長이던 韓民求 現 國防部 長官이 國會에서 證言했다. 그때 大統領으로부터 戰鬪機의 ‘前’자도 들은 바 없다고.”

-MB는 自敍傳에도 썼다. 自己는 卽刻 膺懲을 指示했는데, 君이 말을 안 들었다고.


“韓 長官은 當時 나와 만나 ‘都大體 大統領이 말하는 軍은 어떤 軍이냐. 合參議長이 모르는 君이 따로 있냐’고까지 했다. 어쩌면 大統領이 祕書官과 相議했는데, 祕書官이 反對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두고 軍이 卑怯하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이처럼 保守 政治權力의 特徵은 安保가 失敗하면 軍에 責任을 떠넘기고 自己들은 빠져나가려 한다. 그리고 威信을 세우려 한다. 왜? 여태 安保를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勿論 安保에 無關心한 進步도 問題지만.”

MB의 거짓말과 軍의 責任 回避


자신은 국방부 저격수가 아니라 동반자라고 말하는 김종대 국회의원 당선자. 사진/ 지호영 기자.
自身은 國防部 狙擊手가 아니라 同伴者라고 말하는 金鍾大 國會議員 當選者. 寫眞/ 지호영 記者.
그는 “保守든 進步든 軍隊 안 갔다 온 者들이 安保에 가장 無能하다”고 했다.

-이명박 政府 때 유난히 安保라인에 그런 사람이 많이 布陣하지 않았나.

“그러니 그들이 하는 얘기가 從北主義者보다 더 危險할 수밖에.”

-軍도 責任 回避 次元에서 둘러댄 건 아닐까. 延坪島 砲擊事件 때도 聯合司令部에 묻기나 하고….

“유엔司令部 交戰規則을 말하는 건데, 平時作戰統制權을 우리가 가져온 지 오래다. 그러면 거기에 맞게 作戰 體系가 修正돼야 하는데, 只今도 예전 規定을 指針으로 삼는다. 如前히 聯合司가 우리 代身 決定하고 싸울 問題라고 믿는 것이다.”

-延坪島 砲擊事件은 展示가 아니라 平時니 坪作權을 가진 우리 軍이 對應攻擊을 決定했어야 하지 않나.

“當時 우리가 戰鬪機를 띄울 수 있느냐 없느냐로 合參 將軍들이 두 牌로 갈려 論爭했다. 한쪽은 自衛權 次元에 反擊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유엔司 交戰規則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一週日間 論爭하다 結局 國際法 學者한테 硏究 用役을 줬다. 以後 韓美 間 3年에 걸쳐 協議해 만들어진 게 韓美局地挑發共同計劃이다. 거기에 따르면 國支道發이 發生하면 韓國軍이 主導하고 美軍은 支援한다.”

-領土와 民間人이 공격당한 狀況에서 우리 軍의 對應態度는 失望스러웠다.


“失望스러웠다. 거짓말도 쏟아내고. 海兵隊가 應射해 北韓軍이 相當한 打擊을 입었다는 얘기부터 거짓말이었다. 氣象觀測 裝備가 不實한 탓이었다. F-15 戰鬪機 세 臺가 出動했다. 操縱士가 言論 인터뷰에서 ‘命令만 내리면 卽刻 北韓軍 包袋를 攻擊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空對地미사일을 달지 않은 非武裝 狀態였다는 事實이 나중에 드러났다.”

이와 關聯, 오병흥 전 准將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날 北韓 쪽 打擊 支店 映像을 直接 봤다. 全혀 打擊을 주지 못했다. 抛(砲) 性能은 우리가 월등했지만, 當時 氣象 測定 裝備가 故障 나 있었다. 射擊 正確度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시 金 當選者의 指摘이다.

