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gazine D/Face to Face]‘賂物收受 1審 無罪’ 조현오 前 警察廳長 單獨인터뷰|東亞日報

[Magazine D/Face to Face]‘賂物收受 1審 無罪’ 조현오 前 警察廳長 單獨인터뷰

  • 東亞日報
  • 入力 2016年 2月 29日 15時 45分


코멘트

“檢察權力에 挑戰하면 누구라도 조현오처럼 當한다”
“民政에서 ‘警察廳長 組暴 關聯說’ 大統領에 보고”

● 裁判部 ‘檢察의 脅迫, 懷柔’ 可能性 言及
● “내가 組暴한테 投資해 月 2500萬 원씩 配當받는다고…”
● “권재진 前 民政首席에게 搜査權 問題로 脅迫받아”
● 權 前 首席 “全혀 事實 아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했다. 박해윤 기자.
1審에서 無罪를 宣告받은 조현오 前 警察廳長은 檢察의 無理한 搜査를 批判했다. 박해윤 記者.
1審에서 無罪를 宣告받아선지 그의 얼굴엔 餘裕가 넘쳤다. 느릿느릿하고 肉重한 말套는 如前했다. 조현오(61) 前 警察廳長과의 인터뷰는 3時間 가까이 進行됐다. 斟酌한 대로 그는 自身에 對한 檢察 搜査를 剛하게 批判했다. 아울러 在任 中 搜査權 調整 및 警察幹部 人事와 關聯해 靑瓦臺 民政首席室과 衝突했던 얘기도 털어놓았다.

2月 17日 釜山地方法院 刑事合議5部는 賂物收受 嫌疑로 起訴된 조 前 廳長에게 無罪를 宣告했다. 釜山 建設業體 S建設 實所有主 鄭某 氏로부터 人事 請託 代價로 두 次例에 걸쳐 5000萬 원을 받았다는 嫌疑였다. 公訴狀에 따르면 그는 서울警察廳長이던 2010年 8月 3000萬 원, 警察廳長으로 在職하던 2011年 7月 2000萬 원을 받았다. 하지만 法院은 檢察 搜査의 問題點을 條目條目 指摘하면서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事件의 軸은 2個다. 하나는 조 前 廳長 本人의 賂物收受 嫌疑이고, 다른 하나는 知人의 斡旋受財 嫌疑다. 後者는 그의 中學校 同窓生 2名이 그에게 人事 請託을 해준다며 各各 1200萬 원, 100萬 원을 받았다는 嫌疑다. 法院은 두 사람에게도 無罪를 宣告했다. 1라운드이긴 하지만, 檢察의 完敗로 끝난 셈이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廳長님, 사랑합니다, 尊敬합니다”


조 前 廳長이 鄭氏와 알고 지낸 건 事實이다. 檢察은 “密接한 親分關係를 維持했다”고 主張했다(공소장). 反面 法院은 두 사람의 親分을 認定하면서도 “돈을 收受할 程度로 信賴關係가 形成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判斷했다(판결문). 公訴狀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08年 釜山警察廳長과 釜山警察廳 行政發展委員으로 처음 만났다. 조 前 廳長도 이를 否認하지 않는다.

“2008年 10月 27日 鄭氏가 釜山警察廳 發展委員會에 入會했다. 그때 나를 처음 봤다는데, 나는 본 記憶이 없다. 立會한 사람이 數十 名이고 한꺼번에 人事를 했기 때문이다. 數十 名과 같이 食事를 했는데 어떻게 記憶하느냐.”

▼以後 繼續 만나지 않았나.

“釜山廳長 時節 金某 情報課長이 ‘괜찮은 事業家’라고 紹介해 같이 食事를 한 적이 있다. 廳舍 周邊 韓定食집에서 點心을 했다. 鄭氏는 나와 서너 次例 點心食事를 했다고 하는데, 내가 記憶하는 건 딱 한 番뿐이다. 그러나 記憶하지 못하는 만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法廷에서는 ‘두어 番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鄭氏는 여러 番 만났다고 陳述했는데.

