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文化 가로지르기]죽음앞에서 묻는 實存의 意味|東亞日報

[文化 가로지르기]죽음앞에서 묻는 實存의 意味

  • 入力 2003年 2月 20日 18時 48分


코멘트
공연 중인 연극 ‘19그리고 80’ 의 주연인 모드(박정자분·왼쪽)와 해롤드(이종혁). 노인여성과 반항기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빌어 죽음 앞에 선 인간이 발견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사진제공 ’19그리고80’ 기획팀
公演 中인 演劇 ‘19그리고 80’ 의 主演인 모드(박정자분·왼쪽)와 해롤드(이종혁). 老人女性과 反抗期 少年의 사랑이야기를 빌어 죽음 앞에 선 人間이 發見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사진제공 ’19그리고80’ 企劃팀
現代 스웨덴 海洋科學의 先驅者로 꼽히는 오토 페테르손. ‘沈默의 봄’의 著者인 레이철 카슨은 自身의 著書 ‘自然, 그 경이로움에 對하여’에서 平生 波濤와 더불어 살며 自然을 探究한 페테르손이 老年에 아들에게 준 메시지를 細心하게 記錄했다.

“地上에서의 마지막 瞬間에조차 나를 북돋워줄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지막 瞬間 다음에 果然 어떤 놀라운 世上이 내 앞에 펼쳐질까에 對한 그칠 줄 모르는 好奇心이란다.”

밸런타인데이였던 14日. 靑바지차림부터 中年까지 유난히 客席에 커플 觀客이 많았던 서울 大學路 精米所劇場. 곧 80歲 生日을 맞게 되는 모드(박정자)가 人生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冷笑的인 열아홉살의 해롤드(이종혁)에게 한 大使도 그랬다.

“每日每日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 이게 내 座右銘이지. 結局 人間은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生命을 받은 거야.” (演劇 ‘19 그리고 80’ 中)

18日 午前 大邱에서는 放火로 인한 地下鐵 火災로 120餘名이 死亡하고 140餘名이 負傷하는 慘事가 빚어졌다. 犧牲者들은 ‘새로운 하루’를 始作하기 위해 學校로 일터로 向하던 사람들이었다.

● 삶의 판돈

열아홉살의 中産層 家庭 靑年 해롤드는 홀어머니와 不和하며 끊임없이 自殺을 試圖한다. 趣味는 葬禮式 參席. 어느 날 墓地에서 만난 異常한 할머니 모드는 해롤드에게 ‘每日 뭔가 새로운 것을 하자’며 나무오르기 노래하기 춤추기 담배피우기 술마시기를 가르친다. 모드와 만나며 삶에 환하게 불이 켜지는 느낌을 얻은 해롤드는 그의 八十歲 生日에 “사랑한다”며 請婚한다. 그러나 모드는 이미 飮毒한 狀態. 스스로 消滅하기 위해 오래前부터 準備해온 터였다.

韓國에서 87年 初演된 後 두 番째 공연되는 ‘19 그리고 80’은 할리우드의 映畫監督이자 시나리오 作家였던 콜린 히긴스가 ‘해롤드와 모드’라는 題目으로 쓴 作品이다. 이番 公演은 當初 3月 16日에 끝날 豫定이었지만 觀客反應이 뜨거워 4月까지 延長될 展望이다. 그 吸引力은 ‘죽음 앞에서 當身은 무엇을 所重히 여기겠는가’라는 質問. 서바이벌게임, 번지점프 같은 極限을 부러 體驗하며 삶에서 내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現代人들에게 醫師(擬死)죽음體驗은 그 어떤 것보다 剛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프로이트의 冷笑的인 分析에 따르면 “산다는 게임에서 가장 큰 판돈人 삶 自體가 걸려있지 못할 때엔 삶의 興味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판돈’이 얼마 남지 않아 곧 게임을 끝내야 할 모드는 自身에게 얼마나 많은 판돈이 남아있는지 가늠조차 못하는 해롤드를 向해 치어리더처럼 춤추며 외친다.

