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世紀 後半에 登場해 世上의 認識을 바꾼 포스트모더니즘의 主唱者 레슬리 피들러(Leslie A Fiedler·1917∼2003)가 1月 31日(韓國時間) 他界했다. 1960年代 進步主義 文化의 旗手로서, 또 反文化(counter culture)의 前哨兵으로서, 그리고 少數人種文化의 擁護者로서, 波瀾萬丈했던 한 時代를 代表했던 知的(知的) 巨人은 지난 週 말, 드디어 現實에서 벗어나 歷史와 神話 속으로 들어갔다.
不過 30歲의 나이로 ‘파르티잔 리뷰’에 ‘헉핀이여, 다시 뗏木으로 돌아와 다오’라는 挑發的인 글을 써서 保守와 進步 사이의 論爭을 불러일으킨 피들러는, 1960年 ‘美國文學에 나타난 사랑과 죽음’이라는 有名한 批評書를 出刊함으로써 世界文壇과 學界의 非常한 注目을 받았다. 위 두 論著에서 피들러는 現實에서는 不可能한 人種間의 友情과 사랑이 어떻게 美國作家들의 想像力을 통해 美國文學에 나타나고 있는가를 놀랄 만한 洞察로 探索하고 있다.
1960年代 初, 피들러는 電子媒體의 登場과 더불어 모더니즘的인 엘리트文化 時代가 끝나고 大衆文化時代가 到來할 것이라고 豫言하며, 難解한 모더니즘 小說의 죽음을 宣言했다. 後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小說의 죽음’은 當時 많은 作家들과 批評家들의 論難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의 先知者的 慧眼은 오늘날 正確한 것으로 評價되고 있다.
硬直되고 保守的인 學界를 싫어했던 피들러는 ‘플레이보이’誌에 有名한 포스트모던 評論 ‘境界를 넘고, 間隙을 메우며’를 發表해 注意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 自宅으爐찾아간 筆者에게 그는, “젊은 批評家들이 이제는 나를 保守主義者라고 非難해”라며 껄껄 웃었다. 自身의 子女들을 有色人들과 結婚시키고, 韓國人 아이까지 孫女로 入養한 그는 그렇게도 기다렸던 ‘美國文學에 나타난 사랑과 죽음’의 韓國語 出刊을 不過 한 달 앞두고 他界했다.
金成坤 서울大 敎授·英文學