“내가 釜山廳長을 지낸 다음 京畿廳長을 할 때는 自己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廳長 時節 두 番 만났다는데, 何必 내가 警察廳長에 內定돼 聽聞會 準備로 바쁠 때 찾아와 3000萬 원을 건넸다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警察廳長 在任 中 休暇地인 釜山 海雲臺 호텔에서 만나 2000萬 원을 줬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먼저 連絡해서. 全혀 事實이 아니다.”

▼海雲臺 호텔에서 아예 만난 事實이 없나.

“없다.”

▼警察廳長 官舍에서도 안 만났나.

“官舍에서는 한 番 만난 적이 있다.”

▼官舍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났나.

“鄭氏뿐 아니라 누구라도 釜山 사람이 廳長 執務室이나 官舍로 찾아오겠다 하면 拒絶한 적이 別로 없다. 正말 問題 있는 人物이면 몰라도. 서울廳長, 警察廳長 在任 中 執務室, 官舍를 찾아온 사람이 1000名이 넘는다.”

그에 따르면 鄭氏는 典型的 親分誇示型이었다.

“술자리에서 電話를 걸어 ‘廳長님, 사랑합니다, 尊敬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廳長님 便입니다. 激勵말씀 해 주시죠’ 이런 말을 늘어놓으며 同席한 사람들을 바꿔주곤 했다. 그런 電話를 밤늦게 몇 番 받은 적이 있다.”

▼어쨌든 鄭氏를 官舍에서 만난 게 빌미가 됐다.

“불쑥 電話를 걸어와 ‘廳長님 뵈러 서울 올라왔다’고 했다. 저녁 때 行事자리에 갔다가 歸家하던 길이었다. 그래서 ‘와서 茶나 한 盞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三火貯蓄銀行 會長 신삼길이라는 사람과 같이 왔더라.”

▼신氏와는 모르는 사이였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와인을 들고왔기에 같이 한 盞 했다. 檢察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申氏가 내게 警察幹部 人事 請託을 해 나중에 그대로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와 만날 때는 이미 人事가 끝난 後였다.”


잇따른 拘束令狀 棄却


이 事件의 背景은 鄭氏와 釜山 暴力組織 Y派 行動大將 李某 氏, 그리고 李氏와 親한 신氏 사이의 利權 다툼이다. 세 사람은 釜山 용호만 埋立地 公使와 商街分讓 事業의 同業者였다가 사이가 틀어졌다.

▼鄭氏가 組暴과 關聯된 事實을 몰랐나.

“全혀 몰랐다. 電話 오면 받아준 거지, 내가 먼저 電話한 적은 없다.”

▼國內 最高의 情報力을 가진 位置였는데 鄭氏에 對해 그토록 몰랐나.

“全혀 몰랐다. 組暴과 關聯된 사람인 줄 알았다면 近處에 못 오게 했을 거다. 내가 組暴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세 사람의 紛爭에 한몫한 것이 탤런트 金某 氏였다. 商家分讓 모델로 나섰다 모델料도 못 받고 約束받은 商家도 分讓받지 못한 金氏는 李氏를 詐欺 및 脅迫 嫌疑로 告訴했다. 搜査에 나선 檢察은 李氏를 拘束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만에 保釋으로 풀려나왔다. 이어 그의 反擊이 始作됐다. 金氏의 뒤에 鄭氏가 있다고 判斷한 그는 部下 任某 氏를 시켜 丁氏의 非違事實을 적은 陳情書를 大檢察廳에 接受했다. 陳情書에는 鄭氏의 會社公金 橫領 嫌疑와 더불어 鄭?官界 人事 로비內譯이 담겼다.