“天安艦 事件도 마찬가지다. 音波 探知機(소나)가 古物이라서 北韓 潛水艇이나 魚雷를 못 잡았다고 解明했다. 그걸로 境界 失敗라는 責任을 免했다. 그런데 엉터리 裝備를 單 責任은 안 지나. 危險한 接敵水域에서 作戰하는 陷穽의 音波 探知機가 있으나마나 하다니. 恥部를 드러냄으로써 作戰 失敗의 責任을 謀免했다. 欺瞞이다. 天安艦 事件을 통해 우리가 배운 건 軍 指揮部가 隸下 部隊의 戰鬪 準備 態勢를 全혀 모른다는 것, 어떤 裝備가 어떻게 作動하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點이다.”

故障, 不良, 엉터리 對應


정의당은 고졸자를 배려하는 입영예약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사진/ 지호영 기자.
正義黨은 高卒者를 配慮하는 入營豫約制를 公約으로 내놓았다. 寫眞/ 지호영 記者.

-우리 軍은 數十 年間 天文學的 國防費를 쓰며 많은 武器를 導入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無能力하고 無氣力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歷史의 아이러니다. 나는 韓半島 平和를 지키는 데 決定的 구실을 한 것이 韓國軍의 無能力이라고 생각한다. 仁川아시안게임이 끝난 直後인 2014年 10月 7日 北韓 警備艇이 西海北方限界線(NLL)을 넘어왔다. 우리 高速艇이 警告射擊을 하자 北韓軍이 應射했다. 深刻한 事態라 判斷한 軍 指揮部에서 擊破射擊을 指示했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끝났다. 우리 誘導彈高速艦에서 脯를 쐈는데, 砲彈이 날아가지 않았다. 포가 不良品이었던 거다. 그 사이 北韓 배가 빠져나갔다. 사흘 뒤엔 京畿道 漣川郡 漣川面事務所에 北韓軍이 쏜 高射銃 彈丸 中 一部가 떨어졌다. 對北傳單이 담긴 大型 風船을 겨냥한 射擊이었다. 처음엔 몰랐다가 세 時間이 지난 뒤 面事務所 앞에서 彈皮를 發見하고는 뒤늦게 對應한다고 北韓軍 GP(Guard Post·監視哨所) 쪽으로 警告射擊을 했다. 攻擊을 제때 探知하지 못한 것은 스웨덴에서 導入한 臺(對)砲兵 레이더 아서가 제대로 作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뻔한 이런 事件들이 조용히 끝난 것은 韓國軍의 無能力 德分이었다.”

그는 “安保를 위해 武器를 導入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武器 導入을 위해 安保를 强調한다”고 慨歎했다.

지난 1月 北韓의 4次 核實驗 以後 高高度미사일防禦體系(사드) 配置와 核武裝을 主張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對해 그는 “典型的 安保 포퓰리즘”이라고 批判했다.

“사드는 選擧用으로 提起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드 配置 候補地로 擧論된 데가 全部 새누리黨 議員들의 地域區다. 總選 때 사드 얘기가 사라진 理由다. 正말로 사드가 必要하고 配置할 意向이 있다면, 武器體系의 效用性과 費用을 따져 조용히 準備하면 된다. 核武裝도 마찬가지다. 實現 不可能하다. 이걸 뻔히 알면서도 왜 主張할까. 北韓으로부터 脅迫당하는 걸 참지 못하고 그에 못지않은 恐怖를 北韓에 안기지 않으면 自尊感이 무너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恐怖의 맞去來가 이뤄져야만 마음에 慰勞를 받는 거다. 一旦 던지고 보는 건데, 뒤에 책임질 사람이 없다. 典型的 安保 포퓰리즘이다.”

-北韓의 威脅은 現實的이고, 國民은 不安하다. 北韓이 核彈頭 輕量化에 成功하고 潛水艦發射彈道미사일(SLBM)을 갖추면 어떻게 對應해야 하나.


