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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장환수의 數포츠]퍼펙트게임 記錄할 뻔한 選手 두名은 누구|東亞日報

[O2/장환수의 數포츠]퍼펙트게임 記錄할 뻔한 選手 두名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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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入力 2011年 9月 24日 03時 00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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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4일, 전날 미국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팀 투수 아만도 갈라라가(오른쪽)의 퍼펙트게임을 오심으로 날린 짐 조이스 심판(왼쪽)이 경기에 앞서 사과를 한 뒤 오히려 위로를 받자 눈물을 훔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6月 4日, 前날 美國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팀 投手 아만도 갈라라가(오른쪽)의 퍼펙트게임을 誤審으로 날린 짐 조이스 審判(왼쪽)李 競技에 앞서 謝過를 한 뒤 오히려 慰勞를 받자 눈물을 훔치고 있다. 東亞日報DB
▶ 프로野球 30年 歷史上 첫 퍼펙트게임 記錄은 롯데의 34歲 投手 이용훈에 依해 作成됐다. 이용훈은 1週日 前인 17日 퓨처스(2軍) 리그 한화와의 大田 競技에 先發로 나가 9이닝동안 한 名의 打者도 1壘를 밟지 못하게 하는 完璧한 投球를 했다. 1982年 出帆한 프로野球에서 노히트노런은 포스트시즌 1番을 包含해 11番이 나왔지만 퍼펙트게임은 이番이 처음이다. 反面 韓國보다 歷史가 긴 美國과 日本에선 各各 20番, 15番의 퍼펙트게임이 나왔다. 勿論 1群 리그 얘기다. 이용훈의 퍼펙트게임은 分明 韓國 프로野球 첫 記錄이지만 앞에 2軍 딱紙가 붙어 다녀야 한다.

▶ 그렇다면 美國 마이너리그에서 퍼펙트게임은 몇 番이나 나왔을까. 正答은 ‘알 수 없다’이다. 마이너리그는 트리플A, 더블A, 싱글A에 루키 리그가 있고 地域別로 여러 리그가 婚材해 있다. 이루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競技가 열린다. 따라서 모든 記錄을 集計하고 管理하기 힘들다. 아마 메이저리그의 몇 倍 또는 몇十 倍의 퍼펙트게임이 나왔을 것이라고 推算할 뿐이다.

▶ 마이너리그 얘기가 나왔으니 예전에 ‘베이스볼 다이제스트’란 野球 月刊誌를 보다 깜짝 놀란 일이 있어 잠깐 紹介해본다. 지거 스태츠란 選手는 1919年 데뷔한 메이저리거였다. 그는 10年間 4팀을 옮겨 다니며 8시즌을 빅리그에서 뛰었다. 全盛期였던 1923年에는 시카고 컵스에서 打率 0.319에 209安打를 記錄했다. 通算 成跡도 打率 0.285에 737安打로 俊秀한 便이다. 하지만 그가 記憶되는 理由는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 成跡 때문이다. 45歲가 된 1942年까지 無慮 18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뛴 그는 通算 3356安打를 때렸다. 이 部門 最高 記錄은 스펜서 해리스가 갖고 있는 3617安打. 스태츠처럼 빅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選手가 그토록 긴 歲月을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다는 點도 異彩롭다.

▶ 이 밖에도 마이너리그에선 兆 윌호이트가 1919年 69競技 連續 安打, 봅 크루즈가 1948年 254打點, 폴 스탠드가 1923年 325安打 記錄을 세웠다. 이는 不滅의 記錄으로 推仰받는 1941年 조 디마지오의 56競技 連續安打와 1930年 核 윌슨의 191打點, 2004年 스즈키 이치로의 262安打를 壓倒한다. 2001年 배리 본즈의 73홈런은 1954年 兆 바우만의 72홈런 記錄을 47年 만에 깬 셈이다. 언제쯤이면 우리 프로野球도 2軍 記錄을 훑어보다 깜짝 놀랄 날이 올까.