지난해 봄 大檢으로부터 陳情書를 넘겨받은 釜山地檢은 鄭氏와 조 前 廳長의 關係에 注目했다. 먼저 鄭氏를 橫領 嫌疑로 逮捕한 다음 조 前 廳長에게 5000萬 원을 건넸다는 陳述을 받아냈다. 檢察은 그 돈을 警察幹部 昇進人事 請託에 對한 代價라고 봤다. 하지만 法院은 鄭氏 陳述의 信憑性을 問題 삼으며 그에 對한 拘束令狀을 棄却했다. 檢察은 令狀을 再請求했다. 그러나 法院은 또 棄却했다. 鄭氏 陳述의 虛點 外에 當事者인 조 前 廳長을 調査하지 않았다는 點도 棄却事由 中 하나였다.


“窮迫한 處地에서 벗어나려…”


證據라고는 鄭氏 陳述밖에 없었다. 法院은 檢察이 내세운 몇 가지 情況證據를 排斥했을 뿐 아니라 거꾸로 無罪 判斷의 根據로 삼았다. 判決文을 보면 裁判部가 鄭氏의 僞證 可能性을 考慮했음을 알 수 있다.

“被告人 鄭OO은 當初 被告人 조현오에 對한 賂物供與 嫌疑와 함께 約 40億 원에 達하는 橫領 嫌疑에 對해서도 搜査를 받았는데, 위 橫領 嫌疑에 對해서는 鄭OO의 法律上 配偶者인 서OO 및 內緣女人 金OO 等 家族도 關聯됐던 點, 情OO이 이 部分 公訴事實에 符合하는 陳述을 할 무렵 情OO의 住居地, 서OO의 住居地, 株式會社 S建設 事務室 等에 對한 廣範圍한 押收搜索과 함께 서OO, 金OO에 對한 搜査가 이뤄졌던 點, 情OO은 2012年 6月 27日 釜山高等法院에서 特定經濟加重處罰 等에 關한 法律違反(橫領) 罪로 懲役 3年, 執行猶豫 5年을 宣告받은 前歷이 있어 위와 같은 橫領 嫌疑가 認定될 境遇 執行猶豫 宣告가 不可能할 뿐 아니라 앞선 執行猶豫 또한 失效됨으로 인해 長期間 受刑生活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豫想되는 點 等에 비춰 보면, 鄭OO이 自身 및 家族의 위와 같은 橫領 嫌疑로 因한 窮迫한 處地에서 벗어나려는 努力이 陳述에 影響을 미쳤을 可能性을 排除할 수 없다.”

“特히 그에게 어떤 犯罪의 嫌疑가 있고 그 嫌疑에 對해 搜査가 開始될 可能性이 있거나 搜査가 進行 中인 境遇에는 이를 利用한 脅迫이나 懷柔 等의 疑心이 있어 그 陳述의 證據能力이 否定되는 程度에까지 이르지 않은 境遇에도 그로 인한 窮迫한 處地에서 벗어나려는 努力이 陳述에 影響을 미칠 수 있는지 與否 等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조 前 廳長 周邊 人物들에 對한 搜査는 鄭氏에 對한 拘束令狀이 두 次例 棄却된 後 始作됐다. 檢察은 조 前 廳長의 家族을 비롯해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計座와 通貨記錄 等을 샅샅이 뒤졌다. 그래서 捕捉한 것이 郭某 警監의 人事請託과 關聯한 조 前 廳長 知人 2名의 斡旋受財 嫌疑였다.

當時 곽 輕減은 동부산 觀光團地 商街分讓 非理 事件에 連累돼 拘束된 狀態였다. 檢察은 그를 追窮해 조 前 廳長 關聯 嫌疑를 追加로 찾아냈다. 곽 輕減은 2010年과 2011年 두 次例 自身의 親舊 장某 稅務士를 통해 조 前 廳長의 中學校 同窓生인 宋某 농협 組合長과 朴某 敎授에게 昇進을 付託하면서 1300萬 원을 傳達했다고 陳述했다. 처음엔 1000萬 원, 두 番째는 300萬 원이었다.