“軍事的으로는 세 가지 對應策이 있다. 첫째, 抑制다. 美國의 核雨傘에 依存하는 方法이다. 둘째는 防禦. 사드나 패트리어트 같은 미사일 防禦網으로 막는 것이다. 셋째는 除去다. 킬체인(Kill Chain)을 통한 先制攻擊으로 核武器를 쏘기 前에 制壓하는 方法이다. 다 不完全하고 欠缺이 있다. 그래서 셋 다 갖춰야 한다는 論理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軍事的 方策은 美國과 蘇聯 같은 强大國 間 對決에나 어울리지, 韓半島에서는 안 맞는다. 너무나 좁고 隣接해 核을 쏘면 事實上 防禦가 不可能하다. 核武器가 아니더라도 이미 防禦 效果의 臨界値를 넘은 지 오래다. 가장 效果的인 方法은 豫防外交다. 6者 會談이 進行될 때 北韓은 威脅的이지 않았다. 軍事的 對應만으로는 限界가 있다.”

-김대중 政府의 햇볕政策을 繼承한 노무현 政府 때 北韓은 1次 核實驗을 했다.


“2006年 1次 核實驗은 美國 부시 政府가 北韓의 海外 돈줄을 壓迫하는 狀況에서 벌어졌다. 美國이 態度를 바꾸면 核 問題가 좋은 方向으로 풀렸다. 이듬해 美國이 北韓에 對話를 提案했다. 그해 10月 베이징에서 6者 會談이 再開된 날 平壤에서 南北頂上會談이 同時에 열린 데는 그런 背景이 있다. 나는 北韓의 責任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6者 會談이 아무런 效果가 없다고 批判하는 건 偏向된 認識이라고 말하는 거다. 外交를 抛棄하면 軍事的 對應밖에 없다. 그런데 뭘 할 수 있나. 우리가 美國을 비롯한 周邊 强大國 反對를 무릅쓰고 核武裝을 할 수 있나. 展示作戰統制權도 갖지 못한 나라가, 延坪島에 砲만 쏴도 어쩔 줄 몰라 美軍에 ‘쏠까요 말까요’를 물어보는 나라가 무슨 수로 核을 막아내나. 美國으로부터 戰作權은 還收하지 않겠다면서 軍事的 對應만 떠드는 것은 矛盾이다.”

“宗敎가 돼 버린 韓美同盟”

戰作權 還收는 노태우 政府가 始動을 걸었다. 金永三 政府로 그 基調가 이어져 1994年 먼저 平作權이 回收됐다. 노무현 政府는 保守層의 反撥을 意識해 還收 代身 轉換이라는 表現을 썼다. 2012年 4月 戰作權을 轉換하기로 美國 政府와 合意했다. 李明博 政府는 이를 2015年 12月로 延期했다. 朴槿惠 政府는 ‘2020年代 初盤’으로 再延期했다. ‘北韓 核·미사일 威脅에 對한 韓國軍의 獨自的 對應能力을 確保할 때까지 延期한다’라는 但書가 붙어 事實上 武器延期라는 解釋이 따랐다.

-戰作權 還收 反對 論理에 全혀 同意하지 않나.

“美軍을 引繼鐵線으로 보는 건데, 精神 차려야 한다. 只今 트럼프(共和黨 大統領 豫備候補)가 하는 말이 美國 主流 集團의 一般的 情緖다. 北韓 威脅은 韓國이 알아서 處理하라는 것 아닌가. 이미 韓半島에서 美軍의 核心 戰力은 많이 빠져나간 狀態다. 美國人의 思考가 變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착한 美國이 언제까지나 韓國을 도와줄 것이라는 幻想을 품고 있다. 勿論 美國은 韓國을 돕는다. 하지만 中國을 겨냥한 東아시아 戰略의 一環이지 北韓을 直接 相對하겠다는 건 아니다. 우리의 期待와 美國의 戰略 사이엔 큰 間隙이 있다. 우리 軍이 死活을 걸고 苦悶해야 할 問題임에도 慣性的으로 이데올로기的으로 韓美同盟에만 기댄다.”

그는 韓美 軍事的 同盟을 ‘宗敎’라고 表現했다.

