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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復 60周年 企劃]‘第3의 認識’으로 본 解放前後事|東亞日報

[光復 60周年 企劃]‘第3의 認識’으로 본 解放前後事

  • 入力 2005年 8月 11日 03時 08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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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解放前後事(解放前後史)는 果然 不妊(不姙)의 時期였는가. 光復에서 6·25戰爭에 이르는 이 時期는 이데올로기 對立과 分斷, 戰爭, 가난 等 否定的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否認할 수 없는 現實이다. 特히 이 時期를 놓고 左右로 偏向된 視角과 評價가 對立하면서 우리 社會의 理念 葛藤을 깊게 해온게 事實이다. 1970年代까지는 右派的 視角에서, 1980年代에는 左派的 視角에서 解放前後事를 主로 評價했다. 그러나 光復60周年을 맞아 解放前後事에 對한 그동안의 評價가 客觀的이었는지, 偏見이 있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矯正해 새롭고 健康한 視角을 確保할 것인지에 對한 眞摯한 論議가 일고 있다. '第 3의 視角'에서 解放前後事를 再認識해야 한다는 主張과 硏究가 活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評價되는 解放前後事

解放前後事 評價에 있어 主要 테마는 分斷의 責任 素材, 農地 改革에 對한 評價, 6·25戰爭의 起源과 責任 問題, 李承晩에 對한 評價 等이었다.

이런 主題들을 보는 視角은 時代에 따라 變해왔다. 1948年 大韓民國 政府 樹立 以後 1970年代까지는 反共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右派的인 視角(傳統酒의)이 得勢했다. 特히 李承晩 朴正熙 政權 아래서는 解放前後事에 對한 客觀的인 硏究가 제대로 進行되지 않았고 그나마 官邊 論理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80年代 學生·勞動運動이 擴散되면서 右派의 視角을 뒤집는 見解들이 大擧 登場했다. 特히 6·25戰爭의 責任이 蘇聯과 北韓에 있기 보다는 美國과 南韓에 더 많이 있다는 美國 시카고大 브루스 커밍스의 理論이 紹介되면서 左派的 視角(修正主義)李 勢力을 얻어갔다. 그 結果 解放前後事 및 現代史는 反(反)民衆 反民族 反民主로 點綴된 汚辱의 歷史라는 視角이 擴散됐다.

그러나 1990年代 中盤 부터 旣存의 右派的, 左派的 見解 모두 偏向的이라는 批判이 提起 되기 始作했다. 그같은 自省이 實證 史料를 바탕으로 客觀的이고 새로운 視角으로 解放前後事를 바라보려는 움직임으로 發展하면서 '解放前後事에 對한 再認識'李 活潑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상인(全相仁·社會學) 한림대敎授는 "李承晩 朴正熙 時代의 郵便向, 1980年代의 左偏向을 經驗한 韓國 社會가 이제 客觀的 史料를 바탕으로 均衡있고 綜合的 客觀的인 視角으로 解放前後事를 認識하는 段階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다시 評價되는 爭點들

▽分斷 責任 問題=左派는 南側(李承晩)과 美國에 分斷 責任이 있다고 主張해왔다. 光復 直後, 左翼과 中道派의 統一政府 樹立 努力에도 不拘하고 李承晩과 美國이 1948年 單獨政府를 樹立해 分斷이 固着化됐다는 것이다.

反面 右派는 光復 直後 蘇聯의 스탈린이 北韓의 單獨政府 樹立을 指示하고 곧이어 北韓5度를 管轄하는 '北朝鮮 第(諸) 行政國'을 만드는 等 北側(金日成)과 蘇聯이 먼저 單獨政府를 樹立함으로써 分斷을 招來했다고 反駁한다. 右派의 主張은 蘇聯의 祕密文書 等으로 立證됐다.1948년의 南北協商度 처음부터 끝까지 蘇聯共産黨의 決定과 指令에 忠實한 김일성 勢力의 主導 아래 推進됐음도 蘇聯의 資料로 立證됐다.

最近 들어서는 當時의 國際政治 力學關係속에서 兩側의 責任을 冷靜하게 따져야 한다는 見解가 說得力을 얻고 있다. 김일영(金一榮·政治學) 成均館大 敎授는 "李承晩과 김일성은 單獨 政府를 먼저 樹立한 뒤 南進統一 北進統一을 推進했던 2段階 統一論者였다는 點에서 等價(等價)인 셈"이라면서 "當時의 嚴酷했던 國際的 冷戰秩序와 國內의 左右 對立 속에서 中間派의 統一政府 推進은 非現實的인 理想主義였다"고 評價했다. 卽 單獨政府는 不可避한 次善策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民族 民主 統一이라는 道德的 名分의 잣대로만 評價할 수 없으며 美國과 蘇聯이 對立했던 當時의 冷戰 現實을 重要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南側의 農地 改革에 對한 評價=李承晩 政權은 1949年 農民들에게 農地를 配分하는 農地改革을 施行했다. 이에 對해 左派는 農地를 나눠줬지만 6·25戰爭 過程에서 過度한 稅金을 걷어들여 農民을 또다시 疲弊하게 만들었다고 指摘한다. 反面 右派는 農民들에게 삶의 土臺를 提供한 改革이라고 評價해왔다.

이에대해 最近에는 農地改革을 '建國(建國)과 富國(富國)의 過程'으로 봐야 한다는 視角이 最近 提起됐다. 農地改革이 農民들에게 땅을 提供해 韓國人이라는 國家的 所屬感(또는 正體性)을 심어주었다는 評價다.