“祕資金 털어놓아라”


檢察에 따르면 1000萬 원 傳達經路는 ‘郭 輕減→腸 稅務士→朴 敎授→송 組合長’이고, 300萬 원은 ‘郭 輕減→朴 敎授→송 組合長’이다. 300萬 원 中 100萬 원은 朴 敎授가 中間에서 챙겼다는 게 檢察 說明이다. 1200萬 원을 받은 嫌疑로 拘束된 송 組合長은 126日間 獄살이하다 保釋으로 풀려났고, 朴 敎授는 不拘束 狀態로 裁判을 받았다. 송 組合長은 끝까지 嫌疑를 否認했고, 朴 敎授는 처음엔 是認했다가 나중에 否認했다. 朴 敎授는 法廷에서 檢察의 强壓搜査에 따른 거짓自白이었다고 陳述했다.

송 組合長은 記者와의 通話에서 “조현오를 잡으려 말도 안 되는 搜査를 했다”며 격한 感情을 쏟아냈다.

▼곽 輕減을 아나.

“法廷에서 처음 봤다. 通話한 적도 없다.”

▼兆 前 廳長에게 곽 警監의 昇進을 付託한 적 있나.

“中學校 同期인 朴 敎授가 그 件으로 내게 電話한 적은 있다. ‘親舊(場 稅務士)의 親舊인데 조 廳長한테 昇進을 付託할 수 있냐’고 하기에, ‘너도 조 廳長 잘 아니 直接 얘기하라’고 말해줬다. 그게 끝이다. 以後 그 件으로 더 얘기한 적 없다.”

▼兆 前 廳長에게 그 얘기를 傳해줬나.

“안 했다. 그런데 내가 그때 朴 敎授와 通話를 하며 名銜 한쪽에 곽 輕減 이름을 적어놓았다. 檢察이 押收搜索할 때 그게 걸렸다. 檢察은 ‘朴 敎授가 다 認定했다’며 나를 追窮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搜査官과 싸웠다. 一週日도 안 돼 朴 敎授가 말을 바꿔 嫌疑를 否認했다. 애初 拘束令狀에는 내가 1200萬 원 받은 걸로 적혔다. 그런데 公訴狀에는 돈 部分이 빠졌다. 朴 敎授가 繼續 否認하니 檢察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둘이 公募했다’ ‘돈을 받기로 했다’ 따위의 表現만 있고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없다.”

그는 “내가 왜 126日 동안 拘束됐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大韓民國 法도 理解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檢察 調査를 받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조현오를 잡아넣으려 나를 20日間 强度 높게 調査했다. 내가 一週日째 否認하자 檢事도 어느 程度 認定했다. 그때부터는 1200萬 원 部分을 調査하지 않는 代身 조 廳長의 祕資金을 캐려 했다. 내게 ‘搜査에 協助해달라’며 ‘조 廳長에게 用돈 준 것 얘기해달라’ ‘祕資金을 털어놓아라’고 했다.”

▼그래서 털어놓은 게 있나.

“없다. 내가 조 廳長에게 왜 돈을 주나. 다만 조 廳長 出版記念會 때 내가 私費 200萬 원을 들여 冊 200卷 사서 知人들에게 돌린 적은 있다. 한 番은 조 廳長이 우리 農協 女性大學에서 講義한 적이 있다. 그때 講師料로 200萬 원 줬다. 그 外는 아무것도 없다. 搜査官은 ‘받았냐, 안 받았냐’고 묻는 게 아니라 ‘받았잖으냐’고 삿대질을 하며 다그쳤다. 나뿐 아니라 우리 職員 4名도 調査를 받았다.”

▼法定 最後陳述에서 檢事들을 批判했다고 들었다.