▶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다시 퍼펙트게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해 6月 3日 메이저리그에선 9回 2死 後 審判의 明白한 誤審으로 퍼펙트게임이 날아간 境遇도 있었다. 디트로이트의 홈경기에서 클리블랜드 제이슨 도널드가 친 打毬는 1壘와 2壘 사이로 굴러갔고, 그 공을 1壘手 미겔 카브레라가 잡아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投手 아만도 갈라라가에게 送球했다. 누가 봐도 明白한 아웃 타임. TV 中繼의 느린 畵面으로도 確認됐다. 그러나 1壘審은 세이프를 宣言했고, 通算 21番째이자 外國人 두 番째가 될 퍼펙트게임은 霧散됐다. 짐 릴랜드 디트로이트 監督은 激烈하게 어필했지만 判定 飜覆은 나오지 않았다. 1壘審은 競技가 끝난 뒤에야 “마치 鬼神에 홀린 것 같았다”며 謝過했다. 하지만 1安打 완봉승에 滿足해야 했던 갈라라가의 對答이 너무나 쿨했다. “只今 그의 氣分은 나보다 훨씬 나쁠 것이다. 이 世上 누구도 完璧할 수는 없다.”

▶ 이쯤에서 問題 하나. 그렇다면 韓國 프로野球에서 퍼펙트게임에 가장 近接했던 投手는 누구였을까. 여러 視角이 있겠지만 記者는 빙그레 이동석과 쌍방울 김원형을 꼽고 싶다. 이동석은 1988年 光州에서 해태 선동열과 맞붙어 唯一한 무4四球 노히트노런(1-0 勝)을 達成했다. 當時 守備 失策 2個만 없었으면 퍼펙트게임이 될 수 있었는데 練習生 神話의 主人公인 遊擊手 장종훈이 失手를 했다. 最年少 노히트노런 記錄(20歲 9個月 25日)을 갖고 있는 김원형은 1993年 OB와의 全州 홈경기에서 6回 김민호에게 볼넷 1個만 許容했다. 最小 出壘 許容 記錄이다.

▶그러고 보면 國內 노히트노런에는 稀罕하게 재미있는 事緣이 많이 담겨 있다. 해태 방수원은 어린이날인 5月 5日 삼미와의 光州 競技에서 韓國 프로野球 1號 노히트노런을 作成하는 榮光을 안았다. 그러나 이게 그 해 그의 唯一한 勝利일 줄이야. 그의 시즌 成跡은 1勝 8패였다. 롯데 在日僑胞 投手 김정행은 1986年 6月 5日 4四球를 8個나 내주면서도 노히트노런을 達成했다. 그러나 幸運은 거기까지였다. 이날은 韓國 蹴球가 멕시코 월드컵에서 김종부의 同點 골로 불가리아와 비긴 날. 그의 노히트노런은 單身으로 處理되는 悲運을 맛봤다. 1988年 OB 장호연이 롯데를 相對로 唯一하게 作成한 開幕展 노히트노런에는 1個의 三振도 없었다. 亦是 頭腦 피칭의 代가 장호연이란 말이 나왔다. 현대 정명원은 1996年 해태와의 韓國시리즈 4次戰에서 포스트시즌 첫 노히트노런을 했다. 하지만 優勝컵은 해태의 몫이었다.

▶ 노히트게임을 했지만 노히트노런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不運한 境遇도 두 番이나 있었다. 롯데 박동희는 1993年 쌍방울과의 釜山 競技에서 6回까지 無安打 無失點했지만 비로 降雨콜드게임이 되면서 노히트 완봉승에 滿足해야 했다. 三星 배영수는 더욱 抑鬱한 境遇를 當했다. 2004年 현대와의 韓國시리즈 4次戰에서 延長 10回까지 볼넷 1個만 내줬지만 0-0으로 勝負가 나지 않아 11回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바람에 10이닝 노히트란 眞記錄만 세웠다. 박동희는 正規 이닝人 9回를 채우지 못해, 배영수는 完投勝을 하지 못해 노히트노런이 不發된 것이었다.

▶ 國內에선 없지만 노히트게임을 하고도 失點을 한 境遇는 메이저리그에서 25番이나 있었다. 노히트 팀이 이긴 境遇는 그 中 5番이나 된다. 1964年 켄 존슨은 9이닝을 던지며 1個의 安打도 내주지 않았지만 0-1로 陳 唯一한 投手다. 失策-땅볼-失策으로 내준 失點이었다. 1990年 앤디 호킨스는 8이닝 노히트 完投를 했지만 8回 볼넷 2個와 3個의 失策이 겹치며 無慮 4失點하는 眞記錄을 세웠다. 競技는 0-4 敗北. 個人 最多 노히트게임은 놀런 라이언의 7次例. 조니 밴더 謎語는 1938年 2競技 連續 노히트게임을 하는 前無後無한 記錄을 세웠다.

장환수 스포츠레저部長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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