김일영 敎授는 "農地 配分을 통해 地主階級을 沒落시켰기 때문에 1960年代 地主 階級의 抵抗 없이 經濟 開發을 推進할 수 있었다"고 評價했다.

▽6·25 戰爭의 責任 問題=1980年代 盛行했던 北侵說이나 南侵 誘導說 또는 內亂說은 그 基盤이 크게 弱化됐다. 1990年代 中盤부터 蘇聯과 中國의 南侵 關聯 資料들이 公開되면서 修正主義 視角의 根據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最近엔 6·25 戰爭에 對한 보다 다양한 角度에서의 接近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 하나가 6·25 戰爭이 南韓의 國家 建設 過程에서 끼친 影響을 分析하려는 試圖다. 戰爭을 통해 南韓 國民의 統合 效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같은 視角은 冷戰時代가 終熄되던 1980年代 末∼1990年代 初에 그같은 正體性(統合 意識)을 肯定的인 正體性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것이 問題라는 指摘으로 이어진다.

戰爭을 이데올로기의 側面에서 볼 것이 아니라 戰爭을 經驗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見解도 나오고 있다. 김귀옥(金貴玉·社會學) 漢城大 敎授는 "分斷과 戰爭은 政治的 巨視的 視角만으로 把握할 수 없다"며 "普通 사람들의 戰爭 經驗을 통해 未時事的 生活史的으로 接近해야 한다"고 指摘했다.

●이데올로기를 넘어-불임(不姙)이 아니라 萌芽(萌芽)의 時期

解放前後事에 對한 새로운 認識은 우리 現代史를 左右 이데올로기의 視角을 뛰어 넘어 客觀的 飼料를 土臺로 다양한 視角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問題意識에서 비롯됐다. 過去 獨裁政權下의 右派的 視角이나 1980年代 以後 左派의 視角 모두 政治 이데올로기의 굴레에 갇혀 人間을 外面해 버렸다는 自省이 깔려 있는 것이다.

解放前後事에 對한 再評價는 이 時期를 暗黑期로만 볼 것이 아니라 肯定的으로 보아야 한다는 見解로도 이어진다. 金映豪(金暎浩·國際政治學) 誠信女大 敎授는 "80年代의 左派式 見解는 자칫 韓國의 解放前後事를 過度하게 否定的으로 인식시킬 憂慮가 있다"면서 "民主化를 거쳐 自由主義의 完成 段階로 접어들고 있는 時點에서 現代史의 肯定的 要素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最近 이뤄지는 解放前後事 再認識 作業에 對한 反論도 있다. 박태균(朴泰均·韓國史) 서울大 敎授는 "感情的인 接近이 아니라 實證的인 資料에 기초한 그같은 硏究는 重要한 作業"이라고 評價하면서도 "하지만 實際로 그리 새로운 것이 없는데다 너무 結果를 놓고 過去를 解釋하려는 傾向이 强하다"고 指摘했다. 現在의 結果만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時代의 視角으로 評價해야 한다는 말이다.

朴 敎授는 또 "人權이나 平和와 같은 人類 普遍的 價値가 아니라 經濟 成長의 結果만으로 歷史를 바라본다면 日本의 歷史 敎科書 歪曲을 막아낼 論理가 사라질 것"라고 指摘했다.

이에 對해 김일영 敎授는 "歷史 評價에 있어 現實的인 結果를 無視할 수는 없으며 過去의 잘못을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基準으로 解放前後事의 明暗을 제대로 判斷하려는 것"이라고 强調하면서 덧붙였다.

"解放前後事는 分明 暗鬱한 時期였다. 그러나 오로지 不妊의 時期는 아니었다. 解放前後事엔 1960年代로 이어지는 萌芽(萌芽)의 側面도 있었다."


이광표記者 kplee@donga.com

▼‘第3의 認識’ 어떤 硏究成果 있나▼

解放前後事에 對한 새로운 硏究 成果가 나오기 始作한 것은 1990年代 末. 當時 著作物로는 유영익(柳永益·歷史學) 延世大 碩座敎授 等이 펴낸 ‘修正主義와 韓國 現代史’ ‘李承晩 硏究’(以上 연세대 現代韓國學硏究所), 전상인 한림대 敎授의 ‘고개 숙인 修正主義’(傳統과 현대)를 들 수 있다. 前 敎授는 左右 이데올로기를 克服할 수 있는 第3의 方法論을 摸索하면서 歷史를 經驗했던 사람, 特히 서울 사람이 아니라 地方 사람의 視角이 必要하다고 强調했다.

2004年 末엔 차상철(歷史學) 忠南大 敎授의 ‘韓美同盟 50年’, 김일영 成均館大 敎授의 ‘建國과 富國’(以上 생각의 나무) 等이 나왔다. 金 敎授는 單獨政府 樹立과 6·25戰爭 等을 國家 形成과 經濟 成長 過程으로 보는 새로운 視角을 提示했다.

이달 末 出刊 豫定인 ‘解放前後事의 再認識’(푸른 歷史)도 눈길을 끈다. 1980年代 386世代를 사로잡았던 ‘解放前後事의 認識’ 시리즈(한길사)가 左偏向이라는 判斷에 따라 이를 克服하기 위한 趣旨로 企劃된 冊. 박지향(朴枝香·西洋史) 李榮薰(李榮薰·經濟學) 서울大 敎授, 김철(金哲·國文學) 延世大 敎授, 이정식(李庭植·政治學) 美國 펜실베이니아對 名譽敎授, 김남영(經濟學) 東國大 敎授, 카터 에커트(政治學) 美 하버드대 敎授, 차상철, 김일영 敎授 等 多樣한 分野 專門家 30餘 名이 筆者로 參加했다.

이광표 記者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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