“이건 一種의 宗敎다. 美國이 日本, 이스라엘, 나토와 맺은 同盟 條約은 宏壯히 촘촘하고 具體的이다. 그런데 韓美相互防衛條約엔 아무것도 없다. 有事時 自動介入 條項도 없다. 따라서 아무런 法的 拘束力이 없다. 오로지 믿음으로 維持되는 稀罕한 同盟이다. 聯合司 作戰參謀部長 맥도널드 將軍이 延坪島 砲擊 事件 때 韓國軍을 두고 한 얘기가 있다. 自己가 이라크 參戰勇士인데 이라크의 新生 軍隊도 이렇진 않다고.”

-그런 얘기를 어디서 했나.


“聯合司 幹部會議에서 했다. 延坪島 砲擊事件 때 韓國軍이 隨時로 물어왔다는 것 아닌가. 쏴도 되냐, 안 되냐. 重要한 건 武器體系度 아니고 國防費 規模도 아니고 人間의 意志다.”

-北韓은 世界에서 가장 好戰的이고 豫測 不可能한 集團이라 하지 않나.


“모든 軍人은 自身이 치른 戰爭이 가장 특별한 戰爭이었다고 말한다. 勿論 北韓이 특별한 건 맞다. 하지만 戰爭이 일어나는 데는 一般的 原則이 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세 가지 理由가 있다. 첫째는 原初的 敵對感, 둘째는 賭博을 敢行하려는 意志, 셋째는 戰爭으로 期待되는 利益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中 한 가지만 빠져도 戰爭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北韓도 例外가 아니다. 거기도 儼然한 國家다. 政治權力과 體制의 生存을 圖謀한다는 點에서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다.”

朴正熙와 盧武鉉의 닮은 點


-著書 ‘盧武鉉, 時代의 門턱을 넘다’에서 노무현과 朴正熙가 自主國防을 推進한 點에서 닮았다고 主張했다. 노태우도 같은 範疇에 넣었고.


“노태우는 北方 政策으로 敵對關係인 大陸의 門을 열었다. 南北基本合意書를 締結해 韓半島 平和의 기틀을 마련했다. 未完에 그치긴 했지만 革新的인 國防改革을 推進했다. 保守의 合理性은 進步가 배워야 한다. 그 點에서 노무현은 積極的이었다. 靑瓦臺에 保守 人士를 많이 끌어들였다. 盧武鉉이 이라크 派兵을 決定한 것은 높게 評價해줘야 한다. 勿論 朴正熙와 노무현은 다르다. 하지만 노무현은 朴正熙의 ‘自主國防’ 努力을 認定했다.”

-北韓 急變事態와 關聯해 “21世紀版 얄타 體制가 憂慮된다”라고 言及한 바 있다. 美國과 中國의 北韓 分轄 統治 可能性을 言及한 것인데, 非現實的인 얘기가 아니냐는 指摘이 있다.


“聯合司 作戰計劃 5029에 따르면 北韓 急變事態 發生 時 美國과 中國이 協力해 北韓을 統治하게 돼 있다. 北核 處理 名分으로.”

-統治까지는 아니지 않나.


“아니, 安定化 作戰을 해야 하니까. 北韓이 國際法上 主權國家이므로 韓國軍은 任意로 들어갈 수 없다. 强大國 諒解가 있어야 可能하다.”

-그 問題에 對해선 어떻게 對應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올바른 統一觀을 세워야 한다. 統一의 主體가 大韓民國이라는 點을 分明히 해야 한다. 그 點에서 軍事的 措置보다 外交가 더 重要하다. 2005年 6者會談 結實인 9·19 共同聲明에 ‘平和體制를 위해 努力한다’는 條項이 담긴 것은 韓國의 努力 德分이었다. 그런 外交的 플랫폼이 只今은 다 사라졌다. 周邊國들을 相對로 한 統一外交를 復元해야 한다. 美國과 蘇聯을 잘 活用한 西獨의 統一 모델에서 배워야 한다.”