“裁判長에게 ‘調査를 擔當했던 檢事 두 사람에게 따끔하게 한 말씀 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윽박지르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꾸며 事件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이다. 傍聽席에서 拍手가 터지자 判事가 물끄러미 보더라.”

한便 朴 敎授는 “아직 裁判이 다 안 끝났다”며 말을 아꼈다. “當分間 그 얘기는 안 하고 싶다. 내 人生에 恥辱的인 일이다.” 그는 檢察의 强壓搜査가 있었느냐고 묻자 “다 아는 얘기를 뭐…”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同窓會?山岳會 會費計座까지 뒤져”

조 前 廳長 周邊에서는 檢察이 報復 次元에서 過剩搜査를 벌였다고 본다. 廳長 在任 時 유난히 警察 搜査權 獨立 問題에 목소리를 높이며 檢察과 摩擦을 빚은 데 對한 ‘손봐주기’라는 視角이다. 勿論 조 前 廳長도 같은 생각이다.

“通商 拘束令狀이 두 次例나 棄却되면 그 搜査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釜山地檢 特殊部의 모든 搜査力을 動員해 3個月間 나를 팠다. 나와 家族의 카드 使用內譯을 確認하고 計座를 追跡했다. 甚至於 골프 라운딩 記錄까지 훑어 누가 豫約했는지, 누가 돈을 냈는지, 同伴者가 누구였는지 調査했다. 旅行社에 내 外國 旅行 記錄을 要求해 同伴者 名單을 確認했다. 내 初等學校?中學校 同窓會와 山岳會 會費 計座까지 뒤졌다.”

▼祕資金을 찾으려 했다는 건가.

“그렇다. 그리고 通貨記錄을 뒤져 나와 通話를 가장 많이 한 親舊를 召喚해 네 番이나 밤샘調査를 해 노이로제 걸리게 했다. 나와 가까운 농협 組合長은 抑鬱하게 獄살이했다. 이게 標的搜査 아닌가. 뭐 때문에 그랬겠나. 내가 在任 中 搜査權 調整 問題로 檢察과 對立角을 세우고, 警察廳에 犯罪情報課를 만들어 檢事들의 非理를 搜査하게 했기 때문 아니겠나. 내 周邊에서는 尹某 용산세무서腸 事件도 影響을 끼친 것으로 본다.”

2012年 警察廳 廣域搜査隊는 現職 檢察 幹部의 兄인 尹氏를 調査했다. 肉類 加工業體 代表로부터 金品과 골프 接待 等을 받은 嫌疑였다. 警察 召喚에 應하지 않고 홍콩으로 逃避했던 그는 이듬해 타이에서 不法滯留者로 잡혀 强制 送還됐다. 지난해 檢察은 ‘代價性이 發見되지 않았다’는 理由로 그를 無嫌疑 處分했다.

▼盧武鉉 前 大統領 借名計座 發言 事件으로 拘束돼 收監生活까지 했는데, 檢察이 또 標的搜査를 할 理由가 있을까.

“檢察에 물어봐야지. 조현오 個人에 對한 膺懲의 뜻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敢히 檢察權力에 挑戰하면 이렇게 當한다는 걸 確實히 보여주려 했을 수도 있다. 罪 없어도 돈 한 푼 안 받았어도 이렇게 망신당하고 困辱 치르는 것 봤지, 조현오처럼 되고 싶으면 얼마든지 搜査權 問題를 떠들어라, 하고.”

조 前 廳長은 서울廳長 時節인 2010年 3月 “노무현 前 大統領이 自殺한 것은 借名計座가 發見됐기 때문”이라는 趣旨로 말했다가 獅子(死者)名譽毁損으로 告訴당했다.

▼在任 中 搜査權 問題로 檢察과 直接 부딪친 적이 있나.

“檢察 出身인 권재진 靑瓦臺 民情首席이 나를 만나 ‘警察을 統制 못하면 내 處地가 곤란하다’고 露骨的으로 壓迫한 적이 있다.”

