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의 作家 권기수(34) 氏를 만나면 新銳의 熱情을 느낄 수 있다. 東洋畫를 專攻했지만 먹과 韓紙를 버렸다. ‘동구리’라는 캐릭터도 東洋花壇에서는 異端으로 비칠 뿐더러 그림도 西洋畫의 素材인 아크릴로 그린다. 또 自身의 그림은 自然 속의 悠悠自適을 形象化했다고 말한다. ‘동구리 놀이터’는 平面에서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 彫刻 設置 映像으로 擴張된다. “먹을 버리고 애니메이션까지 하면서 무슨 東洋畫냐”는 핀잔도 듣지만, 作家의 말을 듣다 보면 동구리 領域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12月 3日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트파크 갤러리에서 ‘검은 숲’展을 열고 있다. 美術館이 아닌 畫廊에서는 처음 하는 展示인데 數年間 그가 追求해 온 ‘東洋畫의 警戒 擴張’을 힘있게 보여 준다.
傳示作 中 가장 큰 ‘블랙 포리스트 7’(226×546cm)은 ‘竹林七賢(竹林七賢·中國 위 陳 交替期에 權力에 등을 돌리고 竹林에서 거문고와 淸談을 즐긴 7名의 선비)’의 이미지다. 四君子 中 하나인 대나무 숲에서 7名의 동구리가 노닐고 있다. 空間 곳곳에는 記號化된 梅花 꽃이 떠다닌다.
또 다른 作品 ‘人 더 파운틴(Fountain)’은 題目대로 크고 작은 形形色色의 噴水 사이에서 동구리가 웃고 있다. 分數는 四君子의 하나인 亂을 記號化한 것이라고 作家는 말한다.
동구리는 동그란 웃는 얼굴에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지닌 캐릭터다. 동구리를 찾아내기까지 그는 2年 如干 活動을 접고 쉼 없이 드로잉 作業에 邁進했다.
“사람 이야기를 單純하게 할 수 있는 方法을 찾다가 壁에 부닥쳤어요. 苦悶 끝에 드로잉만 했습니다. 原初的 形象에 다가서기 위해 머리가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도록 엄청나게 빠른 速度로 그렸습니다. 드디어 單純해지더군요. 마치 옛 선비들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亂을 치는 듯한 그런 氣分, 말입니다.”
동구리는 海外에서 더 有名하다. 權 氏는 最近 2, 3年 동안 中國 상하이 모카 현대미술관, 日本 모리美術館, 臺灣 현대미술관, 뉴욕 엘로버드 갤러리에서 招待展을 열었다. 올해 末에는 濠洲 브리즈번에서 열리는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 招請받아 平面과 애니메이션을 出品했다. 主催 側은 製作費를 負擔했는데 그가 26日 結婚해 現地로 新婚旅行을 간다고 하자 호텔 豫約 等 便宜를 봐 주기도 했다.
그는 “韓國에선 東洋畫에 對한 固定觀念 때문에 한낱 揷畵 程度로 통하던 내 作品들이 海外에서 더 興味를 끌고 있다”며 “現地 큐레이터들이 直接 알고 招待하는 境遇가 많았다”고 말했다.
慶北 榮州市가 故鄕인 그는 豫告 出身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水彩畫를 그리다가 美大(홍익대)를 갔다.
“制度圈 美術 敎育을 받지 않은 것이 東洋畫를 다르게 보는 動力이 됐습니다. 大學을 卒業한 뒤에도 花壇 組織을 벗어나니 자유로움이 밀려 왔어요. 學校 밖에서 실크 等 素材를 다루는 테크닉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東洋畫의 울타리에 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애니메이션 等을 獨學했다. 요즘도 서울産業大 等에서 東洋畫家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멀티미디어 技法을 講義한다. 그는 “아직 警戒의 끝을 보지 못했으니, 가는 데까지 가 보겠다”며 “그러다 보면 먹과 한지도 다시 들어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展示 問議 02-733-8500
許曄 記者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