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이 創立 30周年을 맞아 最近 펴낸 ‘현대산업개발 30年史(史)’에 따르면 國內 最初의 團地型 아파트는 1962年 지어진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다. 當初 엘리베이터, 中央暖房시스템, 水洗式 化粧室을 갖춘 10層 높이의 高層으로 지으려 했다.
하지만 ‘電氣 事情도 안 좋은데 무슨 엘리베이터,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中央暖房이 웬 말이냐’는 非難이 빗발쳤다. 서울市 水道局은 한술 더 떠 “마실 물도 貴한데 水洗式 化粧室은 困難하다”고 나섰다. 結局 이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6層으로 지어졌고 暖房은 家口別 연탄보일러로 하게 됐다. 그런데도 高層에 對한 두려움과 煉炭가스 不安感 等으로 入住率은 10%에 그쳤다.
化粧室은 迂餘曲折 끝에 水洗式으로 만들었지만 施工 水準이 낮아 警備室 職員은 막힌 洋便器를 뚫느라 정신없었다. 마포아파트가 登場한 後에 建立된 아파트들도 大部分 10∼20坪型臺의 中小型으로 그다지 人氣를 끌지 못했다.
●70年代-漢江 周邊 아파트 本格 開發…投機의 始發點
이런 아파트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漢江 周邊 開發이었다.
1970年 大韓住宅公社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지은 漢江맨션이 始發點이다. 27, 32, 37, 51, 55坪型 等 中産層을 위한 中大型 坪型이 처음으로 登場했다. 特히 이 아파트는 分讓하기 前에 모델하우스를 지어 入住者들을 모으는, 當時로선 奇拔한 마케팅을 선보였다. 一部에선 ‘不動産 投機를 助長한다. 國家政策에 반한다’는 따가운 눈총을 보냈지만 漢江맨션은 人氣裡에 分讓됐다.
以後 漢江邊을 따라 반포, 蠶室, 屯村地球 等에서 값싼 江南圈 땅들이 大規模 團地로 開發되기 始作했다. 特히 반포아파트 團地는 中産層 아파트 建設의 起爆劑가 됐다. 그러나 急增한 아파트 建設은 住宅難 解消에 도움을 주기보다 投機性 資本 形成을 불렀다는 評價를 받았다.
1978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當時 4000萬∼5000萬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投機의 代名詞’라는 批判을 받았다.
●80年代 以後-5個 新都市 等 建設…出産率 따라 構造 多樣化
人口가 急增함에 따라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風土가 아파트 分讓에 投影됐다.
1977年 서울 강서구 화곡示範團地는 아파트 入住者를 募集할 때 不妊 施術者에게 當籤 優待 惠澤을 주는 制度가 처음으로 適用됐다. 最近 저(低)出産 對策에 따라 子女가 많을수록 請約할 때 유리하게 해 주는 ‘請約 加點制’와는 正反對인 셈.
1980年代 高度 經濟成長期에는 서울 蘆原區 상계동, 京畿 과천시, 5個 新都市 等에 大團地 아파트가 들어섰다.
供給量이 많아지자 아파트는 顧客 爲主로 바뀌었다. 居住者의 選擇 幅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平面 設計가 쏟아졌다. 같은 크기의 아파트에서도 房 個數가 달라졌다. 大型 坪型에서는 夫婦 專用 浴室이 一般化됐다.
1990年代에는 家族 構成員의 分化로 個別 空間이 切實해졌다. 32坪型에까지 夫婦 浴室이 設置되고 안房과 連結된 別途의 寢室을 두는 아파트도 本格的으로 나오기 始作했다.
出産率이 크게 떨어져 家族 構成員이 줄어든 2000年代에는 40∼50坪型臺 아파트인데도 放은 3個 程度만 만들고 居室을 넓히는 趨勢로 變했다.
父母에게 ‘얹혀사는’ 成人 子女인 ‘캥거루族’들을 위해 ‘1+1 形態’의 아파트도 나왔다. 10坪型臺 두 채를 세트로 分讓하되 두 아파트를 區分하는 壁을 ‘可變型’으로 만들어 獨立性을 保障하는 方式이다.
김유영 記者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