▼統制 못한다는 건 어떤 뜻인가.

“내가 搜査權 問題를 言及하는 것은 勿論 警察에 對한 檢察의 規制를 嚴格히 따지고 드니 그런 것이다. 親庭인 檢察 보기가 不便하다고 했다.”
民政首席의 ‘警告’

▼卷 首席이 具體的으로 어떻게 말했나.

“(盧武鉉 前 大統領) 借名計座 件을 擧論했다. ‘借名計座 件에 對한 檢察 搜査가 進行 中인데, 조 廳長이 搜査權에 對해 그렇게까지 얘기해도 되냐’고 하더라.”

▼언제 어디서 만났나.

“2010年 8月 末 警察廳長에 就任했다. 그해 末부터 搜査權 問題가 불거졌으니 2011年 初였을 거다. 코리아나호텔 中食堂에서 單 둘이 만났다.”

▼뭐라 答辯했나.

“그건 애기하지 않겠다. 何如間 屈服하지 않았다.”

▼卷 首席이 警告를 하려 만난 것인가.

“그래서 食事 雰圍氣가 語塞했다.”

▼그런 式으로 가끔 만났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생각해보라. (그 자리에) 民政首席으로 나온 건가, 檢察 代辯人으로 나온 건가. 李明博 大統領께서 ‘警察 主張을 잘 反映해 刑事訴訟法 改正을 하라, 警察에 讓步를 하라’고 했다. 民政首席이라는 사람이 警察-檢察 葛藤만 彌縫하겠다는 생각으로….”

▼民政首席室에서 警察 高位幹部 人事에 制動을 걸었다고 들었다.

“엄청나게 葛藤을 빚었다. 權 首席과 엄청 싸웠다. 하지만 結局 내 意志대로 人事했다.”

當時 警察廳長과 民政首席 사이에 빚어진 人士葛藤의 代表 事例로 꼽히는 것이 黃雲夏 當時 서울警察廳 刑事課長(總警)의 警務官 昇進 脫落이다. 이에 對해 조 前 廳長은 “처음엔 黃雲夏의 昇進을 밀어붙였다가 나중엔 내 判斷으로 미뤘다”고 말했다.

“民政首席室에서 黃雲夏 昇進을 反對하기에 내가 强하게 反撥했다. 警察 搜査權 獨立을 主張해온 사람이라고 뚜렷한 事由 없이 排除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結局 昇進을 시키는 쪽으로 雰圍氣가 잡혔다. 임태희 祕書室長과 鄭鎭奭 政務首席도 내 뜻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警察 안팎에서 서울 地域 警察署長을 안 해본 사람이 警務官이 되는 건 人事秩序를 해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내가 讓步한 것이다. 代身 1年 뒤 꼭 승진시킬 테니 그때는 民政에서 異議提起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警察 搜査權 獨立의 象徵的 人物인 黃雲夏 警務官은 손꼽히는 搜査通이다. 그는 2011年 서울 送波警察署腸을 거쳐 警察廳 搜査企劃官에 補任되면서 警務官으로 昇進했다. 하지만 2012年 4月 조 前 廳長이 물러난 後 그의 昇進 速度는 더뎠고 ‘閑職’을 맴돌았다. 지난해 年末 黃 警務官(當時 서울警察廳 生活安全部長)李 治安監에 오르지 못하자 그를 不便해하는 勢力의 입김이 作用했다는 言論報道가 나오기도 했다. 來年까지 昇進하지 못하면 階級停年(6年)에 걸려 옷을 벗어야 한다.

▼黃 警務官 外 다른 事例도 있나.

“現職에 있는 사람들이니 具體的으로 말하는 건 곤란하다.”

▼民政首席室에서 警察 幹部 人事에 關與하는 건 公職者 檢證 任務가 있기 때문 아닌가.