-몇 年 前 陸軍 最高位 指揮官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北韓 急變事態 發生 時 韓國軍이 北進하기 위해서라도 戰作權을 가져와야 한다고.


“戰作權이 統一에 對備하기 위해 必要하다는 건 盧武鉉의 생각이기도 했다. 꼭 急變事態 때문만은 아니다. 戰作權을 가져온다는 건 韓半島 安保의 主體가 韓國이라는 걸 宣言하는 거다. ‘統一 大박’을 터뜨리려면 戰作權부터 가져와야 한다.”

국회에 들어가면,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피해를 입은 제주 강정마을 주민을 위해 해군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김종대 당선자. 사진/ 지호영 기자.
國會에 들어가면, 海軍基地 建設 過程에 被害를 입은 濟州 강정마을 住民을 위해 海軍에 求償權을 請求하겠다고 밝힌 金鍾大 當選者. 寫眞/ 지호영 記者.

話題를 防衛事業非理로 돌렸다. 2014年 11月 朴槿惠 大統領이 防産非理를 “利敵行爲”로 規定한 直後 政府合同搜査團이 發足했다. 檢察이 主導한 搜査團은 2015年 7月 現役 및 豫備役 將星級 10名을 包含해 모두 63名을 起訴했다. 밝혀낸 非理 規模는 9800億 원臺. 評價書類 造作, 賂物 收受 等 主로 納品 非理였다. 慣行的인 病弊를 파헤쳤다는 面에서 功이 크지만, 不實과 非理를 區分하지 못한 半쪽짜리 搜査였다는 批判도 提起됐다. 實績 爲主의 無理한 搜査方式度 도마에 올랐다.

金 當選者는 “防産非理는 李明博 政府 때 集中的으로 發生했다”며 “安保 危機가 돈벌이에 惡用됐다”라고 批判했다.

“費用 代 效果를 分析해 體系的으로 事業을 할 때는 非理가 없었다. 그런데 李明博 政府 때 安保 危機를 겪으며 事業이 마구 變更된다. 緊急所要 電力이 提起되고 國內 硏究開發이 海外 購買로 바뀐다. 時間이 오래 걸리고 費用이 많이 드는 國內 開發을 抛棄하고 손쉽게 求할 수 있는 海外 武器를 들여온다. 空軍 電子戰 訓鍊裝備, 海軍 海上作戰헬기, 陸軍 攻擊型 헬기가 다 그런 境遇다. 軍 안팎 한탕主義 勢力은 安保危機를 絶好의 機會로 삼았다.

또 다른 理由는 國防豫算의 無分別한 削減이다. 李明博 政府는 相當數 武器導入 事業의 豫算을 30% 以上씩 깎았다. 旣存 事業計劃이 망가지고 所要軍에서는 깎인 豫算에 맞춰 값싼 裝備를 導入해야 했다. 統營艦 非理도 그래서 發生한 것이다. 音波 探知機 事業 豫算이 元來 120億 원짜리인데, 40億 원으로 削減됐다. 그런 狀況에서 한 業體가 性能이 떨어지는 裝備를 싼 價格에 納品한 것이 問題가 된 것이다 . 이런 일이 發生한 것은 所要軍으로선 事業 自體가 取消되는 것보다는 엉터리 裝備라도 들여오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몸통’ 못 건드린 防産非理 搜査


-國內 防産業體들은 죽는 소리를 한다. 長期的으로 武器 國産化를 이뤄야 할 텐데, 海外 武器, 特히 美國 武器 依存度가 너무 높지 않나.


“軍事專門家, 武器專門家로 自處하는 이른바 밀德(밀리터리 덕후)들은 海外 武器에 對한 宗敎的 信奉者다. 北韓의 威脅이 發生할 때마다 이들은 海外 武器의 優秀性을 强調한다. 言論도 加勢한다. 國內 防衛産業은 고사될 地境이다. 導入 豫算을 實費用의 60퍼센트로 策定하기 때문에 損害를 甘受하고 納品한다. 잘못된 所要에 費用까지 깎아버리니 最惡의 狀況인 셈이다. 스웨덴은 國防費가 韓國의 6分의 1인데, 武器 輸出量은 6倍 많다.”