“世上에는 죽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지. 그러나 그들이 實際로 죽는 것은 아니야. 다만 人生 가운데 마음의 눈이 닫힌 것이지. 손을 뻗쳐! 危機를 機會로 잡아라! 勿論 傷處를 입을 수도 있지. 그러나 끝까지 試合을 하는 거야. 나가자! 우리팀 나가자! 나에게 ‘生’을! 나에게 ‘名’을! 엘 아이 에프 이!”

● 미리 쓰는 遺書

삶을 省察하기 爲한 方法으로 죽음 가까이에 서 보는 體驗은 大衆媒體에까지 퍼졌다. MBC의 라디오프로그램人 ‘여성시대’는 3日부터 ‘남기고 싶은 나의 遺書’라는 聽取者 投稿 코너를 進行하고 있다. 現在까지 投稿된 것은 400餘篇 以上.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아들에게’ ‘사랑하는 當身’ ‘父母님께’…. 가까운 家族이 受信人인 遺書를 읽어 내려가다가 投稿者들은 때로 격한 感情에 말을 잇지 못한다. 이 코너를 企劃한 최석기 PD는 “나는 잘 못 살았다는 悔恨이 事緣의 主를 이룬다”고 밝혔다.

98年 6月 韓國語 初版이 發行된 後 올 1月까지 3板122刷를 거듭한 冊 ‘모리와 함께 한 火曜日’의 影響力도 韓國社會의 ‘죽음에 對한 省察’에서 빼놓을 수 없는 記號다. 冊은 美國 브랜다이스대 社會學科 敎授였던 모리 슈워츠가 루게릭病으로 몸이 化石처럼 굳어가던 生涯 마지막에 弟子 미치 앨봄과 每週 火曜日마다 나눈 對話를 앨봄이 整理한 것이다. 講義의 主題는 ‘人生의 意味’.

죽음의 神에게 쫓기며 進行하는 對話가 자칫 切迫하거나 悽絶했을 法도 하지만 ‘사라져가기’를 받아들이는 스승 모리의 姿勢는 그가 좋아했던 춤추기의 스텝만큼이나 輕快하고 眞率하다. “천천히 衰落하는데 가장 두려운 게 뭡니까”라는 質問에 모리는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줘야만 된다는 事實”이라고 答한다.

모리 敎授는 ‘19 그리고 80’의 모드처럼 마지막 瞬間까지 每日 배우고 變化했다. 스승을 떠나 世上으로 나간 뒤 失敗의 쓴 맛도 보고 스포츠칼럼니스트로 成功해 人生逆轉度 했지만 일中毒者로서 中年의 空虛에 맞닥뜨린 弟子 미치에게 모리는 이렇게 말한다.

“自己의 人生을 意味있게 살려면 自己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自己가 屬한 共同體에 獻身하고, 自身에게 生의 意味와 目的을 주는 일을 創造하는 데 獻身해야 하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感情을 記憶할 수 있는 限, 우리는 眞짜 우리를 記憶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죽음은 生命이 끝나는 것이지, 關係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 尊嚴이 强奪된 죽음

그러나 모드나 모리처럼 人間으로서 品位를 갖추어 作別人事를 할 機會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現代人들은 威嚴있는 죽음을 맞기 어려운 環境에 산다.

中世부터 現代까지 西歐人들의 죽음에 對한 생각을 硏究한 프랑스 歷史學者 필리프 아리에스는 近代 以前의 過去에는 思考나 戰鬪의 境遇에서조차도 급작스러운 죽음은 드물었다고 말한다. ‘人間은 數千年 동안 自身의 죽음과 그 죽음의 局面을 支配하는 主權者로 存在했다. 人間은 오늘날 그런 存在의 모습을 中斷했다.’(‘죽음의 歷史’ 中)

아리에스는 집에서 病院으로 處所를 옮겨간 죽음, 患者에게 끝까지 죽어가고 있다는 事實을 가르쳐주지 않으며 患者가 臨迫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自體를 不道德하게 여기는 近代醫學의 態度를 ‘죽어가는 者로부터 죽음을 빼앗은’ 主犯으로 指目했다.

그러나 1984年에 世上을 떠난 아리에스는 20世紀末 도쿄의 地下鐵과 르완다의 마을, 보스니아의 거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2001年 뉴욕, 2003年 韓國의 大邱에서 어떻게 人間 죽음의 尊嚴이 毁損되고 强奪되었는지에 對해서는 볼 수 없었다.