“警察도 內部的으로 監察 資料를 바탕으로 多 點檢한다. 民政에서 正말 공정하고 正確한 資料를 提示하면 參考했을 거다. 그런데 確認할 수 없는 內容으로, 누구는 된다, 누구는 안 된다 하니…. 그 때문에 정진영 民政首席(권재진 首席 後任)과 크게 싸웠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組暴에 10億 投資했다”


▼民政에서 내세운 昇進 反對 思惟는 어떤 것들이었나.

“投機를 했다는 둥 內部 輿論이 안 좋다는 둥…. 내가 ‘民政 資料는 안 믿는다’고 하자 鄭 首席이 ‘民政首席室 存在를 否定하는 거냐’며 발끈했다. 民政에서는 甚至於 警察廳長人 나에 對한 陰害性 情報를 大統領께 報告하기도 했다. 내가 組暴 行動大將 나모 氏한테 10億을 投資해 月 2500萬 원씩 配當을 받는다고. 鄭 首席에게 그 얘기를 하며 따지자 ‘내가 와서 한 일은 아니잖으냐’고 하더라.”

▼권재진 首席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어떻게 確認했나.

“靑瓦臺 派遣 警察官을 통해 그런 報告를 받았다.”

▼그것 때문에 大統領에게 警告 받았나.

“그런 일은 없었다.”

▼羅氏와 모르는 사이인가.

“여태 電話 한 通 하거나 같은 空間에서 숨 쉬어본 적이 없다. 全혀 알지 못한다. 얼굴도 모른다. 내 아내가 金融多段階事業을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民政에는 이처럼 惡意的 資料가 많았다. 내가 廳長 그만둔 뒤 水原地檢에서 내 아내 計座를 全部 뒤진 적도 있다. 銀行에서 通報해줘 알았다. 理由는 只今까지도 모른다.”

그는 在任 中 刑事訴訟法 改正이 이뤄진 데 對해 相當한 自負心을 드러냈다.

“刑訴法 改正으로 警察이 搜査開始權을 갖게 됐다. 警察이 檢察에 對한 搜査도 할 수 있는 土臺가 마련된 것이다. 김광준 檢査를 賂物收受로 拘束하고 法務部 次官의 性接待 疑惑 事件을 搜査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德分이다. 그間 檢察이 警察 事件을 가로채간 게 얼마나 많았나. 以前까지만 해도 檢察은 警察을 개 부리듯 했다. 只今은 雰圍氣가 完全히 달라졌다. 어느 檢事가 함부로 刑事에게 ‘와라 가라’ 하나. 檢事가 法的 根據나 公文 없이 電話로 指示하는 行態도 사라졌다.”

그는 英國, 美國, 獨逸, 프랑스, 日本 等 先進國의 搜査構造를 仔細히 說明하면서 韓國 檢察의 起訴獨占主義를 批判했다. “檢察權力을 行使할 때 政治를 하려드니 問題가 되는 것 아니냐”면서.

▼本人 事件을 겪으면서 더 切實하게 느낀 것 같다.

“더 實感했다. 判事도 指摘했지만, 脅迫과 懷柔로 證據를 造作하고 그걸로 起訴를 하고 求刑을 하고…. 경찰청장을 지낸 나도 이렇게 當하는데 一般 國民은 오죽하겠냐. 송 組合長 같은 境遇 어떻게 補償을 받나.”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絶對權力은 腐敗한다”

▼警察도 無辜한 사람 잡은 적 많지 않나.

“只今 이 瞬間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保障이 없다. 그런데 警察은 그런 것에 對해 反省하고 組織 次元에서 고치려 많이 努力해왔다.”

▼搜査力量이 떨어지고 統制가 안 되기 때문에 警察에 獨自的 搜査權을 주면 안 된다는 게 그間의 檢察 論理였다.