-國內 防産業體의 問題點이라면?

“一部 大企業 系列社는 組織이 放漫해 무슨 公企業 같다. 企業家 精神도 缺如됐고. 原價 檢證이니 뭐니 해서 워낙 많은 規制에 시달리다 보니 애物단지로 轉落했다.”

-規制는 많고 남는 건 없다고 들었다.

“苛酷한 原價 檢證에 經營難 深化에 附加價値도 낮다. 손을 떼고 싶은데 못 떼는 狀況이다.”

-輸出로 活路를 찾으면 좋을 텐데.

“우리 國防部는 國內에 防産 일자리가 늘어나는 걸 싫어하고, 美國 勞動者 일자리를 늘리는 데 關心이 많다.”

-防産非理 合同搜査團의 成果를 評價한다면?

“搜査는 熱心히 했다. 그런데 拘束令狀이 여러 次例 棄却됐고, 裁判에서 無罪로 바뀐 사람이 꽤 있었다. 잘못된 政策을 決定한 非理의 몸통은 비켜가면서 上部 指針에 따랐던 實務者 爲主로 搜査를 한 탓이다. 李明博 政府 들어와 모든 武器 事業에 靑瓦臺가 關與하면서 非理 素地가 커졌다. 그런데 搜査 對象에서 當時 靑瓦臺 關係者들은 빠져나갔다. 政策 決定 段階부터 搜査를 했어야 한다. 武器 所要는 合參에서 決定하는데 當時 合參 關係者들이 調査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安保를 神主단지 모시듯 重視하는 우리나라에서 指導層 人士의 兵役 非理가 많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金 當選者는 兵役非理 根絶 方案에 對해 묻자 簡明하게 말했다. “兵役 免除者들은 無條件 安保 關聯 職責을 못 맡게 해야 한다”고.

“지난 政權에서 國精院長, 安保首席, 安保祕書官이 다 軍 免除者였다. 兵役 免除者는 靑瓦臺 祕書室長이나 國務總理 자리에도 앉으면 안 된다. 이걸 制度的으로 막아야 한다.”

그가 國防 問題에 關心을 갖게 된 契機는 1987年의 6月 抗爭이었다. 學生, 市民이 어우러진 大規模 民主化 示威가 벌어질 때 그는 陸軍 兵士였다. 大學 在學 中 入隊했기 때문이다. 每日같이 示威鎭壓 訓鍊을 하고, 出動 準備를 했다. 戒嚴이 宣布되는 줄 알았다. 그 程度로 雰圍氣가 殺伐했다. 그때부터 君을 銳意注視하게 됐다. 끝으로 그는 ‘人間의 얼굴을 한 軍隊’를 强調했다.

“韓國軍은 人間의 問題에 너무 疏忽하다. 一線 戰鬪員의 生命 價値를 低評價한다. 그러니 不良 防彈服에 不良 軍靴, 不良 헬멧을 들여오는 것이다. 가장 時急히 解決해야 할 問題다. 이른바 國防民生事業이다. 尖端武器 많이 사오는 軍隊보다 基本을 重視하는 軍隊가 必要하다.”

그는 總選 前 正義黨 黨員들이 參與한 比例代表 競選에서 가장 많은 票를 얻었다. 女性에게 優先權을 준다는 規定에 따라 2番이 됐다. 進步 陣營에서 大衆的 스타로 자리매김한 그가 國會에 들어가 保守의 領域인 安保 問題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性格上 쉽게 妥協下眞 않을 것이다. 그와 잘 알고 지내던 軍 高位職 人士들은 當分間 몸을 사릴지도 모르겠다 .

 
組成式 記者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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