21世紀의 죽음은 日常의 虛를 찌르며 準備할 수 없이 다가온다. 家族이 함께 食事를 하는 집 지붕 위로, 出退勤길 地下鐵이나 버스 안에, 都心의 빌딩과 밤의 디스코텍에 潛伏해 있다. ‘할머님은 죽을 때를 向해 자연스럽게 삶의 어느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죽음으로 自己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뒷山 櫷木나무처럼’(김용택의 時 ‘蟾津江 24-맑은 날’)과 같은 죽음은 이제 복된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特權이 됐다. 왜 目標物이 되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죽임을 當해 서로 다른 政治社會集團이 自己意思를 表現하는 道具가 되거나 社會的 火풀이의 對象으로서 犧牲羊이 되는 죽음. 人間의 마지막 通過儀禮인 죽음의 高邁함은 진창 속에 던져졌다.

끊임없이 삶과 죽음이 함부로 다뤄지는 經驗을 하고 난 後에도 人間은 如前히 人間일 수 있을까.

한때 이름을 잃어버리고 ‘아우슈비츠 收容所 收監番號 119104番’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유대系 精神醫學者 빅토르 프랑클 博士는 그에 關한 告白을 남겼다. 親衛隊 將校의 고갯짓 하나로 삶과 죽음의 運命이 갈렸던 아우슈비츠에서의 體驗을 後날 精神醫學的인 側面에서 分析한 프랑클 博士는 自身이 物體, 精神이 담기지 않은 넝마덩어리가 되어갔다고 告白했다.

‘조금 前에 끌려나간 屍體의 멍한 눈이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時間 前만해도 나는 그와 對話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繼續해서 수프를 熱心히 먹었다.’(프랑클 저 ‘삶의 意味를 찾아서’)

그러나 收監者들이 ‘人間’으로 回歸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때는 있었다. 프랑클 博士는 收容所 運動場, 비로 파인 웅덩이에 비친 노을을 모두들 벅찬 感動으로 말없이 지켜보다가 누군가 “世上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歎息했던 瞬間을 記憶한다. 極限의 狀況에서 그가 기대었던 것은 마음 속의 아내 얼굴이었다. 죽음의 收容所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는 없었다. 그는 家族 中 唯一한 生存者였다. 그러나 그는 憤怒 代身 삶의 意味를 묻는 方式을 코페르니쿠스的으로 바꾸는 心理治療療法을 主唱했다.

“正말 重要한 것은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期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期待하고 있느냐를 깨닫는 것이다. …삶의 참다운 意味는 孤立된 個人의 內面 속에서가 아니라 이 世上 안에서만 發見될 수 있다.”

● 에필로그

71年 ‘해롤드와 모드’가 映畫化됐을 때 히긴스는 “컬트와 블랙코미디의 奇妙한 結合” “블록버스터 失敗作을 만들었다”는 酷評을 들었다. 그러나 히긴스가 88年 47歲의 나이에 後天性免疫缺乏症(AIDS)으로 世上을 떠난 뒤, 그의 作品世界를 評價할 때 첫머리를 차지하는 作品은 ‘나인套파이브’나 ‘파울플레이’같은 할리우드 興行作이 아니라 ‘해롤드와 모드’다.

히긴스는 에이즈로 鬪病中이던 86年 自身의 이름을 딴 公益財團을 만들었다. 이 財團은 에이즈에 맞서 싸우며 豫防活動을 벌이는 組織과 게이 레즈비언 兩性愛者 性轉換者 等의 地位向上을 위해 애쓰는 團體들을 後援한다. 그리고 히긴스의 母校인 스탠퍼드大 英文科와 UCLA演劇映畫學部 大學院生 中 “人間의 精神을 豐盛하게 한 作品을 만든” 이에게 奬學金을 授與한다.

모드가 살아갈 날이 많은 해롤드에게 남긴 마지막 付託을 히긴스는 그렇게 지켰다.

“이젠 사랑을 모르는 다른 이를 더욱 사랑해줘요.”

정은령記者 ry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