“搜査權과 搜査指揮權, 起訴權을 다 갖고, 脅迫과 懷柔로 證據를 造作하고 罪 없는 사람을 拘束하는 檢察은 잘하는 건가. 그런 檢査의 資質이 뛰어난 건가. 絶對權力은 腐敗하기 마련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搜査 資質이 뛰어나다고 警察에 搜査權을 주나. 그렇지 않다. 搜査權이 警察의 固有 權限이기 때문이다.”

▼檢察은 起訴만 하라는 얘긴가.

“起訴만 해도 된다. 實際로 그렇게 하는 나라가 많다. 警察과 檢察이 各各 搜査를 함으로써 牽制와 均衡을 갖추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힘센 檢察이 警察의 손과 발을 묶어 왔다.”

檢察은 1審 判決에 不服해 抗訴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釜山地檢 側은 “鄭氏가 조 前 廳長에게 賂物을 줬다고 一貫되게 陳述했고 資金源까지도 具體的으로 確認했으며 鄭氏의 陳述을 뒷받침하는 多數의 參考人 證言이 있었기 때문에 證據가 充分하다고 判斷했는데 裁判部에서 그 部分을 排斥한 것을 納得하기 어렵다”고 不滿을 나타냈다.

▼권재진 前 民政首席 反論▼
“그런 얘기 왜 나오는지…대꾸할 價値도 없다”

李明博 政府에서 靑瓦臺 民政首席과 法務部 長官을 지낸 권재진 辯護士는 記者와의 通話에서 조 前 廳長의 主張에 對해 “全혀 事實이 아니다”라고 否認했다.

▼民政首席 在任 時 조현오 警察廳長과 코리아나호텔 中食堂에서 單 둘이 만난 적이 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兆 廳長에게 ‘搜査權 言及하지 말라’고 警告하듯이 말했나.

“當時 大統領 指示로 警察을 獨自的인 搜査主體로 認定해야 한다는 共感帶가 形成됐다. 實際로 法도 改正됐고. 내가 警告할 處地도 아니었다.”

▼兆 廳長에게 “借名計座 件으로 搜査 받는 狀況에서 搜査權을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나.

“全혀 그런 事實 없다.”

▼그럼 무슨 얘기를 나눴나.

“기억나지 않는다. 廳長 就任 後 相見禮 次元에서 만난 것 같다. 激勵하는 얘기를 해줬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 얘기한다고 조 廳長이 들을 사람도 아니고.”

▼警察 幹部 人事 問題로 衝突한 적이 있나.

“그런 적 없다. 다만 一部 人士의 境遇 保安이 지켜지지 않아 그 經緯를 알아본 적은 있다. 協議하기도 前에 言論에 報道됐기에 決定되지 않은 事項을 왜 外部에 흘렸느냐고.”

▼搜査權 問題와 關聯해 親庭인 檢察 便을 들었다는 指摘이 있는데.

“나는 大統領 뜻을 따라 中立的 視角에서 合理的 方案을 導出하려 애썼다. 結局 조 廳長도 同意해 나중에 (刑事訴訟法) 改正案을 만들지 않았나. 그래놓고 只今 딴소리 하나.”

權 辯護士는 ‘組暴 關聯說을 大統領에게 報告했다’는 조 前 廳長의 主張에 對해서도 强하게 否認했다.

▼兆 廳長의 非理 情報를 大統領께 報告한 적 있나. 組暴과 關聯됐다는 얘기를.

“全혀 기억나지 않는다.”

▼잘 記憶해보라.

“全혀. 그런데 왜 그런 얘기가 나오나.”

▼兆 前 廳長 本人이 그런 主張을 한다.

“事實無根이다. 檢察 搜査로 힘드니 自己가 被害者라는 點을 浮刻하려는 것 같다. 내가 自己를 얼마나 保護하고 감싸주려 했는데…. 記憶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대꾸할 價値硝子 없다.”

組成式 記者 mairso2@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